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다이어트 될 것 같은 공포영화 '샤이닝 (1980)'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진짜 무서운 공포영화는 어떤 걸까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마마'의 엄마귀신? 개인적으로는 컨저링처럼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가 더 공포스럽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80년도 작품 <샤이닝>이 바로 그런 영화인데요, 사랑하던 남편, 그리고 아빠가 뭐에 씌였는지 도끼를 들고 죽이려고 덤벼든다면 이것만큼 소름끼치는 게 또 있을까요? 살점이 떨어지거나 피를 흘리는 장면은 거의 없지만 고요하던 처음부터 격렬했던 마지막까지 한 순간도 몸에 힘을 뺄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살이 저절로 빠질 것 같은 '다이어트용' 공포영화라고 할까요?

미국 콜로라도 두메산골에 있는 오버룩 호텔은 가을까지는 사람이 붐비지만 겨울에는 폭설로 문을 닫습니다. 겨울 동안에 호텔이 파손되지 않도록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전직 교사이자 지금은 소설을 쓰는 '잭 토랜스(잭 니콜슨 분)'가 이 일을 맡기로 합니다. 산 속 호텔에 몇 개월간 갇혀 있어야 하지만, 그에게는 글을 쓰기 위한 더 없이 좋은 장소인 셈입니다. 잭은 아내 웬디와 아들 대니를 데리고 호텔로 들어가는데, 곧 눈이 내리고 호텔은 고립무원으로 바뀝니다. ※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호텔 로비에서는 잭의 타자기 소리만 조용히 울리고, 아들 대니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호텔 여기저기를 누비며, 아내 웬디는 수백 명의 요리를 하던 큰 주방에서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합니다. 그런데 무료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이들은 호텔에선 알 수 없는 정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정체는 호텔에서 죽은 악령들인데 쌍둥이 딸과 아내를 무참히 살해한 아버지와 그의 딸들도 있고, 호텔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이 객실과 연회장 등 곳곳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그러다 결국 악령들에게 조종을 당한 잭은 도끼를 들고 가족을 죽이려고 필사적입니다.

 

 

 

 

영화 <샤이닝>은 악령이 득실대는 호텔에 갇혀 서서히 미쳐가는 잭과 대니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눈엔 도끼로 무참히 살해당한 쌍둥이 자매가 보이고, 잭에겐 가족을 살해하라는 죽은 호텔 집사의 영혼이 계속 맴돕니다. 전화는 끊겨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잭인 미쳐 돌아가 무전기와 눈길을 이동할 수 있는 자동차 스노우캣을 파괴해 버리는데, 가족들에겐 잭의 존재가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보다 더 무서울 터.

이 영화가 정말 무서운 이유는 별것 아닌 것같은 일상적인 대사와 상황 때문에 그렇습니다. 잭은 소설을 쓰느라 예민해져 아내가 접근하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는데, 어느 날 웬디가 그의 원고를 보게 됩니다. 수북이 쌓인 원고에는 모두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라고만 적혀 있어요. 이건 미국 속담인데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 같은 애가 된다.'라는 뜻인데, 잭이 완전히 미쳐있다는 걸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쳐버린 잭이 두려워 방으로 올라오지만 아들은 문짝에다 빨간 립스틱으로 'REDRUM'이라고 적어놓고 '레드럼'이라고 계속 외쳐댑니다. 글자를 거꾸로 읽으면 'MURDER(살인)'가 되네요.

 

그리고 방으로 올라온 잭은 도끼로 문짝을 부수고 머리를 들이밀며 "웬디, 나 왔어!(Wendy, I'm Home!)"라고 다정하게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가뜩이나 생긴 것도 눈섭이 치켜 올라가서 무섭게 생겼는데, 웃으면서 도끼들고 달려드는 놈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마지막으로 대니는 잭을 피해 호텔 마당에 있는 미로 속으로 도망치는데, 찢어질 듯한 바이올린 선율과 빠르게 훅~하고 클로즈업 하는 화면효과로 마지막 호흡까지 공포는 극으로 치닫습니다. 부드럽게 등장인물을 원 테이크로 따라다니는 스태디캠 또한 공포영화에선 잘 쓰이지 않는 기법인데, 그래서 더욱 더 공포스럽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다이어트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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