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흐르는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는 곳이 딱 한 곳 있습니다. 바로 태백시에 있는 구문소(求門沼)란 곳인데요, 낙동강의 최상류인 황지천 물이 오랜 세월 바위를 때려 구멍을 내고 흐르는 곳입니다. 고여있던 물이 결국 구멍을 내자 석문(石門)이 만들어지고 흐르는 물살로 소(沼)를 이루었는데 그래서 이름이 지금도 구멍소, 구문소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 주변이 현재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역사람들은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라고도 부르는데요, 바위 위로 자라난 소나무와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입니다. 구문소의 높이는 20-30미터 정도인데요, 석문 위로 살짝 보이는 정자는 ‘자개루’인데 예전부터 시인이나 묵객들이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강물이 산을 넘는 독특한 구조의 이 도강산맥(渡江山脈)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5천만년에서 3억년 사이에 만들어졌는데 한국에선 유일한 곳입니다.
이곳을 흐르는 물은 모두 낙동강의 지류지만, 이렇게 뚫리기 전에는 사진 반대편은 황지천, 사진을 담은 이쪽은 철암천이 흐르고 있었는데요, 이곳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오고 있습니다. 구문소가 생기기 전에 높다란 석벽을 사이에 두고 백룡과 청룡이 석벽 꼭대기에서 낙동강의 지배권을 두고 싸웠는데 좀처럼 승부가 나질 않아서 백룡이 꾀를 내어 바위에 구멍을 뚫고 청룡을 제압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물의 힘만으로 구멍을 낸 것이 정답이겠지만, 오히려 청룡과 백룡이 싸우다 뚫렸다는 게 비교적 현실감이 더 있는 것 같네요.
구멍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누가 적었는지 알 수 없는 한자(漢字)가 적혀 있습니다. ‘오복동천 자개문(五福洞天 子開門)’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조선 ‘정감록’에 의하면 ‘낙동강 최상류에 가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석문이 나오는데, 이 문을 지나면 이상향이 나온다.’라고 했습니다. 자개문(子開門)이란 말은 자시(子時, 오후11시~오전1시)에 열린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자시에 열리는 이곳을 통과하면 오복이 있는 무릉도원(태백)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겠네요.
구문소 바로 옆으로는 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도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크기를 가늠하시라고 사람이 있는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이 바위에 낸 구멍은 1937년 일본이 석탄을 강탈해가기 위해 도로를 내려고 뚫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자원의 보고인 태백을 그들이 그냥 둘 리가 없었죠. 그런데 굴 윗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우혈모기(禹穴牟奇)’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뜻은 ‘중국 우왕이 뚫은 석굴과 기이하리만치 닮았다.’는 뜻인데, 일본인이 자원강탈을 위해 뚫어 놓고 우왕처럼 태백주민을 위해 한 일인 것 마냥 선전을 위해 적어놓은 글귀입니다.
이 굴을 뚫으려고 태백 주민들 강제 동원해서 하지 않았겠습니까? 제주도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우리나라 농부들 끌고 가서 밥도 안 먹이고 일을 시켰다죠. 태백여행과는 관련 없는 말씀이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시원스레 구멍이 뻥~ 뚫려 있지만 바로 옆으로 동점터널이 생겨서 지금은 이곳으론 차량이 많이 다니지 않습니다.
구멍을 들어오면 황지천을 만나게 되는데요, 여기서부터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4km의 자연탐방로가 이어집니다. 이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는 화석의 흔적에서 이곳이 원래 바다였다는 증거가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위로는 ‘태백 고생대 자연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같은 연유에서 설립되었어요. 지구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은 교실과도 다름없는 곳입니다. 약 3-5억년 전 고생대에 생긴 이곳은 바다환경에서 생성된 석회암인데요, 다양한 퇴적층구조에 삼엽충 화석까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질과학 체험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구문소 위에 자개루란 정자가 하나 있다고 말씀 드렸었는데요,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수억 년 전에 이곳은 바다였지만 지금은 봉긋 솟아올라 모두 산이 되었습니다. 주변 어디로든 잠시 눈을 돌려봐도 독특한 기암괴석과 퇴적층을 만나게 될 겁니다. 저 바위는 동점터널 옆으로 올라선 작은 산인데요, 역광 때문에 사진이 흐릿하지만 실제로 보면 꽤 장관인 풍경입니다. 태백여행에서 차를 타고 지나다 잠시 들러 구경해보세요.
같이 다녔던 태백여행코스 (완결)
1. 추우면 더 아름다워지는 겨울축제 '태백산 눈꽃축제(눈축제)'
3. 아날로그 감성 돋는 여행의 기술!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V-Train)
4. 태백산 눈꽃열차 V트레인(V-train)타고 온 분천역과 산타마을
5. 눈보라 몰아치는 배추밭, 태백 매봉산 바람의 언덕 (풍력발전단지)
9.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 '황지연못' 루미나리에 야경
10. 고원에서의 하룻밤.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숲 속의 집
<찾아가는길>
✔ 댓글이 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