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로 돌아간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헤이트풀8'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장편영화 10편만 연출하고 영화 그만두겠다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여덟 번째 작품 <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입니다. 1996년 <저수지의 개들>로 화려하게 데뷔한 타란티노 감독은 기존의 대표작들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 <킬빌>시리즈 등 자신만의 확고한 영화적 세계가 있는 감독으로 유명하죠. 이번 <헤이트풀8>에서도 감독이 누군지 모르고 보더라도 '이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일 거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만의 독특한 색채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보듯이 이 영화에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여덟 명의 등장합니다. 그리고 몇 명의 주/조연 등장인물이 더 나오는데, 타란티노 감독의 특징이 등장하는 캐릭터를 절대 허투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물론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조연까지도 모두 개성이 또렷합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서로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건 그의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과 흡사합니다만, 이번엔 추리 영역이 추가되었습니다. 덕분에 런닝타임 168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를 긴장감으로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땔 수가 없습니다.

 

영화 줄거리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자면 이러합니다. 따라오는 눈보라를 피해 설원을 달리는 마차가 있고 그 마차를 가로막는 현상금 사냥꾼(사무엘 L. 잭슨)이 있습니다. 마차에는 교수형 집행인(커트 러셀)과 여자 죄수(제니퍼 제이슨 리)가 한 명 타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이번엔 보안관(윌튼 고긴스 )이 합승하게 되는데, 이들 네 명은 눈보라를 피해 어느 산장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곳엔 이미 네 명의 남자가 머물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며, 방금 도착한 네 명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여죄수를 교수형에 처해야 현상금을 받는 교수형집행인은 누군가가 그녀를 노리고 있을까 노심초사고, 흑인 현상금 사냥꾼은 산장에 있는 네 명의 남자에게 범죄의 냄새를 맡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고, 남북전쟁에서 남부군 장군이었던 늙은 노인은 흑인 현상금 사냥꾼이 북부군 출신이라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고, 보안관은 링컨 대통령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흑인에게 노골적인 인종차별적인 증오를 드러냅니다. 주인공 여덟 명 각각의 의심과 증오가 여러 개의 고리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유혈낭자 활극을 펼치는데 종극에는 어떻게 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헤이트풀8>에서는 기존의 영화와는 다르게 착한 놈은 없습니다. 덜 나쁜 놈과 더 나쁜 놈만 있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언제나 공평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응징으로 통쾌한 쾌감을 안겨줬습니다. <킬빌>에서는 노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성차별적인 사회를 응징했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전쟁 전범에 대한 잔혹한 응징을,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통쾌한 응징을.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선과 악이란 개념이 조금 모호해졌습니다. 현상금을 노리고 범죄자를 압송하는 사람은 선일까요? 반대로 죽음을 앞둔 자의 가족이 그를 구하는 것은 악일까요?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관한 문제는 인간이 만든 '규칙'이란 틀 속에서 선과 악이 구분 될 뿐, 근본적인 인간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또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십자가에 걸린 예수상을 빌어 감독은 말하고 있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들은 보통 등장인물들이 말이 참 많습니다. '헤이트풀8'에서도 거의 세 시간에 육박하는 런닝타임 동안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갑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영화 <저수지의 개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과 작은 산장이란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며 한시도 지루할 틈 없이 이끌어가는 연출력이 대단하네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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