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되기위한 가짜들의 향연, 영화 '아메리칸 허슬'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데이빗 O. 러셀감독의 믿고 보는 영화 '아메리칸 허슬'


이름만으로 믿고 보게 되는 감독이 있습니다.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가 출연했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연출을 맡았던 '데이빗 O. 러셀'감독이 바로 그런 감독이죠. 아쉽게도 이번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10개부문이라는 어마무시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하는 불운을 격은 영화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우조연만큼은 - 물론, 루피타 뇽의 힘겨운 노예연기도 인상깊긴 했지만 - 노예12년의 '루피타 뇽' 보다는 <아메리칸 허슬>의 '제니퍼 로렌스'가 더 인상 깊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우주연을 맡았던 크리스찬 베일 또한 그의 전작과는 완전히 변화된 모습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였지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가 워낙에 강렬한 배역을 연기했기 때문에 이 또한 대진표의 불운을 겪었다고 할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아무튼 지지리도 상복이 없었던 이 영화는 러셀 감독의 전작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습니다. 마치 내 연출력에 이견을 제시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어떤 영화였는지 내려가 볼까요?

 

 

 

 

 

 

 

 

인상깊은 대사와 장면으로 본 영화의 줄거리


<아메리칸 허슬>은 1970년대 하원의원의 뇌물수뢰사건을 FBI에서 사기꾼 '멜빈 와인버그'를 동원해서 함정수사를 했던 작전명 '앱스캠'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들은 보통은 연출에 있어서 실제와 현실간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한데요, 이 영화는 현실보다 더 극적이고 사실적이며, 재미난 입담꾼의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합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들은 가끔 처음 도입부에서 영화 전체 내용을 함축하며 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독은 마치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지금 화면을 보고 있는 당신들은 알지 못하겠지만, 지금 난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로큰롤 가수인 스틸리 댄(Steely Dan)의 'Dirty Work'가 흘러 나오고, 볼록한 배를 내밀고 있는 '어빙(크리스찬 베일)'이 거울 앞에서 자신의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주변머리를 끌어 모아 정수리로 올리며 접착제로 엉성하게 붙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장면에는 영화 전체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어빙의 내레이션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제나 서로 속고 속인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속이며 산다."

"위험을 보면 피하고, 추악한 진실은 외면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볼록 튀어난 배와 대머리를 엉성하게 감춘 어빙은 대출을 알선해주겠다고 급하게 돈이 필요한 고객들을 모아서 수수료만 가로채는 사기꾼입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시드니(에이미 아담스)는 어빙의 애인이자 동료입니다. 이 두 사람을 함정수사로 체포한 리치(브래들리 쿠퍼)는 다른 범죄자들 네 명을 더 잡게 해주면 풀어주겠노라고 협박합니다. 그리고 어빙의 아내 로잘린(제니퍼 로렌스)은 이 모든 일들에 끼어들어 일을 엉망으로 만드는 돌발변수로 작용하는데요, 이 모든 등장인물의 인생에 진짜는 없고 모두 진짜가 되려고 가짜의 얼굴을 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지."

"세상은 흑백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어. 그냥 다 회색일 뿐이야."

 

영화에서는 진짜도 물론 있습니다. 거물급 범죄자를 잡겠다며 사기행각(?)으로 함정수사를 벌이는 FBI요원인 리치의 하수인이 된 어빙은 도시를 살리겠다며 발 벗고 나선 시장 '카마인(제레미 레너)'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가짜 인생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마피아의 거물 '빅터 텔레지오(로버트 드 니로)' 마저도 스스로를 '죽이고 빼앗을 지언정 속이거나 거짓말 하지 않는 진짜'라고 단언하는 것도 어빙의 가짜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진짜'는 '진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사기 치는 어빙, 같이 치는 시드니, 다른 남자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어빙에게 입양하고 그와 결혼한 로잘린, 사기꾼을 이용해 큰 사건을 해결하려는 리치, 이 모든 사람의 힘으로 도시를 발전시키려는 카마인, 이들은 모두 한편으로는 가짜의 모습을 한 채, 진짜가 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하지만 어빙과 시드니가 서로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듀크 엘링턴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고, 카마인과 어빙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식당의 조개요리의 맛을 같이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진짜가 되는 방법은 멀리있지 않았습니다. 애써 대머리를 숨기거나 곱슬머리로 파마를 하거나, 영국인 억양을 쓰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음악을 좋아하고, 같은 식당에서 요리를 먹어봤다는 '진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데이빗 O. 러셀은 배우들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 밖으로 표출시키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감독 같습니다. 모든 배역들을 개성이 넘치는 특별한 캐릭터들로 완성 시켰고, 단 한 명의 배역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대사는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주제에 부합하도록 통일성 있게 배열하였고, 음악과 소품, 그리고 배우들의 말투 하나하나까지 모두 살아있습니다. 138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리듬 있는 연출력 또한 매우 돋보입니다.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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