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철학적이고 평소에 생각하던 삶과 신에 대한 의미를 잘 풀어낸 영화를 한 편 만났습니다. 그런데 글을 적어 내리기 전에 미리 말씀 드릴게요. 뜬구름 잡는 영화, 철학적인 영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지금 과감히 '뒤로 가기'를 누르시고요, 영화를 잠시 심심함을 달래줄 킬링타임용 도구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이 영화리뷰는 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이 영화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런 영화가 아니니 시간 낭비하지 마시라고 미리 말씀 드립니다.
인간은 전 우주로 놓고 보면 티끌도 과분할 정도로 작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포커스를 조금 좁혀 지구에, 대한민국에, 내가 사는 우리 도시에, 아파트에, 한 집에 사는 나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거의 유사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좁은 곳에서 인간만을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차이가 날 뿐이지 우리가 사는 공간을 조금 확장해 우주를 놓고 보면 우리 인간들은 모두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각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는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요? 그냥 생명이 붙어 있으니 아둥바둥 살아가는 걸까요?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요? 이 영화는 이런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로법칙은 실제 그 어떤 과학자도 완벽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결국 철학적 사고에 미쳐 자살해 나가고, 결국 제로법칙은 양자역학과 우주이론과 만나게 됩니다. 양자역학이 끈이론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때, 우주이론은 140억년 전 부피가 0(Zero)인 상태에서 빅뱅을 통해 찰나의 순간에 이 모든 우주가 탄생했다는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과 같은 이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지금도 모든 이야기는 현재의 지식으로 미루어 보는 가설일 뿐 완벽히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남은 것은 신의 영역이겠죠. 그게 부피 제로에서 제로에 가까운 시간 만에 우주가 탄생했다는 건 신의 힘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테니까요. (참고로 전 무신론자 입니다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제로법칙의 비밀, The Zero Theorem>은 컴퓨터 천재 '코언 레스(크리스토프 왈츠 분)'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영화는 정확하진 않지만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매일 같은 업무와 반복되는 일상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코언은 어느 날 삶의 의미를 깨우쳐줄 특별한 전화를 한 통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전화기 건너편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힘에 놀라 전화를 끊어버리는데요, 자신의 삶을 구원해줄 전화였는데 그 전화를 끊어버린 게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그는 이 전화 사건 이후로 삶의 의미가 무엇이며,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며,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뇌하게 됩니다. 이건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코언이 말하는 '우리(We)', 즉 인류가 살아가는 이유를 말하는 겁니다.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코언은 회사(맨컴)에 재택근무를 신청하게 되는데, 회사측은 제로법칙을 증명하는 프로젝트를 쥐어주며 집에서 근무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제로법칙은 우주가 지금처럼 팽창을 거듭한 끝에 결국 거대한 블랙홀에 모든 게 빨려 들어가 다시 빅뱅 이전의 모습인 부피 0(Zero)의 상태가 된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모든 우주만물은 다시 제로로 돌아가는 무의미한 것이란 걸 증명하는 일입니다. 코언은 삶이 결국 0(Zero)라는 걸 증명하려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 아이러니만 남기고 있는 셈입니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겁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자신에게 걸려올 전화를 병적으로 집착하는 코언이 삶은 무의미하다는 걸 증명하려 애쓰는 역설적인 과정, 바로 그겁니다. 어느 날, 전화를 기다리는 코언에게 맨컴의 회장(맷 데이먼 분)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깁니다.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을 신을 믿어야한다는 것이야. 다른 말로 바꾸면 현재의 삶보다 내세의 삶에 더 의미를 두는 것이지. 그게 지금의 삶을 의미없게 만드는 것은 현재를 영원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정거장(station)'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주인공 코언은 오래 전에 불타버린 교회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화면은 종종 집에서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그를 지켜보는 흑백의 CCTV 장면을 보여주는데요, 태생적으로 고독한 인간의 슬픔과 이를 지켜보는 관음적이고 새디스트(Sadist)적 신(神, 맨컴사 사장)과 이렇게 살아가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신의 아들 메시아(맨컴 사장의 아들 밥), 그리고 불교의 사상처럼 모든 것은 결국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인 것처럼 모든 사물과 현상은 결국 '공(空, Zero)'이건만 이걸 못 가져서 안달하고 번민하는 인간의 한계를 철학적으로 굉장히 잘 녹였습니다.
<제로비밀의 법칙>은 어찌 보면 디스토피아적이고 인간의 삶 자체를 무의미하게 부정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마지막 코언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면의 확장 보다는 긍정으로 귀결하려는 노력으로 변증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약간은 골치 아픈 이런 고민들을 평소에도 조금씩 하신다면 이 영화는 대단히 잘 만든 수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냥 심심해서 재미삼아 보시려는 분들은? 결제창에서 '취소'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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