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한글 현판이 있는 '봉선사' | 남양주 가볼만한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대장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불교 대중화에 힘쓰신 운허 스님. 그분은 최초로 한글판 <불교사전>도 만드는 등 많은 업적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절간 대웅전 현판을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한글로 만드셨다는 것도 있습니다. 현판 하나 한글로 만든게 무슨 큰 일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교는 대부분의 책과 글들이 한자로 되어 있어요. 한글로 되어 있다고 해도, 한자의 음만 한글로 표기했다고 할까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한자를 모르면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운허 스님의 한글화 시도는 대한민국 불교 역사에서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선사 가는 길이 참 아름답습니다. 하늘을 완전히 가릴 듯한 광릉수목원 낙엽송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봉선사에 닿습니다.












절간이 광릉과 국립수목원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접근하기 참 수월합니다. 봉선사는 교려 광종 20년(969년)에 지어진 사찰인데요. 훗날 조선의 8대 왕인 예종에 와서 세조의 무덤인 광릉을 보호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큰 규모로 중창된 곳입니다. '봉선(奉先)'이란 이름에서 보듯이 선왕을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봉선사' 현판은 애초에 예종이 직접 쓴 것으로 걸려 있었는데, 전쟁통에 지금은 다 타버리고 한글 현판으로 걸려 있습니다.






이곳은 아직 한겨울인가요. 절간 앞 연꽃밭은 완전히 꽁꽁 얼어 있네요.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올라오면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있어요. 500년 전 세조가 죽자 정희왕후가 광릉을 보호하려 봉선사 양지바른 곳에 심었다고 하네요.







정월 대보름에 태울 짚단인가 봅니다. 올해 정유년 대보름이 2월 11일이었으니, 지금쯤 소원들은 다 하늘로 날아가고 없겠네요.







짚단 뒤 범종루 속에는 보물이 하나 있습니다.






봉선사동종. 조선의 7대 왕 세조가 죽자 아들인 예종이 즉위하자마자 주성한 겁니다. 글과 그림의 묘사가 대단히 섬세하게 남아 있네요. 현재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봉선사는 구조가 꽤 독특하게 되어 있어요. 사천왕문, 해탈문 등 보통의 사찰을 들어갈 때 거치는 형식적인 문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웅전 올라가는 높은 솟을대문은 마치 지체 높은 사대부의 집인 것 같네요.







길게 늘어선 행랑채가 원래 이 사찰의 규모가 어땠을 지 잘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공식적으론 여길 회랑이라 부르던데, 복도가 아니라 온전한 건물 구조인 걸로 봐선 행랑으로 보입니다. 행랑채가 많다는 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겠죠? 지금은 스님들의 요사로 쓰이고 있는지 용도를 모르겠네요.







여기가 보통 대웅전으로 부르는 '큰법당'입니다. 운허 스님이 한글로 현판을 걸어 놓으셨어요. 현판만 보더라도 불교 대중화에 힘써왔던 봉선사의 면면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시다 30세에 출가한 운허스님의 불교 대중화 의지가 담긴 한글 현판. 우리나라에서는 봉선사가 유일합니다.







그리고 큰법당 내부엔 보물 제1792호로 지정된 삼신불괘불도가 걸려 있고, 사방 벽엔 한글과 한문으로 동판에 새긴 '법화경'이 붙어 있어 대단히 이채롭습니다. 기도 중에 셔터를 터뜨릴 수 없어 밖에서 촬영했는데, 안에 들어가서 차분히 구경해 보세요.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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