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입니다. 나 홀로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경기도 화성시에 제암리 3.1 운동 순국기념관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독립의 염원을 듬뿍 담아 1919년에 일어난 3.1 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와 고주리에서도 많은 국민이 학살을 당한 아픔이 있어요. 일명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이라 부르는데, 애국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다시금 떠올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를 꼭 기억해요.
너르고 한가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른 잔디밭을 지나면 기념관이 나옵니다.
제암리 3.1 운동 순국기념관은 제암교회와 붙어 있어요. 제암교회가 그 악랄한 학살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지역의 3.1 운동 근거지였던 제암리와 고주리에 아리타 도시오를 비롯한 일본군이 들어와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당시 제암교회에서 15세 이상 남성들을 몰아넣고 사격을 가하고 불을 질러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웃마을 고주리에서도 독립운동가 김흥렬 일가 6명을 모조리 난도질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순국기념관 내부는 역사적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굉장히 잘 정리해서 전시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찬찬히 읽어주며 한바퀴 돌아보세요.
영상으로도 잘 표현하고 있어 이해하기 쉽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의 희생자 가족
당시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과 현장 사진으로 현실감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아리타 중위가 교회를 나가자 세 번의 날카로운 구령이 들렸고, 입구에 있던 병사들이 교회당 안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런 썩을...
당시 폐허가 된 마을 사진과 증언들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밤에 일본 사람들이 와서 확인사살 하려는지 죽은 사람을 다시 창으로 찌르고, 사람들의 창자가 흘렀다는 증언을 들으니 나도 현기증이 납니다.
당시 불에 탄 희생자에서 나온 유물들. 1919년 발행한 일본 1전짜리 동전과 죽은 이의 단추가 마음이 아픕니다.
인종, 이념 등의 대립으로 특정집단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를 '제노사이드'라고 합니다. 나치들은 유대인을 학살했고 일본은 중국에서 난징대학살을 한국에서도 수많은 곳에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게 불과 100년도 안된 사건들이에요. 일제강점기를 증언해줄 사람은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부분 그 엄혹한 시절을 살아 오셨으니까요. 모든 인간은 종교, 이념, 인종, 민족, 국정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뭘까요.
일본에게 항복을 해도 소용없었어요. 난징에서도 항복한 중국군 포로와 주민을 무려 수년간 끊임없이 몰살 시켰습니다. 심지어 총탄 소모를 막는다며 산 채로 매몰시키거나 일본군의 총검술 훈련용이나 참수 시합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3.1 운동 피살자 명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무려 630명의 나이, 주소, 순국일시, 장소, 상황 등을 기재한 명부인데, 여기에 화성 지역 희생자가 48명이 있습니다. 그와중에 이것들을 기록 하나는 꼼꼼히 한다고 칭찬해줄 수도 없고... 썩을...
1919년 4월 15일 중무장한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이끌고 온 보명 11명으로 두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학살의 주범 일본군 아리타 도시오 중위의 판결문
하지만 아리타 도시오 중위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지만 무죄로 석방됩니다. 이유는 형법에 점령지 학살에 대한 규정이 없고, 임무수행에 필요한 당연한 조치이고 범죄의식이 없어서 무죄랍니다. 죄의식이 없는 예나 지금이나...
3.1 운동 순국 기념탑
일제는 원활한 식민지배를 위해서는 학살도 면죄받을 수 있음을 그들이 쓴 판결문으로 자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그들에게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이 지긋지긋한 역사가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인 까닭입니다.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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