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고령산 자락에는 보광사란 사찰이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때 도선국사가 창건된 사찰이라 천년고찰이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으로 일부 불에 탔지만 아직 옛 모습은 일부 남아 있습니다. 보광사는 조선의 임금 중 효심이 지극한 왕으로 알려진 영조와 관련이 많은 곳인데요. 영조 재위시절, 무수리로 궁궐에 들어와 내명부 정1품인 숙빈까지 올라간 영조의 어머니 최씨를 모신 원찰이었습니다. 영조는 매월 초 됫박고개를 넘어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절간은 어떻게 생겼나 들어가 볼까요~
일주문이 조금 독특합니다. 보통 산 이름과 사찰 이름을 적어 두는데, 여긴 '해탈문'이라고 적어 놨습니다. 해탈문 겸 일주문인가 보네요. 보광사까지는 제법 가파른 됫박고개를 넘어야 하니 사람이 많이 없는 날이라면 절간 앞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가시는 게 편리합니다.
됫박고개를 넘어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오르면 보광사 경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원래는 고령산에 있다고 '고령사'라고 불리다가 언제부턴가 보광사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물 한 모금 하고~
범종각. 원래 여긴 인조 때 만들어진 범종이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대중보전 안에 보관하고 있다네요. 실물은 어찌 생겼을까~
이런..... 범종은 대웅보전에 들어 있는데.... 애석하게도 공사중입니다. 홈페이지에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래서 담벼락에 붙여 놓은 그림으로 만족해야겠네요. 에고... 보광사의 대중보전은 보통 사찰의 대웅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외벽을 가지고 있어요. 사진에서처럼 나무로 된 판벽에 불교 회화와 민화풍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요. 좌우, 뒤면 판벽 10개에 모두 그려져 있습니다. 미술관처럼 외벽을 돌며 그림이 보고 싶었건만.... 다음에 보는 걸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공사를 위해 비계를 설치해 놔서 지붕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 공포 밖으로 나온 쇠서에 조각한 활짝 핀 연꽃과 봉오리가 참 단아합니다. 세월에 부러지고 낡은 부분이 많아 보수하려나 보네요.
막새기와에도 글귀가 적혀 있고, 어디 하나 허투루 된 곳이 없습니다.
영조가 보광사를 어머니를 모시는 원찰로 삼으면서 대웅보전을 중수했는데, 그때의 현판은 영조의 친필로 만들어졌습니다. 다행히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도 대웅보전은 불타지 않아, 영조의 손길이 아직 남아 있어 다행입니다. 기교없이 강건한 느낌이네요.
대웅보전 앞에는 지금은 만세루라 부르는 건물이 있어요. 건물 뒤쪽으로 가면 편액에 ‘念佛堂重修時施主案付錄’(염불당중수시시주안부록)이라 적힌걸로 봐서는 원래 '염불당'이라 불렸고, 불자들의 시주로 중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세루 앞에는 목어가 하나 걸려 있는데요. 제가 본 많은 사찰의 목어 중에 가장 매력적입니다.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고 꼬리는 물고기인데, 이제 갓 용이 되어 승천하려나 봅니다. 색 바래고 오래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원통전 뒤로는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어실각이 있고, 그 앞으로 향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숙빈은 원래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를 모시던 무수리였는데, 인현왕후가 폐비되고 왕비가 된 장희빈에게 모진 구박을 받습니다. 그러다 숙종의 승은을 입고 내명부 정1품인 빈의 자리에 오르고 영조를 낳습니다. 그녀들의 고통은 당시 치열했던 당쟁의 결과물이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권련엔 피도 눈물도 없었나 봅니다.
고령산 자락 깊은 곳에 눌러 앉은 보광사는 대웅보전과 목어 하나만으로도 가볼만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찾았던 날엔 공사중이라 대웅전 전체를 보진 못했지만, 판벽에 그려진 기품있는 그림과 색은 바랬지만 매력적인 목어, 꼭 보고 오세요~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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