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길 '오도재' | 함양여행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광고에서나 볼 법한 예쁜 길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에서 마천면 의탄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오도재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굉장히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길이에요. 함양 사람들은 오도재라고 부르고 다른 지역에서는 ‘지안치(지안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요즘은 고개 초입부터 길 전체를 오도재라고 부르더군요. 지금도 지도상의 공식 명칭으로는 구불구불한 길만 ‘지안치’로 표시되어 있고, 길 꼭대기만 오도재라고 표기하고는 있습니다. 그 옛날 내륙에서 남해 쪽으로 물물교환하기 위해서는 지리산 장터목까지 가야했는데, 이때 반드시 넘어가야했던 고개가 바로 이 길이었습니다.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던 이곳. 들어가 볼까요?

 

구룡리 지방도로를 따라 남원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로 넘어가려는데 저 멀리 언덕에 독특하게 생긴 길이 보입니다. 뱀이 몸을 움직여 산을 넘는 형상 같기도 하고 참 재미나게 생긴 길이네요. 길을 가다 ‘지리산 가는 길’이란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두 재를 넘으면 남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구룡천을 건너 조동마을회관 앞을 지나면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머리에 수건을 두른 동네 할머니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여기 머 찍을 게 있노?” 길이 예뻐서 사진에 담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오르기 힘들기만하재 이쁘기는 머가 이쁘노” 그러십니다. 이 길이 보고 싶어 먼 길을 온 사람들도 있지만, 그 옛날 짐을 머리에 이고 이 고개를 넘어다녔을 그녀들에겐 징글징글한 길이었을 겁니다. 아무튼, 마을회관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의 비탈길이 시작되고, 이내 굽은 지안재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 옵니다.

 

 

 

 

 

 

굽은 고갯길을 조금 올라오니 갓길에 조망대가 있어 방금 올라온 길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구불구불 굽은 길이 정말 아름답네요. 날씨가 조금 도와줬다면 더 멋진 사진이 나왔을 텐데 조금은 아쉽습니다. 야경 담으러 해지기 전에 남원으로 가야해서 여기서 밤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이래저래 아쉬운 날이네요.

 

 

 

 

 

 

이 길을 오르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옛 전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조선 15세기 정여창, 김종직, 김일손, 유호인, 서산대사 등 많은 유학자와 수행자들이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죠. 저도 이 길을 넘었으니 깨달음을 하나라도 얻었을까요?

 

 

 

 

 

 

이곳에 도착하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보고 또 보게 되는 참으로 멋스러운 길입니다. 지리산 자락은 드높아 하늘에 맞닿았고, 한 굽이를 돌면 또다른 굽이가 나타납니다. 이번 고비가 끝일까 싶어도 또다른 고비가 어김없이 찾아오고, 훗날 뒤 돌아 보면 참 아름다웠던 우리네 인생사와 똑 닮아 있네요.

 

 

 

 

 

 

이 길을 일부러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고개를 오르면 기어코 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오도재를 넘으면 지리산 제1문을 만나고 이제 속세를 벗어나 오로지 산과 하늘만 열려 있는 첩첩산중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산을 넘다 보니 길 옆으로 ‘옛날 주막’이란 간판이 보입니다.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막걸리 한잔 얻어 마시고 갈까 들어가 봅니다.

 

 

 

 

 

 

봄이 돼서야 영업을 시작할 건지, 지금은 개점휴업상태인 것 같군요. 아주 오래된 작은 오두막이 있는 걸로 봐서는 그 옛날엔 산을 넘다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힘든 다리를 잠시 쉬어갔을 것 같네요. 사람 두 명이 누우면 딱 맞아 보이는 작은 너와집을 보니 이곳에서 길손님을 받아 생활했을 사람들이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작은 오두막을 처음 보기도 했고, 여기서 팔았을 막걸리 한잔이 어떤 맛이었을지 참 궁금합니다. 고개를 넘으며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 이곳에 앉아 늙수그레한 주모가 엄지손가락 푹 담갔다 주는 술 한잔 정말 꿀맛이었겠죠?

 

 

 

 

 

 

주막을 지나 한 굽이를 더 올라와 고개의 꼭대기에 오르니 해발 773m에 ‘지리산 제1문’이 보입니다. 이곳에는 주차장과 전망대, 그리고 간단한 휴게소가 있는데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이곳에서 풍광을 보고 읊었던 한시들을 돌에 새겨 곳곳에 놓아 두었습니다.

 

 

 

 

 

 

옛날에는 오도재 정상에 성황당이 있었다죠. 고개를 넘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소원을 빌었던 자리였는데, 2003년 지리산 가는 길 개통식 때 산신비를 세워 다시 소원을 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곳을 만나면 소원은 빌어봐야죠. 혹시 알아요? 소원을 덜컥 이루어 질지.

 

 

 

 

 

 

지리산 제1문 문루 오른편에는 ‘오도산령신지위’라 세긴 작은 비석을 모신 산신령비각이 높다란 석축 위에 서 있습니다. 남해에서 해산물을 이고지고 이 산을 넘어 함양을 지나 내륙으로 보내야했던 사람들에게 이 고개는 눈물의 고개였을 겁니다. 그리고 신라시대부터 6.25한국전쟁까지 이 고개는 언제나 방어선이었던 곳인데, 재 너머 촉동에는 피난왔던 가락국 왕의 대궐터 흔적도 있습니다. 이들의 소원들이 여기에 모여 비석이 바라보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으로 소원을 날려보냅니다.

 

 

 

 

 

 

평일 낮 여행의 힘일까요? 지리산 제1문루에 올라 앞뒤를 바라보니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산과 하늘 밖에 보이질 않네요. 오로지 하늘과 땅 사이에 저밖에 없는 호젓한 느낌 참 좋~습니다. 이 전각을 가로질러 산을 조금 오르면 1.6km 정도 떨어져 있는 법화산 정상이 나옵니다.

 

 

 

 

 

 

지리산 제1문을 통과해 언덕을 잠시 내려오면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지리산 조망공원이 있어요. 거기 정자에 오르면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들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하늘 아래 홀로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네요. 조금 맑았다면 더 멋진 풍경이었을 텐데 조금 아쉽네요.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실루엣이 천왕봉(1,915미터) 정상입니다.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오르는 가장 단거리 코스는 오도재를 넘어가는 겁니다. 뱀처럼 구불구불 난 아름다운 길을 따라 지리산의 주능선들도 한 눈에 감상하고, 대자연의 어머니라 불리는 지리산 자락에서 그간의 근심을 모두 털어버리시길 바랍니다.

 

 

함양/남원여행코스 8편 계속...(연재중)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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