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거나 감동적인 것을 제외하고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한 영화가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 2014)'이 바로 그런 영화인데요, 몇 개 안 되는 상영관에서 개봉한 다양성 영화치고는 약 76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와 대박행진을 이어갔었죠. 참고로 다양성 영화는 2만 명만 넘게 들어와도 흥행에 성공했다고 불릴 정도인데, 당시 70만 명이 넘었으니 난리가 났었죠.
이 영화의 감독은 CF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던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에는 알록달록한 색상과 좌우대칭 구도가 많이 나오는데요,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살아서 팔딱거리는 것 같은 앤더슨의 작품 덕분에 '아트버스터(아트 블록버스터)'란 신조어도 생길 만큼 영상이 강렬합니다. 이 영화 덕분에 브루스 윌리스,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등이 출연한 어드벤쳐 장르영화 <문라이즈 킹덤, 2012>도 최근 다시 재조명을 받고 있죠.
영화는 여러 개의 액자로 구성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여성이 책을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되고, 책 뒤에 그려져 있는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온전히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작가는 벨보이였던 무스타파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무스타파가 지배인 구스타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돈 많은 백인 귀족들이 쉬러 오는 알프스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세계 최고의 부자인 '마담 D(틸다 스윈튼 분)'가 다녀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피살됩니다. 죽기 얼마 전 그녀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녀의 노후를 즐겁게 해준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분)'에게 가문에서 가장 귀중한 명화인 '사과를 든 소년'을 남깁니다.
한편 막대한 재산을 모두 차지하려는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 분)는 고가의 그림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마담 D를 살해한 용의자로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를 지목하고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 갖힙니다. 하지만 호텔에서 뼈가 굵은 그는 감옥에서도 죄수들에게 친절함을 배풀어 많은 친구들이 생기고, 호텔의 로비 보이인 제로(토니 레볼로리 분)와 함께 누명을 벗기 위한 모험이 시작됩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제 입에선 탄성이 "와~"하며 흘러나왔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만큼 산 꼭대기에 있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호텔, 형형색색의 호텔 내부와 아름다운 예술잡지에서 금장 뛰쳐 나온 것 같은 깜찍한 소품들이 가득합니다. 진득한 색감의 영상도 약간 빈티지한 페이드 스타일에 펜탁스 계열 픽쳐스타일인 크로스 프로세스가 떠오릅니다. 전에 본 적 없는 아름다움과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미적 감각으로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가보지 못했지만 향수마저 일으킬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화면은 시공간을 넘나들 때마다 화면비율이 조금씩 바뀌는데요, 처음 작가가 서두를 열 때는 검은 테두리 프레임 속에 들어 있는 16:9 화면으로 표현되고, 현대를 표현할 때는 정상적인 16:9 화면으로, 그리고 1930년대를 표현할 때는 4:3의 화면으로 바뀌어 보여줍니다. 감독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영상기술 까지 치밀하게 표현하며 절묘한 액자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에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화로만 나왔던 (장면을 보여주진 않지만) 호텔 지배인인 구스타브의 문란한 성생활과 킬러 조플링(윌렘 대포 분)의 잔혹한 살인 등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살인 장면은 단순화 되고 절제된 화면으로 잔인하지 않고 코믹하게 표현하고 있고요, 구스타브의 성생활은 전성기가 한참 지나 죽음으로 치닫는 우리 인간들의 보잘것없는 인생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도 아름다운 영상은 계속 눈가를 맴돌며 나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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