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원 들고 떠난 유럽여행기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독립영화의 경우 인력과 자본의 한계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독립영화스러운' 주제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덕분에 현실세계를 비판하는 고발영화나 어린 시절 상상이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성장영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잉여들에 관한 주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하고 있죠.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 <잉여들의 히치하이킹>도 언뜻 사화에 적응하지 못한 잉여들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잉여'라고 규정한 네 명의 대학생이 2009년 9월 80만원을 들고 1년간 유럽 무전(無錢)여행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호재, 하비, 현학, 휘 이들 네 명은 9월 개학하기 전 여름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등록금의 절반도 모으지 못해 다음 학기 등록하기는 글렀습니다. 이럴 바에 추억이나 만들자며 방학 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현금 80만원을 들고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유럽으로 향합니다. 이들의 허무맹랑한 계획이라는 것은 영화과 출신인 네 명의 특기를 살려 유럽 호스텔의 홍보영상을 만들어 주고, 대신 숙식을 제공 받는 다는 일명 '물물교환 여행'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영국에서 비틀즈에 버금가는 뮤지션을 발굴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

 

이렇게 무작정 떠난 이들이 도착한 곳은 프랑스 파리. 유럽에 지도 한 장 없이 도착한 이들은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만리타향에서 이들은 히치하이킹과 노숙으로 버티며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하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얼마간의 돈도 이제 거의 다 떨어지고 쓰레기장에서 노숙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국하려는 순간 기적처럼 한 호스텔에서 홍보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옵니다. 이들 네 명은 각각 감독, 배우, 편집, CG, 조명 등의 업무를 나눠 맡으며 홍보영상을 만들자 엄청난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며 유럽 전역의 호스텔에서 영상제작 의뢰가 들어와 졸지에 호텔/호스텔 홍보계의 슈퍼스타로 떠오릅니다.

 

 

 

 

 

이 영화가 가지는 미덕은 '도전하라 성공하리라'가 아닙니다. 이들의 첫 시작은 도전이 아니라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모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잉여' 그 자체였습니다. 치밀한 계획도 실현 가능한 포부도 없었었으니까요. 젊은 패기로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정도의 계획(?)만 가지고 유럽에서도 무작정 걷고, 노숙생활을 하며 가진 돈을 쓰고 있었죠. 하지만, 젊음의 힘이란 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행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주문을 외우는 이들에게 마법처럼 숙소와 식사가 '어떻게든' 해결되어 버립니다.

 

아마 이 네 명이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유럽을 갔다면 일이 이렇게 풀릴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하고 현실 가능한 목표가 있었다면 그것이 좌절되는 순간 이들의 여행은 끝났겠죠. 하지만 하나가 좌절되어도 영화는 계속 이어집니다. 왜냐면 이들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찍은 게 아니라, '그냥' 찍었기 때문입니다. '잉여'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또는 '하려고 들지 않는'의 의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쓰레기장에서 잠을 자고 깡통에 라면 부스러기를 끓여 먹더라도 이들에겐 무의미한 것이 의미인 '젊음'이란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까요.

 

의미 없이 하루를 버티는 잉여스러운 젊은이들에게 축복을! 그리고 얘들아! 이 영화 꼭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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