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틈 속에서 잊혀진 윤보선 전대통령과 그의 생가 | 아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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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로 독재자의 틈바구니 속에서 9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대통령을 역임했던 故윤보선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충남 아산시 둔포면인데, 지금도 그의 생가가 남아 있더군요. 아산에서 여행 막바지에 여러 후보지를 두고 어디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거의 잊고 있던 우리나라 4대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찾아갔습니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로 크게 나눌 수 있죠. 대한민국은 4.19혁명으로 독재정권이었던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고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한 내각제 기반의 헌정 체제를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장면 내각은 윤보선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당시 혼란했던 사회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바람에 윤 대통령을 온전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 그의 생가를 돌아 보면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윤보선 생가에 도착하니 조금 놀랍습니다. 제대로 된 주차장도 관리인도 보이질 않고 건물만 덩그러니 문이 열려 있군요. 윤 전 대통령 생가는 원래 99칸의 대저택이었어요. 현재는 사랑채, 안채, 문간채, 행랑채 등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윤 전 대통령의 부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지었습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자마자 큼직한 사랑채가 눈에 들어 옵니다. 다른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지어졌는데, 이 건물은 1920년대에 중국인 인부를 불러서 지었다고 해요. 표지판이나 다른 설명은 없지만 동네 노인분게 여쭤보니 그렇게 대답해주시네요. 윤보선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뒤를 이었지만 곧바로 박정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잊혀져 갔지만 그의 생가만이 그가 살았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택에선 볼 수 없는 유리 창문도 보이고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틀림 없어 보이네요. 독특한 건 보통 바깥으로 이어진 곳에만 대문을 다는데, 안채로 이어진 곳에도 안마당으로 이어진 곳에도 밖여닫이문이 달려 있고 별도로 담을 둘렀네요. 안전과 보안을 철저히 하려는 다른 의도가 있나 봅니다.

 

 

 

 

 

 

마당에서 지그재그로 꺽인 중문간을 들어오면 안채가 보입니다. 위 사진의 부엌 왼쪽에 있는 방에서 윤보선 전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시네요. 역시 그 어디에도 설명은 없었는데 이 지역에서 80년을 살아오신 할아버지가 자세하게 잘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윤 대통령은 1913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고, 영국에서 공부하다 해방 후 정치에 발을 디디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8년을 집권한 이승만이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12년 장기집권에 성공하자 대항하기 위해 야당을 통합하여 민주당을 탄생시킵니다.

 

 

 

 

 

 

 

중문간을 들어와 대문에 붙어 있는 안사랑채를 돌아보니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네요. 안사랑채와문간채의 지붕을 한단 겹치면서 잇대고 그 옆으로 문을 내었습니다.

 

 

 

 

 

 

안채 뒷마당 담벼락이 맞닿는 구석에는 여성전용 화장실이 있어요. 남자화장실은 솟을대문 바깥에 화장실이 있던데 재미있는 구조네요. 사용한지 오래되어 냄새는 안나겠다 싶어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 냄새는 안나네요. 이거 열어보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ㅎㅎㅎ

 

 

 

 

 

 

원래는 99칸의 대저택이었지만, 지금은 담도 일부 유실되고 중간 부분은 건물들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어요. 지금 아산시에서 뭔가 새로 지으려는지 땅을 고르고 연못을 파놓았던데,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기대가 되네요. 휑한 집의 가운데를 보니 그의 인생이 문득 떠오릅니다. 장면 내각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하려 했지만, 1961년 5월 16일 9개월만에 박정희의 군사정변으로 그 기회는 사라지고 박통에게로 바톤이 넘어가 버립니다.

 

 

 

 

 

 

99칸의 기와집에는 같은 집안인 해평 윤씨의 가옥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 개보수한 흔적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네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충청도 출신 대통령은 윤보선 밖에 없습니다. 그는 짧은 임기를 마치고 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와 다시 맞붙지만 15만표 차이로 낙선하고 야당 정치생활을 계속하게 됩니다.

 

 

 

 

 

 

저에게 이 집안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던 할아버지가 혹시 문이 열렸나 가보시는데, 문이 열려 있다며 구경해보라고 하십니다. 충청남도 민속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고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데다 문도 열려 있으니 잠시 들어가서 구경해도 되겠죠?

 

 

 

 

 

 

할아버지가 이 집안이 어마어마한 집안이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윤보선의 아버지가 윤치소인데, 그분은 그의 아버지 때부터 대지주셨고, 윤치소의 형은 이승만 정권 때 내무부 장관이었고, 셋째아들은 흥선대원군의 증손녀와 결혼했으니 귀족 중에 귀족집안이었네요.

 

 

 

 

 

 

한쪽 방에 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 보니 안에 액자에 담긴 흥미로운 사진이 한 장 있네요.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볼 땐 대한제국군 복장을 하고 있고 연로하신 걸로 봐선 윤 대통령의 할아버지 윤취동씨의 사진인 것 같은데 최근에 컬러로 복원한 것 같습니다. 우연찮게 이곳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 속의 사진을 만나게 되어 정말 흥분되더라고요.

 

윤보선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언론탄압을 할 때 ‘언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고 탄압이며, 나아가 언론 그 자체를 말살하려는 독재의 극치’라고 맹비난했었습니다. 이 말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점점 이상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거죠. 9개월간의 대통령으로 그의 업적이 하찮다 할지라도 앞으로 우리가 추구할 민주주의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 입장료/주차료 : 무료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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