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를 잇는 묵직한 SF영화 '오토마타(Automata)'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몇 일 전, 애리조나에 사시는 '노라'님의 추천으로 영화 <오토마타, Automata>를 알게 되었습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역설적인 희망을 말하는 그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주저 없이 봤지요. 혹시 1982년 영화인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라는 SF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오토마타를 보니 SF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의 성서같은 존재인 블레이드 러너가 번뜩 떠오르더군요. 시종일관 삶과 죽음에 관한 진지한 철학적 사유가 매우 돋보이는 걸작입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요, 2019년을 배경으로 헤리슨 포트가 주연했던 이 영화는 며칠 후 자세히 이야기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다시 오토마타로 돌아와서, Automata는 인류가 거의 멸망하고 극소수만 살아남은 2044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44년 지구는 사막화가 심해져 인류의 종말이 가속화되자 인간은 자신을 도울 '오토마나 필그림 7000'이란 로봇을 만드는데요, 이 로봇들에겐 2가지 프로토콜이 적용되었습니다. 첫째는 '로봇은 생명체에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다.'와 둘째는 '로봇은 스스로 또는 다른 로봇을 고치거나 개조할 수 없다.'입니다. 이는 아마 로봇들이 스스로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진화하는 것을 견제해서 결국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규약에도 불구하고 로봇들이 스스로 치료하거나 다른 로봇들을 개조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자, 로봇 피해를 보상하는 보험회사의 직원인 '잭 바칸(안토니오 반데라스 분)'은 조사에 착수합니다. 결함이 있는 로봇들을 조사하던 바칸은 필그림 7000을 개조한 배후세력의 비밀을 알아내지만, 오히려 자신이 누명을 쓰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하, 스포 생략)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지 못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배역들의 심리에 공감하기 어렵다.' 등 혹평하는 걸 종종 볼 수가 있는데요, 개인적으론 이런 평가에 수긍이 안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회사와의 1차원적인 갈등이나 임신한 아내가 인질이 되는 것처럼 진부한 클리셰는 한숨이 잠시 나오기도 했지만, 자신의 딸을 어딘지는 모르지만 미래가 있는 곳에서 키우고 싶다는 바칸의 바램과 그에 따른 행동들은 충분히 공감 가는 개연성이 있고, 살짝 삐걱거리긴 하지만 다른 상황들과 유기적으로 엮여있다고 봅니다.

가베 이바네즈 감독이 추구하는 바는 인간과 로봇의 긴밀한 협력에 있습니다. 이미 인간보다 월등한 지능으로 진화해버린 오토마타 필그림 7000은 더 이상 인간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수십 년 후 우리를 구원해줄 공생관계에 있다는 게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두 번째 프로토콜이 제거되어 진화를 거듭한 로봇들은 인간이 느끼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심지어 살려달라고 손을 들어 공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로봇에게 거리낌 없이 총질을 해대는 건 오히려 인간입니다. 이바네즈 감독은 이런 상황을 잔인하게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오토마타>는 인간을 지켜주려는 정직하고 착한 로봇을 통해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려 합니다. 영화 속에서 인간들은 필그림 7000에게 막연한 위협을 느끼지만 사실 더 무서운 건 인간들입니다. 인간이란 종족은 그다지 정직하지 않고 겁이 많아 자신의 실수를 덮으려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도 서슴치 않고, 로봇들이 통제가 불가능해질 거란 막연한 공포심으로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려 합니다. 그러나 로봇들은 그저 '생존'이 아니라 '살아가기'위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려 애쓰는 존재들이죠. 영화는 이러한 인간들의 겁에 질린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바칸은 항상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바다를 동경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바다에서 키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많은 평론가들이 바칸이 왜 두 번째 프로토콜이 제거된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사람들은 인큐베이터 같은 파드(pod)의 보호를 받고 살지만, 파드 밖의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으로 새로운 세상을 대한 동경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이는 바칸의 부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프로토콜을 제거하고 스스로 진화한 로봇들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고 있죠. 바칸 또한 그들과 같이 바다를 꿈꿉니다. 두 번째 프로토콜의 제거는 인류를 다시 바다로 데려다줄 희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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