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건축미의 극치. 조선이 가장 먼저 세운 건축물 '종묘' | 서울여행

조선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이념을 '유교'로 삼았습니다. 유학이라고도 하죠. 이는 태조가 나라를 만들 때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유교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왕이 머물고 업무를 보는 궁궐, 조상들을 모시는 종묘, 그리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입니다. 드라마에서 '종묘사직을 보존하옵시고....' 어쩌고저쩌고 할 때가 있죠? 이게 바로 조선 유교사상의 근간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태조는 조선을 세우면서 가장 먼저 건축한 것은 종묘였습니다. 1394년 10월 공사를 시작해서 이듬해 9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요. 조선왕조의 유교적 전통과 국가의 제례 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입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고, 여기서 행해지는 제례와 제례악도 무형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나들이하기 참 좋~은 날씨구나~ 버스 정류장에 내려 종묘를 바라보면 먼저 '하마비(下馬碑)'가 보입니다. 한자 그대로 말에서 내리라는 명령인데, 조상의 신주나 어진을 모시고 있는 곳, 궁궐, 고관의 출생지 등에선 어김없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해야만 합니다.







종묘의 입구 '외대문'. 입장료는 만 25세~64세까지 1천원이 있습니다. 나머진 무료.







우리가 현대에 와서도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유교이념 때문입니다. 조상의 숭배, 예의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영혼을 모시기 위한 매개체인 '신주(神主)'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요. 그 신이 걸어다니는 길도 별도로 있었어요. 길 가운데는 신만 다니는 길인 '신도'라고 부르고, 우측는 왕만 다니는 길인 '어도', 좌측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라고 부릅니다. 이 법칙은 비록 왕이라도 어길 수 없습니다.











여긴 향대청. 향, 축문, 폐백을 보관하는 장소인데,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들이 대기하고, 이곳을 관리하는 집사들이 사는 집이기도 합니다.







내부에는 작은 박물관처럼 되어 있네요. 제사에 사용하는 집기들을 전시하기도 하고...







조선 왕들에 관한 약간의 유물도 구경할 수 있어요. 위 빨간 대나무에 금으로 글을 세긴 책(영조 죽책)은 영조가 정조를 세손으로 임명할 때 내린 문서입니다.







여긴 재궁. '궁(宮)'자가 들어 있으니 왕과 세자의 공간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왕과 세자가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준비하던 곳이에요.







어제실 안에는 왕이 십이장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네요.


그런데 여기서, '궁' 과 '궁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왕이나 세자가 먹고 자는 일상생활하는 곳은 '궁'이라고 부르고요. '궐'은 업무를 보는 사무공간을 말해요. 둘 다하는 곳을 '궁궐'이라고 부릅니다. 간혹 일반 집에 살다가 왕이 되거나 세자로 책봉되면 전에 살던 집을 '궁'이라고 격상시킬 때가 있는데, 바로 고종이 태어났던 '운현궁'이 그런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제정'입니다. 조선 519년간 제사에 사용했던 우물은 지금도 마르지 않았네요.






신도가 꺾여 들어가는 곳엔 종묘의 정전이 있습니다.







여기가 정전 남쪽 입구인 남문입니다. 유교에서는 영혼이 머무는 매개인 신주를 모시는 곳을 사당이라고 부르죠. 이곳은 왕과 왕비의 영혼을 모시는 사당이라 보면 됩니다. 현재 국보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전은 가로 109미터, 세로 69미터의 넓은 월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긴 목조건축물입니다. 박석을 깐 단을 월대라 하는데, 정전이 있는 곳을 상월대, 사진에 보이는 아래 박석 부분을 하월대라 부릅니다. 전 우리나라 궁궐의 정전 앞에 깔린 월대를 볼 때마다 감동스러워요. 절묘하게 내린 구배로 아무리 많은 비가와도 물이 고이질 않습니다. 비 많이 내리는 날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보면 박석 사이로 흐르는 물이 굉장히 놀라워요.







정전에는 신주를 모신 태실 19칸과 양쪽 2칸은 협실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 지었을 때는 7칸이었는데, 후대에 증축하여 이렇게 커졌어요. 세월이 더 흐르고 더 이상 신주 모실 공간이 없어지자, 서쪽에 영녕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정전의 기둥은 일자로 한줄에 20개가 늘어서 있고 19칸의 문이 있어요.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볼 수 없습니다. 이건 아마도 고인에 대한 예의 때문일 겁니다.







19칸의 태실에는 19명의 왕과 30명의 왕비를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의 왕이 총 27명이었지만 공덕이 높은 19명만 정전에 모시고 있고, 나머지 중 일부는 또 영녕전에 모시고 있습니다.







종묘의 건축물은 자세히 보면 지붕에 단청을 칠하지 않았어요.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화려한 치장은 자제한 겁니다. 창덕궁의 낙선재 또한 상중(喪中)인 왕후들이 지내는 곳이라 마찬가지로 단청이 없죠.












여기는 정전에 신주를 모실 공간이 없어지자 세종 때 별도로 만든 영녕전입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처음엔 6칸으로 지었으나, 훗날 공간이 부족해서 16칸으로 늘렸습니다. 가운데 4칸은 태조 이성계의 부모와 고조부를 모신 곳이라 다른 곳보다 지붕이 조금 높은게 특징입니다. 현재 보물 82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전은 공덕이 높은 왕들만 모셨고, 영녕전은 비교적 뚜렷한 업적이 없거나 재위 기간이 짧은 왕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어요.









종묘에 신주가 없는 왕은?


조선은 태조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519년간 총 27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묘에 모시고 있는 신주는 25개 밖에 없어요.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의 신주는 모시고 있지만,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은 종묘에 모시질 않았어요. 유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조상을 공경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세상을 떠난 뒤 삼년상을 치르고도 묘호(임금이 죽고 생전의 공덕을 기리며 붙인 'x종, x조'와 같은 이름)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연산군은 생모인 폐비 윤씨를 궁에서 내쫓고 죽였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후궁을 죽이고, 할머니 인수대비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유였고, 광해군 또한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왕위를 찬탈당하고 유배지에서 죽어서 묘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광해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많지만 아쉽게도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조선이란 나라에 살지 않는 지금의 우리가 결정할 할 일이 아닌가 봅니다.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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