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수원화성박물관' | 수원 가볼만한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수원여행을 오셨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조금 더 남았습니다. 이번은 '수원화성박물관'인데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수원화성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축성 당시의 생활상과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안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 들어가 볼까요?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니 이점 반드시 숙지하고 찾아가세요. 보통 제가 이곳을 찾는 날은 월요일이라…… 쿨럭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로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 체험실이 마련되어 있었어요. 입구에서는 가마를 타보거나, 임금과 왕비의 옷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답니다. 이곳은 무료니까 맘껏 둘러보셔도 됩니다.

 

 

 

 

 


안에는 수원화성을 아이들의 손으로 직접 쌓아 볼 수도 있고요, 봉돈에 봉화를 켜서 신호를 주는 방법도 배울 수 있어요. 그리고 옛날에 부피를 측정하던 단위인 말, 되, 홉에 대한 개념도 배울 수 있답니다. 제가 어릴 적만해도 곡식은 저 단위로 팔았고, 소주도 2홉, 4홉 이렇게 나왔죠. 참고로 지금의 소주 1병의 부피가 2홉(360ml)랍니다.

 

 

 

 

 


한쪽으로는 좌의정 채제공 초상화의 블록을 맞추거나 각종 탁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의 관람료와 각종 안내는 위 사진을 확인해보세요. 참고로 수원에서 여러 곳을 유료 관람하실 분들은 통합관람권을 구매하시는 게 훨씬 저렴하답니다. 참고하세요.

 

 

 

 

 


아무튼, 어른인 저는 2천원을 내고 입장했습니다. 1층은 항상 특별 전시관이 열리는데요, 몇 개월 단위로 전시물이 계속 바뀝니다. 4월에는 수원화성의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열렸었는데, 지금은 개관 5주년 기념으로 수원시에 기증받은 각종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보여드릴 것은 채제공 초상 일괄-시복본 [蔡濟恭 肖像 一括-時服本]입니다. 다른 유물에 대해선 말을 조금 아끼고, 이 초상화에 대해서는 조금 말을 많이 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많이 보셨던 그림이죠? 지금은 타계하신 '오주석'님의 책인 '한국의 美 특강'에서 최정상급 초상화라며 극찬을 했던 이 초상화는 조선후기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인데요, 현재 보물 제1477-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초상화에는 73세의 채제공이 사모에 관대를 한 옅은 분홍색 관복 차림에 부채와 향낭을 들고 화문석에 앉아 좌상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한국의 전통 초상화는 사람을 미화시키지 않습니다. 검버섯 하나 흉터 하나까지 그대로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는 게 특징이죠. 심지어 이분의 눈은 사시인데요, 그것까지 그대로 그림에 표현했군요. 그리고 조선시대 초상화 중에서 특이하게 손을 표현한 것이 특징인데요, 이는 정조가 하사한 부채와 향낭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측 상단에는 ‘聖上 十五年 辛亥(1791) 御眞圖寫後 承 命摸像 內入 以其餘本 明年 壬子(1792) 粧’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그 아래에는 畵者(화자-그림 그린 사람)이 조선 최고의 초상화가인 ‘李命基(이명기)’라고 적혀있네요. 이어서 좌측 상단에는 채제공이 직접 쓴 글귀가 있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네 모습 네 정신은 부모님께서 주신 은혜고, 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덮은 것은 성스러운 군주의 은혜로다. 부채, 이것도 임금님 은혜요, 향낭 역시 임금님 은혜니, 한 몸을 싸고 장식한 것이 어느 물건인들 은혜 아닌 것이 있으랴. 다만, 부끄러운 것은 나 죽은 다음까지라도 그 은혜들을 다 갚을 계책이 없는 것이다.」

 

 

 

 

 


그럼 채제공이 정조로부터 부채를 어떻게 받게 되었을까요? 위 어찰은 정조가 채제공에게 부채를 하사하면서 내린 어찰인데요, 시복본 초상에 그려진 부채와 실물로 잠시 후 보여드릴 신추(향낭)에 대한 내력을 알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좌의정 말씀은 참으로 나의 견해와 부합합니다. 그러나 작년은 흉년이 든 해와는 다르니 위급한 상황을 구제하는 정사에 혹여 은혜가 다하였다는 탄식이 있어 구설수에 오를까 두렵습니다. 앞으로 묘당에 맡겨 잘 실행하도록 할 것입니다. 궁궐에서 마침 새로 만든 부채가 있는데 어머니(혜경궁 홍씨)께 고하기를 소일하고자 이것을 만들었다 합니다. 이에 두 자루를 보내니 반드시 전직 좌의정에게 전하여 좋은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껄껄. 그 중 한 자루는 난간에 앉아있는 그림인 듯 합니다.」

 

 

 

 

 


이것은 부채의 고리에 다는 선추라는 장식품입니다. 이 속에 향을 넣어 좋은 향기가 나도록 해서 '향낭'이라고도 부르는데요, 방금 보신 채제공의 초상화 시복본에서 본 그 향낭의 실체입니다. 이 향낭은 보물 제1477-1호로 초상화와 함께 일괄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수많은 기증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으니 좋은 기회가 온다면 꼭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2층에 위치한 화성축성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곳은 화성의 축성시절의 정치와 문화 그리고 수원화성 축성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걸려있는 그림에서 뭔가 기운이 느껴집니다. 두 그림 모두 정조가 그린 그림인데요, 왼쪽은 국화그림이고요, 오른쪽은 파초그림입니다. 자리에 고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그분을 상상해봤습니다.

 

 

 

 


이 문서는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의 영서(令書)입니다. 영서는 글자 그대로 명령문서인데요, 왕세자가 신하에게 내리는 문서지만 왕이 내리는 교지와 위상이 같습니다. 왜냐면 영서는 대리청정을 받고 있는 왕세자만 내릴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문서가 최근 250년만에 감춰져 있다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건륭22년(1757년) 12월 28일 경기관찰사와 병마수군절도사, 순찰사 등을 겸직하면서 빈민구제에도 힘쓴 조돈(趙暾)의 공을 높이 치하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백성이 대단히 궁핍하고 사정이 촉박한데 부역과 세금을 덜어주었기 때문에, 충성스럽고 맑고 근면한 덕이 있다."면서 사도세자는 조돈을 치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관찰사로서 더욱 힘써 백성들의 아픔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역사책에서 봤던 유물들을 여기서 다 보네요. 왼쪽은 목민심서(牧民心書)고 오른쪽은 흠흠신서(欽欽新書)입니다. 둘 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의 저서인데요, 목민심서는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하면서 고을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기술하고 있고, 흠흠신서는 조선시대 살인사건이 매우 형식적이고 무성의하게 처리되는 것을 보고 생명존중사상이 무너져 가는 것을 개탄하고 만든 형법서입니다. 조선시대판 과학수사 참고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책은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입니다. 1794년 수원화성의 착공부터 1796년 완공까지의 거의 모든 사항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는데요, 성과 문의 도면 뿐만 아니라 사용되었던 도구, 벽돌과 흙, 나무 등의 재료가 얼마나 투입되었으며 그 가격은 얼마이며 구입경로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축성 당시 인부들의 인건비와 물가가 어떻게 되며 관리 감독자는 누구였으며 실무자 및 장인들은 누구였는지, 게다가 업무를 하면서 왕과 주고 받은 서류들도 모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수원이란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발생한 모든 사항이 다 기록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 선조들의 기록정신이 참 대단하죠?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알면 재미있고, 모르면 전혀 재미없는 관람이 되기 십상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죠! 이 길다란 문서도 재미있습니다. 1784년 문효세자를 책봉한 기쁨을 백성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각 도에서 납부해야 하는 세금을 절반으로 탕감해준다는 윤음입니다. 문효세자는 안타깝게도 2년 후 홍역으로 창덕궁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왕은 동생인 순조가 되었죠. (※ 윤음(綸音)은 조선시대 국왕이 국민에게 내리는 말입니다.)

 

 

 

 

 


그리고 수원화성과 관련된 각종 설계도면도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전에 보여드린 화홍문의 복구공사 설계도입니다. 그 옛날에도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이번엔 2층 맞은 편에 있는 화성문화실로 들어가 볼게요.

 

 

 

 

 


화성문화실에는 1795년에 있었던 정조의 행차와 관련된 유물과 정조의 군사개혁의 핵심인물인 채제공의 기증유물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정조의 혜경궁홍씨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 왕권강화를 위해 창설했던 장용영 군사들의 무기와 무예 등을 볼 수 있습니다.

 

 

 

 

 


TV에서 가끔 보았던 깃발이군요. 이 것은 행렬의 가장 앞에서 왕이 행차하고 있음을 알리는 깃발입니다. 용의 모습이 굉장히 아름답게 생겼네요.

 

 

 

 

 


정조는 문무를 고루 발전시키기 위해 규장각과 장용영을 설치했습니다. 정조시대에 뛰어난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두 기관이 존재했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은 장용영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정조 사후에 해체해서 흔적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죠. 위는 김종수가 쓴 장용영의 편액 탁본입니다.

 

 

 

 

 


조선시대 사용하던 활과 화살, 그리고 화살통이 있네요. 활은 활 시위를 걸기 전이라 저렇게 생겼답니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문서의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내용인 즉, 정조가 50발의 활을 쏘아 48발을 맞춘 뒤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해, 장용영 관원에게 조기 1마리와 웅어 1두름을 내려준다는 고풍입니다. 고풍은 신하들이 왕에게 축하의 뜻으로 선물을 청해 받는 것을 기록한 문서입니다.

 

 

 

 

 


제가 화성행궁 무예24기에서 보여드렸던 무기가 여기 다 있습니다. 실제 무예24기 공연에는 위 무기들이 모두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멋지네요.

 

수원화성을 구경하셨다면, 반드시 봐야 할 박물관입니다. 실물을 보고 그 실물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역사, 문화, 그리고 왕의 생각까지 모두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라 생각되네요. 추천합니다.

 

 

5편 계속...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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