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콤플렉스는 만병통치약인가? 영화 '손님'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영화 '손님'은 어린시절 읽었던 독일의 동화인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쥐떼가 들끓는 마을에 피리 부는 이방인이 들어와 쥐떼를 몰아낸다는 설정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조금 달라진 점은 다라가 아파 무리 아이들에게 끼지 못하여 관찰자 입장이었던 절름발이 소년이 약장수 '우룡(류승룡 분)'으로 캐릭터가 합쳐지고, 배경이 한국전쟁이 끝난 한국의 어느 시골마을이라는 점입니다. 이질적인 공간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해서 이 영화를 봤습니다. 김광태 감독은 서양의 이야기를 한국적 이야기로 스며들게 하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인 걸로 보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는 어정쩡한 구성으로 결론적으로 레드콤플렉스 하나만 제대로 남긴 꼴이 되었네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아니, 휴전했을 무렵, 피리 부는 악사인 우룡과 그의 아들 영남은 서울로 가던 중 어느 마을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됩니다. 우룡은 아들의 폐병을 고치러 서울로 향하던 중인데, 마을 촌장(이성민 분)에게 마을에 들끓는 쥐떼를 없애주면 소 한 마리 값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지만 우룡은 그 돈이면 아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피리를 불어 마을의 쥐떼를 소탕해주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소 한 마리 값이 아닙니다. 마을에는 전쟁통에 벌어진 비밀스럽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드콤플렉스' 즉, 적색공포증이라고도 합니다.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과장되고 왜곡된 공포심을 근거로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거나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적 심리를 말합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이걸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고요. 영화 '손님'은 한국사회가 '빨갱이'라는 한 마디 말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효과적으로 적들을 제거해 주는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이 한마디에 정상적인 의식 활동을 하지 못 하고 과거의 피해의식에 대한 방어를 위해 본능적으로 무자비한 폭력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피리 부는 것 밖에 없는 우룡이 쥐떼를 몰아내고 받은 것이라곤 소 한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손가락이 잘리고 '빨갱이'와 '간첩'이라는 누명입니다. 촌장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저 상대방을 빨갱이로 몰아세워 마을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킵니다. 이 방법은 꽤나 효과적으로 작용하여 우룡과 친분을 쌓던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적으로 돌변합니다. 마을 사람들에겐 징글징글한 쥐떼보다 공산당이 더 무서운 존재였던 거죠. 이런 현상이 현대 정치와 사회에서도 잘 먹혀들고 있고 사람들에게 막연한 공포와 위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 '손님'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룡은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를 따라 다니며 피리 부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만병통치약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약입니다. 우룡은 빨갱이가 아닐 뿐더러 그가 지키려 한 것은 폐병 걸린 아들래미와 마을에서 만난 과부 선무당(천우희 분) 뿐이었습니다. 그가 럭키스트라이크 양담배와 정력에 좋은 약을 만들어 주며 아무리 마을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고 믿음을 주더라도 그의 가방에서 나온 'Kiss my ass, monkey'라고 적힌 쪽지를 간첩 지령으로 우기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촌장은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레드콤플렉스'의 적절한 이용은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비록 피리 하나와 욕설이 적힌 쪽지 한 장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말입니다.

 

레드콤플렉스의 문제는 현재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젭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제공하자는 사람도, 세월호 사건 때 적절히 대응을 못한 관련자를 처벌하자는 것도 빨갱이로 몰아세우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또 이 글을 보고 그들이 몰려오겠죠. 날 빨갱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네네 사람답게 살자는 게 빨갱이라면 전 그렇게 할랍니다. 적당이 들이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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