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려면 이 글도 읽지마세요. '타임 패러독스'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왜 이런 영화가 VOD서비스로 먼저 출시가 되었을까. 호주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대부분의 국내외 상영관에서 외면을 받고 VOD 서비스로 먼저 개봉을 하거나, 영화관과 동시개봉을 했습니다. 저도 유선방송에서 5천원 쿠폰이 생기는 바람에 별 기대를 안 하고 며칠 전 이 영화를 봤었죠. 그런데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영화의 구성과 상상력이 기존에 볼 수 없는 놀라운 반전을 품고 있는 시간여행 영화라는 점에서요. 그리고 감독이 생각하는 철학적인 냉소까지 잘 버무려져 나무랄 때 없는 매끈한 영화였어요. 가끔 재미없다는 분들도 보긴 했는데 아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을 해석을 못해 그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글도 보지않고 감상하길 바랍니다. 몇 차례 반전이 들어 있다는 걸 아는 것도 감상에 방해가 될테니까요. 그러나 아래 내용 중에 스포는 없습니다.

한국 제목 '타임 패러독스'의 영제는 'Predestination(숙명, 운명)'입니다. 두 제목에서 보듯이 이 영화는 시간의 역설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SF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짧은 소설인 <당신들 모두, 좀비들(All You Zombies)>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곳곳을 지속적으로 폭파하는 폭파범을 잡기 위해 시간여행을 통해 밝혀지는 주인공들의 비밀은 놀라운 반전과 함께 전개됩니다.

 

뉴욕을 초토화시킨 폭파범 '피즐 바머'를 잡기 위해 비밀 정부기구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템포럴 요원(에단 호크 분)을 파견하지만, 피즐 바머가 설치해둔 폭발물에 얼굴을 다칩니다. 템포럴 요원은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이식수술을 받고 이번엔 바텐더로 위장취업을 하는데, 거기서 '존'이란 의문의 남자 손님을 만나고,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납치당했던 '제인'이란 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템포럴이 그에게 묻습니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당신 인생을 망친 사람을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그리고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보장해준다면 당신은 그를 죽이겠소?"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그것도 안전하게 빠져나가도록 보장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존은 템포럴과 함께 문제의 순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이렇게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영화는 쉴 새 없이 과거와 현재를 발 빠르게 넘나들며 뒤엉킨 이들의 운명 속으로 3번의 반전과 3번의 충격을 선사합니다. 복잡한 철학적 사색을 포함한데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시간여행이란 개념까지 포함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 한눈팔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지난 수십 년간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는 참 많이 나왔었죠. 이제 이런 SF소재는 조금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골 소재가 되었지만, 정작 타임머신은 아직까지 개발되지도 앞으로 개발 될 수도 없는 상상의 기술이죠. 하지만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더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존잽니다. 버튼 하나면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는 이런 상상력은 거꾸로 갈 수도 생략도 할 수 없는 오로지 앞으로 한 칸씩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 인생의 단조로움에 대한 빈 칸을 채워줍니다.

 

그런데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시간여행의 신기함만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존재에 대한 의미와 존재로 발생하는 악랄함, 살인을 막기 위해 다른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풀리지 않는 삶에 대한 철학적 냉소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을 망친 자를 내 앞에 데려다 주면, 그리고 나에게 피해가 없다면 죽이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존의 대사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 인생을 망친 자가 바로 나 자신일 경우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릴까요? 인간 개개인은 죽지만 인류는 계속 살아남습니다. 우리는 좀비처럼 죽지 않고 계속 윤회를 거치며 죄를 짓는 존재가 된 걸까요? 여기서 영화 원작 단편소설의 제목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당신들 모두, 좀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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