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함께 하고 싶은 친구.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 함양여행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였나 봅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지나치게 부국강병을 추구하자 집권세력인 훈구파들의 권세는 높아지고 부정부패가 심각해집니다. 훗날 세조의 손자인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신진 정치세력이자 언론직과 사관직을 차지한 사림파는 훈구 대신들이 비행과 성종의 맏아들인 연산군의 향락을 비판하며 왕권의 전제화를 반대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산군이 왕위에 오릅니다.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성종실록을 편찬해야하는데, 당시 훈구파 당상관이었던 이극돈은 사림파이자 사관이었던 김종직이 사초에 삽입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 찬탈한 행위를 비방하는 것이라 하여 연산군에 고하자, 연산은 죽은 김종직을 무덤에서 꺼내 목을 베고 이에 관련된 김일손 등은 죽이고, 정여창 등은 김종직의 제자라 하여 귀향 보냈다가 거기서 생을 마감합니다. 학교에서 무오사화(戊午士禍)로 배워 다들 알고 계실 거에요.

 

오늘 가 보실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을 추모하는 곳이며, 청계서원은 김일손을 추모하기 위한 곳입니다. 김일손과 정여창은 14살 터울이 나지만 이 둘은 서로를 사상이 같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라 하여, 죽더라고 옆에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해서 함께 서원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먼저 남계서원으로 가 보겠습니다. 이곳은 1552년(명종 7년)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명종에게 '남계(灆溪)'라는 편액을 하사받아 사액[각주:1]서원이 되었습니다. '남계'는 서원 앞으로 흐르는 시내 이름입니다. 남계서원은 풍기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로 지어진 곳인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헐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추진 중이라고 하더군요.

 

 

 

 

 

 

홍살문을 지나면 서원의 입구인 풍영루에 다다릅니다. 정여창의 호 '일두(一蠹)'는 '한 마리의 좀'이라는 뜻인데 스스로를 낮추어 부르기 위해 그렇게 지었습니다. 현실은 누리는 자와 그것을 개혁하려는 자들과의 균형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늘 개혁하려는 자들이 더 많이 죽게 되어 있나 봅니다. 그의 품위에 맞게 문루의 모습은 호방함과 당당함이 느껴집니다.

 

 

 

 

 

 

자신을 따르던 유생들이 쌀과 곡식을 부조하여 만든 서원. 죽어서 칭송 받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지게 살아야 가능한 일일까요.

 

 

 

 

 

 

전국에 있는 조선의 서원들은 다들 이와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을 거에요. 누문을 들어서면 연못이 있고, 그 뒤로 동재와 서재, 그 뒤로는 중심건물인 강당이, 그리고 그 뒤로는 계단을 올라서면 서원의 주인공을 모시는 사당이 있죠. 이런 배치의 시작은 바로 이곳 남계서원입니다. 다른 곳들은 모두 이곳을 따라 만들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공부하는 중심 건물은 명성당(明誠堂)이라고 이름이 붙었네요. 좌/우 1칸씩의 방은 온돌방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 강당 앞 좌/우로는 동재와 서재가 하나씩 있죠. 여기는 공부하는 학생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방은 바닥과 붙어 있고, 다른 한쪽은 대지의 경사를 이용해서 공중에 떠 있는 누마루로 되어 있어 독특하네요.

 

 

 

 

 

 

공부를 하려면 책이 있어야겠죠. 이 경판고는 책을 보관하는 창고 인데, 건물을 지면에 붙이지 않고 한칸 올려 놓아 책의 부패를 막은 것 같네요. 우리 조상님들 참 똑똑하지요?

 

 

 

 

 

 

어느 서원을 가든 강당 뒤편으로 높은 곳엔 사당이 있죠. 한껏 계단을 높여 놓아 강당과 적극적으로 격리시켜 놓았는데 정여창 선생을 지극히 사모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소수서원인데, 그곳의 건물들은 다른 곳과 비교하면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요. 아마 '최초'라서 그럴 것인데, 이곳은 조선이란 나라의 예의에도 부합하고 실용성도 강조한 우리나라 '표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당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좌/우로는 연화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내려온 남계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정여창의 호 '일두(一蠹)'는 '한 마리의 좀'이라는 뜻인데 스스로를 낮추어 부르기 위해 그렇게 지었습니다. 현실은 누리는 자와 그것을 개혁하려는 자들과의 균형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늘 개혁하려는 자들이 더 많이 죽게 되어 있나 봅니다.

 

 

 

 

 

 

남계서원 바로 옆에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청계서원이 자리하고 있어요. 원래 이곳은 김일손(金馹孫:1464∼1498)이 공부하던 청계정사(靑溪精舍)란 곳인데, 죽어서도 정여창과 함께 있고 싶다 하여 서원으로 바뀌었습니다. 훈구대신들의 부패와 불의를 규탄하다 연산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구조가 앞서 보신 것과 똑같죠?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데 앞에 네모난 연못도 똑같이 있습니다.

 

 

 

 

 

 

죽어서도 함께 하고 싶은 친구가 여러분은 있나요? 곧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도 가질 않네요.

 

 

 

 

 

 

이곳도 똑같이 높은 계단 위로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어요.

 

 

 

 

 

 

사당 청계사 내부에는 김일손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왼쪽으론 무궁화 나무가 하나 있네요. 일부러 서원을 보시겠다고 오신다면 발걸음이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데, 함양여행이나 지리산여행 가실 때 요 앞을 지나신다며녀 꼭 한번 들러 보세요. 제가 모든 이야기를 해드릴 능력은 안되지만 제가 적은 짧은 글이라도 여러분의 여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는 만큼 보이니까요.

 

 

함양/남원여행코스 4편 계속... (연재중)

 

 

<찾아가는길>

 

 

  1. 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扁額)·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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