한땀한땀의 아름다움, 강릉예술창작인촌 '동양자수박물관' | 강릉 가볼만한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가끔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보석같은 장소를 발견하곤 합니다. 오늘 저와 함께 가보실 강릉예술창작인촌에 있는 '동양자수박물관'이 바로 그런 곳이었어요. 자수라는 것이 여성들에게 특화된 그런 전시/체험 공간인 줄 알았는데, 남자인 제가 보더라도 감동 제대로 받고 온 곳입니다. 아마 여성분들이 이곳을 가신다면 눈에 하트 뿅뿅 달고 구경하실 거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강릉예술창작인촌은 2010년 옛 경포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공예,디자인부문 작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20여명의 작가들이 입주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작품을 가까이서 감상도 하고, 또한 체험도 해볼 수 있는 재미난 곳이에요. 연세가 조금 있으신 어머니들은 아마 이곳에서 작품들 구경하시다 옛날 생각에 눈물이 뚝.... 떨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자, 들어가 볼까요?

 

 

위치는 강릉 오죽헌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오죽헌을 구경하셨다면 이곳도 꼭 들러보세요.

 

 

 

 

 

 

예술창작인촌 들어가는 길은 예쁜 벽화와 구조물들이 있는데, 아기자기한 사진찍기 좋은 곳이네요.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전시물은 무료로 구경이 가능하지만, 현재 동양자수박물관은 입장료가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글 하단에 적어 두었으니 참고하시고요.

 

 

 

 

 

 

동양자수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니 자수 제품들을 판매하는 곳이 있네요. 투박해 보이지만 아기자기한 감성이 폭발하는 제품들이 참 많았어요. 직접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홥니다.

 

※ 참고로 이곳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사전에 허락을 받고 사진촬영 했음을 밝힙니다.

 

 

 

 

 

 

박물관은 긴 복도에 양쪽과 가운데 전시물이 있었는데, 모두 나무로 되어 있어 옛 향기가 솔솔 나는 듯 했어요. 이곳에 있는 모든 전시물을 현대에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만든 진품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 기억납니다. 이건 우리 할아버지가 가지고 다니시던 담배 쌈지네요. 말아놓은 주머니를 펼치면 양쪽으로 담배와 부싯돌이나 성냥 등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있는데, 자세히 보시면 쌈지의 겉면 디자인이 독특합니다. 색실로 무늬를 내어 만든 이걸 '강릉 색실누비'라고 하는데, 신사임당의 후예들인 강릉의 옛 여인들이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겁니다. 사랑이 듬뿍 느껴집니다.

 

 

 

 

 

 

조상님들의 작은 악세서리들이 현대인의 눈으로 보더라도 그 미적 감각이 전혀 뒤처지지 않죠?

 

 

 

 

 

 

수보(繡褓), 즉 수를 놓은 보자깁니다. 공장에서 뚝딱 찍어낸 게 아니라 거의 6개월이 넘게 걸려 일일이 실로 만든 무늬라 그 정성이 감동적입니다.

 

 

 

 

 

 

다리미질 할 때 밑에 받치는 네모나고 길죽한 인두판과 동그랗고 네모진 베개에도 수를 가득 놓아 두었네요. 그런데 베개가 네모난 게 있고 동그란 게 있는데, 네모진 건 남자들의 것이고 동그란 건 여자들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안에는 왕겨나 메밀껍질을 넣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었는데,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이런 베개를 주로 사용했었죠. 베갯보를 어머니가 씻어서 풀을 먹이던 생각이 나네요.

 

 

 

 

 

 

이런 작품들은 작은 것은 1개월, 조금 큰 것은 몇 년이 걸리는 것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막히게 아름답네요.

 

 

 

 

 

 

 

 

 

 

정사각형 보자기의 네 귀퉁이를 접어 네모지게 만든 이건 '버선본 주머니'에요. 버선을 만들기 위해선 모양 '본'이 있어야하는데, 그걸 넣어두던 주머닙니다. 옛날에는 종이가 귀해서 낡은 책이나 헌종이를 재활용해서 버선 본을 만들었는데, 자식들의 복을 기원하고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는 꽃수를 놓은 주머니를 여자들은 가지고 다녔어요. 조선시대 여성들의 필수 혼수품이기도 했었죠.

 

 

 

 

 

 

한쪽 벽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었던 정교한 작품이 한 점 걸려 있네요. '비둘기와 꽃'이란 이 작품은 자세히 보면 아주 촘촘하고 얇은 실로 수를 놓았는데, 얼마나 정교한지 현대의 작가들도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얼마나 손이 꼼꼼하고 정교했는지 잘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것도 재밌습니다. 현대에는 사진이나 거울은 액자 같은 테두리에 넣어두는데, 옛날에는 그런 것이 없어 수를 놓은 천을 옆으로 덧대어 꾸몄어요. 현대인의 눈으로 보더라도 그 미적감각이 참 대단하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이걸 알까 모르겠네요. 이건 식기보란 밥통 보자기에요. 구들장에 아랫목이란 게 있던 옛날에는 밥을 지어 그릇에 담고 보자기를 씌워 뜨뜻한 아랫목에 넣어 두었죠.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어머니가 아버지 들어오시면 따뜻한 밥을 내려고 이렇게 해두었던 기억이 있네요. 이거 보시고 옛날 생각에 눈물을 찔끔 흘리는 아주머니들도 많으시다고 합니다.

 

 

 

 

 

 

천연염색으로 세월이 많이 흘러도 여전히 고혹적인 모습이네요. 그런데 왼쪽 아래의 신부 그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금 자세히보면...

 

 

 

 

 

 

이 신부의 그림은, 영국인 '엘리자베스 키스'의 <신부>라는 동판화(에칭) 작품입니다. 1938에 만들어진 이 판화는 전세계에 딱 10부만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게 동양자수박물관에 하나가 있었어요. 그런데 신부의 모습을 보면 결혼하는 날 전혀 기쁜 얼굴이 아니고 굉장히 슬픈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왜 저렇게 조선의 신부를 표현했을까요?

 

옛날 혼례를 마친 신부는 발이 땅에 닿으면 안되기 때문에 가족들이 그녀를 들고 첫날밤을 보낼 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눈을 떠서 세상을 보면 안되는 법도가 있었는데, 그래서 신부의 눈꺼풀에 한지를 붙여 두었어요. 왼종일 가족들과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들어온 신랑이 눈에 붙은 한지를 떼어 주어야만 비로소 세상을 볼 수 있었죠. 하루종일 굶고 저렇게 앉아 남편을 기다리던 신부가 엘리자베스의 눈에 기쁘게 보였을리 없었고 이해도 안됐을 겁니다. 태어나서 가장 예뻣던 그 날, 신부는 왼종일 굶고 긴장한 몸으로 미동도 없이 신랑을 가디렸겠죠.

 

 

 

 

 

 

복도에도 작품들이 여럿 전시되어 있어요. 오른쪽 큰 천은 '횃대보'란 건데 이것도 연식이 조금 되시는 분들은 다 아실거에요. 최근 '백년손님' 방송에서 할머니가 장농을 여니 이불을 덮어 놓은 횃대보가 나왔었죠. 해방 후, 50-60년대에 일명 '십자수'란 서양문화가 들어와 유행했던 겁니다. 방 벽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을 덮거나 장농 속의 이불을 덮는데 많이 사용했었죠.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이 숨어 있을 줄 몰랐습니다. 강릉여행에서 예술창작인촌에 있는 동양자수박물관은 한 번쯤은 꼭 구경해보시길 추천합니다. 감동적입니다.

 

+ 관람료 : 어른 4천원, 초/중/고 3천원, 유치원 2천원

+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12월~2월 오후 5시까지)

+ 휴관일 : 1월 1일과 명절

 

 

6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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