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최고의 영화가 <버드맨>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영화였어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이 작품은 제87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4개부문 석권을 했고요, 이 중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은 오스카상에서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골든 글로브와 그리틱스 초이스, 런던 비평가협회상 등 세계 유수의 영화 시상식에서 많은 상들과 호평을 받았어요. 저 또한 제 인생을 통과했던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버드맨'이 최고의 영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렇게 수려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흥분했을 정도니까요.
개봉 초기에 '김치논란'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었죠. 지금도 이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인건지, 이런 현상이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항변인건지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론 문제 삼을 만한 대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논란이 되었던 그 장면은 버드맨의 딸이 동양인의 꽃가게에서 꽃을 사면서 "꽃에서 빌어먹을 김치냄새가 난다."라고 말한 것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아빠의 비서 노릇이 싫다며 온통 짜증섞인 딸아이의 화난 대사 중에 나온 겁니다.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우리 또한 영화에서 서양인을 보며 '빌어먹을 누린내'란 말이나 일상에서도 중국인이나 동남 아시아인들을 비하하는 말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깊은 마음속에는 그들을 비하할 의도가 없다는 걸 모두들 인식하고 있을 거에요. 영화 속에서 빌어먹을 치즈냄새나 빌어먹을 카레냄새라고 했다면 좀 기분이 나아지셨겠습니까? 한국도 이제 피해의식 같은 것은 조금 접어두고 넉넉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한마디 한마디 말에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소모적인 논란으로 평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훌륭한 영화를 여러분들이 놓칠까 저는 매우 두렵습니다. 작품성, 카메라의 움직임, 영화의 구성, 스토리텔링 방식, 그 속에 녹아있는 인생의 통찰력, 배우들의 명연기,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대단한 수작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멕시코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이런 대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조차 저는 매우 부러웠습니다. 폐쇄되어 있지 않고 능력 있는 배우와 감독에 언제나 문이 열려있는 이러한 가능성이 전 세계에서 할리우드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 빛난다.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은 1990년대 버드맨으로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던 영화스타였지만 환갑이 넘은 지금은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늙은 배우일 뿐입니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기위해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에 도전해보지만 이 또한 녹록하지 않습니다. 아내와는 이혼하고 괴팍한 딸은 마약중독으로 치료를 받는 등 안팎으로 그의 인생은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몰릴대로 몰려 있습니다. 대중이 좋아하는 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를 새로 영입하긴 했지만 괴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그의 통제 불능 행동들과 문화계를 좌지우지하는 평론가까지 리건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비상에는 온통 걸림돌 밖에 남지 않은 어지러운 상황입니다.
<버드맨>은 리건이 레이먼드 카버의 연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무대에 올리기 전 리허설 과정과 본 무대에 올리는 1박2일 간의 과정을 마치 연극처럼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마치 내가 화면 속에서 그들을 쫓으며 바라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흔들리는 화면은 생생하고 황홀합니다. 독특한 건 편집인데요, 테이크가 어떻게 잘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매우 긴 롱테이크 화면으로 끊김 없이 흘러간다는 겁니다. 카메라는 배우를 계속 따라가고 다른 장소로의 이동 또한 부드러운, 마치 내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몽환적인 카메라 무빙으로 이들을 역동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전에 본 적 없는 놀랍고 실험적인 촬영법인데요, 이 영화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츠키'는 <그래비티>에서도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았던 전력이 있습니다.
연극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배우들의 희로애락과 한물 간 늙은 배우의 인생에서 '나'는 누구이며 그것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 매우 사실적입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영화인지 그 경계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나'를 규정하지 못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연극무대를 영화라는 형식을 빌어 아름다운 화면 속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나' 속에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리건, 배우라는 가짜인생을 사는 그를 비추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진짜는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진지하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어디를 뜯어 봐도 놀라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극장 좁은 복도를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다닐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드럼소리를 기억하십니까? 이곳이 브로드웨이라고 알려주는 듯한 이 소리는 재즈뮤지션 '안토니오 산체스'의 드럼 연주입니다. 그의 드럼소리는 혼란스러운 리건을 핸드헬드 카메라와 함께 리드미컬하게 따라다니는데요, 환각을 겪는 리건이 무대로 들어설 때 복도에서 혼자 연주를 하며 환각과 현실의 간격을 좁히는 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버드맨>은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습니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배우들 뒤에 있는 냉혹한 현실과 한물 간 늙다리 배우의 현실은 슬프고도 잔인합니다.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진 못했지만 마이클 키튼의 명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매일같이 식상한 영화의 틈바구니가 지루하다면 이 영화를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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