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사도세자와 정조가 잠든 '융건릉' | 화성 가볼만한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우리나라에는 42기의 왕의 무덤 '능(陵)'이 있습니다. 그 중 40기는 남한에 있고 2기는 북한 개성(제릉과 후릉)에 있습니다. 이는 조선 모든 왕조의 무덤이 온전히 보존되고 있는 건데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519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하고 있어, 조상에 대한 존경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겼기 때문에 42기 능 어느 것 하나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을 겁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사도세자(장조)와 정조가 함께 잠들어 있는 융건릉으로 가보겠습니다.

 

입구에 세계유산을 알리는 표지석이 큼직하게 놓여 있네요. 이곳에는 장조(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능인 융릉과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능인 건릉이 언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여 있는데요, 그래서 둘을 합친 융건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매표소 옆으로는 제법 큼직한 재실이 하나 있는데 유일하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재실은 집안 제사가 있는 분들은 익히 알고들 계시겠지만, 제례에 앞서 제관들이 미리 와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죠. 평소에는 능을 관리하는 능참봉이 상주했습니다.

 

 

 

 

 

 

내부는 제사를 준비하는 경건한 장소이다 보니 화려하지 않고 깔끔한 모습입니다. 당연히 재실이라 단청은 칠하지 않았네요. 마당에는 오래된 향나무(왼쪽)와 천연기념물인 개비자나무(오른족)도 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입구를 들어서니 전에 못 보던 건물이 하나 생겼네요. 융릉.건릉 역사문화관이라... 들어가 볼까요~

 

 

 

 

 

 

내부는 그리 크진 않지만 융건릉 조성 과정과 왕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요?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먼저 역사를 살짝 알고 가면 더 잘 보일 겁니다.

 

 

 

 

 

 

보통 왕릉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참 발달해 있죠. 이곳도 마찬가지로 소나무도 많지만 참나무가 참 많더라고요. 낙옆은 전부 참나무 껀가 보네요.

 

 

 

 

 

 

그리고 계절 바뀔 때 한번식 오는 곳인데, 매년 숲에는 이렇게 이끼가 많이 있군요. 한겨울에 파릇한 색깔을 보니 봄이 마구마구 기다려집니다.

 

 

 

 

 

 

이 길은 가을이 제일 이뻤던 것 같네요. 적당히 나무엔 잎들도 붙어 있고 바닥에 낙옆이 바스락거리는데 참 좋~습니다.

 

 

 

 

 

 

먼저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융릉을 먼저 가볼게요. 조선시대의 건축물들은 풍수지리를 철저히 따라 만들어졌는데, 이곳 또한 앞으로 개천이 흐르고 돌다리를 만들어 놨네요. 왕릉 입구엔 항상 물이 흐르도록 되어 있는데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경계의 표시라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돌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동그란 연못이 하나 있어요. 이건 '곤신지'란 곳인데 이곳이 길지(吉地)라고해서 동그란 연못을 하나 팠습니다. 동그란 모양은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것인데, 왕 위에 오르지 못하고 안타깝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정조의 마음이라고 할까요?

 

 

 

 

 

 

이곳에는 사도세자와 그의 아내 현경왕후 홍씨(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습니다. 왕릉이나 왕의 어진을 모시는 등 신성한 곳 앞에는 항상 붉은 색 홍문(紅門)이 있습니다. 붉은 화살이 박혀 있다고 해서 홍살문이라고도 하죠. 이 문을 지나면 신성한 곳이니 품행에 주의를 하라는 의미 입니다.

 

 

 

 

 

 

어느 왕릉을 가나 똑같은 모양의 정자각(丁字閣)이 서 있습니다. 이 전각의 용도는 제사를 올리는 곳인데, 정丁자 모양으로 지었다고 해서 정자각이라 부릅니다. 뒷문을 열고 무덤을 바라보고 제사를 지내는 거죠. 그리고 바닥을 자세히 보시면 왼쪽은 높고 오른족은 조금 낮게 만들었습니다. 왼쪽은 신(神)만 다니는 길이라 '신도(神道)'라고 부르고, 오른쪽 낮은 곳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해서 '어도(御道)'라고 부릅니다. 즉, 원래는 이 길은 살아 있는 사람 중에는 왕만이 걸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제가 여기 서 있으니 세상 많이 좋아졌지요? ^^*

 

 

 

 

 

옆에서 보니 정丁자 모양이 확실해지죠?

 

 

 

 

 

 

가까이 올라갈 수 없어 멀리서만 바라봐야 겠네요. 사도의 기막힌 죽음을 가만히 생각하며 바라보니 참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옵니다. 조선 519년의 역사 중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들라면 바로 사도세자 사건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을 들 수 있겠죠. 잘 알고 있듯이 사도가 뒤주에 갇혀 살해된 엽기적인 사건인데, 나경언의 고변으로 어머니가 죽일 것을 청하고, 아버지가 죽이라고 명하고, 장인이 앞장서서 집행해버린 참으로 기가 막히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현대에 와서도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노론이 외면한 사도의 대리청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훌륭하게 왕위를 맡아줄 것으로 믿었던 아들의 방황에 대한 영조의 배신감, 그리고 끝까지 놓기 싫었던 영조의 권력의지, 역모죄를 씌울 경우 덩달아 죽임을 당해야 할 세손 정조를 위해, 그리고 형인 경종의 독살설로 시달렸던 영조가 늘 품고 있던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뒤주는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인 일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정조는 아버지를 위해 이곳을 지극정성으로 가꾸고 찾아왔을 겁니다. 정자각 오른쪽으로는 작은 비각이 하나 있는데, 안에는 비석이 두 개가 있어요. 이 신도비는 무덤 주인의 업적을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선의 22대 왕이지 우리가 '대왕'이란 칭호로 부르는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의 건릉으로 가보겠습니다. 작은 오솔길에는 소나무도 있고 참나무도 있고 예쁘네요.

 

 

 

 

 

 

독특하게 건릉으로 가는 길엔 대부분 참나무 길로 바뀝니다. 나뭇잎이 다 오르면 참 예쁘겠죠?

 

 

 

 

 

 

마찬가지로 건릉 앞에도 개울이 흐르고 작은 돌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것보다는 작게 만들었네요.

 

 

 

 

 

 

건릉과 융릉은 구조나 규묘가 거의 일치하게 만들어져 있네요. 묘의 높이와 위치까지 매우 흡사하게 되어 있어 조금 놀랍습니다.

 

 

 

 

 

 

마찬가지로 올라가 볼 수가 없어 아래에서만 봅니다. 오늘 학교 숙제 때문에 여기 온 아이들이 왜 봉분이 하나밖에 없냐고 물어보던데요, 큰 봉분 하나에 왕과 왕비가 함께 잠들어 있어 그렇답니다.

 

 

 

 

 

 

이곳에는 정조의 업적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조가 83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정조는 25세의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나이에 왕위에 오릅니다. 즉위 직후 그는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하고 기막히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정말이지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온 신하들의 스승이라 불릴 정도로 학식과 덕망을 지닌 군주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 있는 40곳의 왕릉을 다 가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열 곳 정도 가봤으려나요? 올해는 틈틈히 조선왕조의 자취를 모두 따라가 봐야겠습니다. 여러분도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신다면 산책하러 융건릉으로 한번 가보세요. 산책로 한 바퀴 돌아보는데는 약 40분 가량 걸리는데, 힘들지 않고 좋습니다.

 

+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일)

+ 입장료 : 만 24세~64세 1,000원, 그외 무료 (주차료 무료)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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