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교육의 살아있는 앨범, 정동길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1980년대 이전,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남학생에게 배재고등학교라는 존재는 전실한 선망이자 시기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이화여고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이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 시기에 풋풋한 여학생들과 등을 맞대고 있다는 자체로도 질투를 한 몸에 받았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남여공학이 더 많기 때문에 그렇진 않겠지만, 제가 학교를 다니던 70-80년대 초만 해도 '남여공학'은 그 용어자체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늘은 당시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구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배재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배재대학교의 전신인 '배재학당(培材學堂)'은 한국의 근대 신교육이 시작된 상징적인 곳입니다. 위 건물은 당시 실제로 사용되던 학교 건물인데요, 위치는 정동길의 덕수궁 담벼락 맞은 편에 있는 정동교회 앞 언덕길로 100미터 가량 올라오면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오르내렸을 계단이 지금도 깨끗히 잘 보존되어 있군요.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인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 선생이 설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설립 다음 해인 1886년에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요,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학문을 배우는 집'이란 뜻입니다.

 

 

 

 

 

 

오래된 건물 입구를 들어서니 이 학교의 설립자인 아펜젤러 선생님의 초상화가 중앙에 걸려 있군요. 이 건물은 지하1층부터 지상3층까지 4개의 층으로 되어 있는데요, 박물관으로 일반에 개방한 공간은 1층과 2층입니다. 이곳의 영문명칭이 'Appenzeller/Noble Memorial Museum'인 이유는 설립자인 아펜젤러와 이 학교에서 교사로 재임하셨던 '윌리엄 아서 노블' 가족을 기념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유구한 전통을 간직한 곳일 수록 기록과 물품을 보존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요즘 학교에서 낡은 책걸상을 보관하는 곳이 있을까요? 학당 1층에는 당시 교실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놓인 기물들은 근대에 사용했던 것들인데요, 교복과 모자도 한 쪽에 준비해 둬서 써 볼 수도 있더군요.

 

 

 

 

 

 

작지만 어딘가 기품이 있는 배재학당 현판이 있군요. 뭔가 설명을 읽어보니 이 현판은 고종황제가 내린 현판 실물입니다. 정말 살아있는 근대역사의 앨범 맞죠?

 

 

 

 

 

 

이 학교 졸업생을 말하면 놀라실거에요. 한국의 근현대사에 큰 업적을 남기셨던 이승만, 주시경, 나도향, 김소월 등은 모두 이곳에서 공부한 분들이십니다. 130년 동안 이어온 배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인데요, 한국의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겠군요.

 

 

 

 

 

 

학창시절 다들 배우셨죠? 김소월 시인의 시집인 <진달래 꽃> 원본이 이곳에 전시되고 있네요. 심장이 콩닥거리네요 ㅎㅎㅎ

 

 

 

 

 

 

이 문서는 주시경 선생의 친필 이력서에요. 주 선생은 독립신문의 편집과 교정을 하셨던 국어학자신데요, 이것 외에도 당시에 사용했던 교과서와 책, 그리고 서류 등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두 보여드릴 수 없는 점이 아쉽네요.

 

 

 

 

 

 

재미있는 전시물이 바닥에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이 재미있는 글귀는 1890년도 배재학당에서 제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학칙입니다. 이 중에서 '학자금이 없는 이는 일자리를 주고 제 힘으로 벌어서 쓰게 한다.'라는 구절이 인상깊네요. 찬찬히 읽어보세요. 재미있는 구절이 많습니다. ^^*

 

 

 

 

 

 

지금도 국회의원 금뱃지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옛날엔 이 뱃지가 그 사람의 위치를 알리는 중요한 방법이었죠. 당시 학생들이 사용했던 뱃지들도 전시하고 있는데요, '배'자나 '배재'라고 적힌 뱃지는 뭇 남학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을테고, 1,2,3이란 뱃지는 학생들간의 서열을 나타내는 것이었겠죠? 물론, 이 당시 초등교육도 못 받으며 가난하게 살던 국민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역사가 오래된 학당이라 그런지, 전시하는 기술도 남다릅니다. 들어서니 뭔가 으리으리한 프로젝터 시청각실이 나오는데요,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그 위치에 영상을 보여주고 있군요. 학당의 역사와 건물의 구조 등을 영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요래 사람이 걸어가면 그 위치에 따라다니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어요. 촌사람들 신기해서 두 번 돌았습니다. ㅎㅎㅎ

 

 

 

 

 

이제 2층으로 올라가 볼게요. 좁은 계단도 참 멋지네요.

 

 

 

 

 

 

2층에선 학교의 설립자인 아펜젤러 선교사와 교사였던 노블 선생 기념관과 그들이 사용했던 물품들을 전시하는 특별 전시관이 준비되어 있네요.

 

 

 

 

 

 

이런 기록들을 어떻게 이렇게나 완전하게 잘 보존하고 있는지 놀랍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책과 그들의 친필 일기까지 다양한 많은 물품들이 전시되고 있어요. 대한민국에 근대화의 물결이 들이치던 20세기 초, 서울 정동의 모습을 선교사들의 물건들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아펜젤러가 사용하던 피아노도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고요,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타자기도 아직까지 깨끗한 모습으로 전시되고 있군요. 이곳의 보존 능력이 아주 탁월한가 봅니다. 2층에는 아펜젤러의 친필 일기도 전시되어 있던데, 당시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대한민국이란 사회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생각되네요.

 

 

 

 

 

 

한 쪽에는 130년간 배재학당을 졸업한 사람들의 졸업앨범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졸업생들 중에는 이승만, 김소월, 나도향님 들을 외에도 최근에 활약하고 있는 스포츠 스타도 정말 많이 있더군요.

 

 

 

 

 

 

이곳엔 사람도 많이 없고, 무료인데다가 귀중한 전시물까지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서울시청과 덕수궁 근처로 나오셨다면, 지나시는 김에 이곳도 꼭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대한민국 근대교육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아있는 앨범과 같은 곳입니다.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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