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고 더 나은 삶을 원했던 사람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서울여행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이후 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화를 갈망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현장입니다. 감옥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1908년 10월에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지어져 80여 년 동안 우리 근현대사 격동기의 한이 그대로 서려있는데요. 항일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표적인 탄압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까운 곳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산에 살 땐 해운대를 가지 않았고, 서울 서대문구에도 오래 살았음에도 서대문형무소의 존재도 몰랐습니다. 부끄러움을 지금에서야 뉘우칩니다.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먼저 독립문이 보입니다. 서대문형무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있으니 잠시 이야기하고 갈게요. 문 위치가 서대문형무소가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있어서 마치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독립문은 일제강점기가 오기도 전인 1897년 구한말에 완공되었습니다.


인조 시절 삼전도의 굴욕으로 1637년부터 조선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조공국으로 전락합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중국으로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던 굴욕적인 체제에서 독립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립문 건립은 일본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대한제국을 점령하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었는데, 조선이 청나라에 의존하고 있으니 그랬을 겁니다. 독립문 편액을 을사오적 이완용이 썼다는 것만으로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독립문에서 200미터 정도 언덕을 오르면 형무소가 보입니다. 누가 봐도 감옥인 걸 알겠죠?







망루가 공사중이라 아쉽네요.






큰 대문을 들어오면 먼저 전시관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1923년에 지어진 '보안과청사'였는데 서대문형무소의 중심 건물입니다. 지하부터 지상2층까지 역사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족쇄. 수감자 이동이나 노역 시 탈주를 막기 위해 썼겠죠. 보고 있자니 분해서 손발이 살짝 떨립니다. 전시물이 많으니 자세한 건 훗날 직접 가서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너무 가슴 아픈 곳에선 카메라를 꺼낼 용기가 안 생기더라고요.







어느 복도에 있던 수많은 사진들... 이게 뭔가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곳에 수감되었던 우리 독립투사들의 수형기록표입니다. 10대로 보이는 소년, 소녀의 사진도 정말 많아요. 누가 옆구리 쿡 찌르면 금새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어요.







이곳은 사형집행 또는 매 맞고 숨진 수감자 시체를 처리하던 공간입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독립투사들이 여기서 수습되었어요. 가운데 유관순 열사가 있네요.







여긴 손톱찌르기 고문실...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누구나 이곳에선 분노가 확~ 치밀어 오릅겁니다.







무자비한 일제는 고문 방법도 참 다양하네요. 좁은 공간에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세워두는 고문. 정말 잔인합니다.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들은 신기하고 재미난 지 신났어요. 아이에게 여기서 숙연해지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보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재미나게 보고 가거라~







본 옥사 옆에는 여죄수만 별도로 모아놓은 여옥사가 있습니다. 형량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사형수만 별도로 가둔 옥사입니다.






옥사 내부를 공개하고 있는데, 죄수들이 실제 사용했던 신발, 버선 등이 있어요.

죄송하고 눈물나서 사진을 자세히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돌아가시기까지 갇혀 계셨던 8호 감방.







그녀의 판결문과 수형기록표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징역 3년형을 확정 받았지만 무지비한 고문에 18세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수형기록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맞아서 부은 얼굴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요.







다른 감방에 계셨던 이영자 열사. 나라 뺏기지만 않았어도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분하다...







수형자를 본격적으로 가둬두던 왼쪽에 툭 튀어나온 중앙사와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진 옥사 3곳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습니다.







뒤에서 보면 옥사가 욱일기처럼 방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지였냐면요...







중앙사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한 사람이서 3개의 옥사를 모두 감시하기 위해서죠. 왼쪽부터 10, 11, 12옥사.







10옥사는 현재 개방을 안하고 있고요.







11, 12옥사는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어요. 방 내부는 대부분 공개되어 있는데, 화장실도 별도로 없는, 정말 처지가 딱하더라고요. 근대에 들어서는 故김근태 국회의원도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시다가 이곳에 수감되셨습니다.












이곳은 일반 감방보다 더 좁고 열악한 독방입니다. 불빛도 안 들어오는 껌껌한 방이라고 '먹방'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죄나 짓고 들어갔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텐데...







옥사 담벼락엔 6.25 한국전쟁 때 생긴 총탄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형무소 한쪽 끝에는 사형장이 있습니다. 담벼락 안에는 지하 1층, 지상 1층의 작은 일본식 목조건물이 하나 있는데, 1층은 교수 줄이 내려와 있고 레버를 내리면 마루판 밑으로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내부 모습은 끔찍하고 분해서 사진으로 담고 싶지 않아요.












형장 담벼락 앞에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되었던 미루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일명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부르는데,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애국지사들이 이 나무를 붙잡고 한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그 한이 서려 잘 자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보여드린 이외에도 강제노역을 시키던 공작사, 밥 짓던 취사장, 수감자들의 교류를 막기 위해 격벽을 세워 운동시켰던 격벽장, 한센병 환자를 수감했던 한센병사,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더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비 등이 더 있으니 가셨다면 모두 관람하고 오세요. 공정하고 더 나은 삶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합니다.


[관람시간 및 입장료]


- 여름철(3월~10월) : 09:30~18:00

- 겨울철(11월~2월) : 09:30~17:00

- 휴관 : 매주 월요일(공휴일에는 그 다음날), 명절 당일

- 입장료 : 어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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