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남한강 강변에는 천 년이 넘은 오래된 고찰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신륵사(神勒寺)입니다. 이 사찰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는데 일조했던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입적해서 유명해진 절입니다. 또한 조선 왕실에서는 세종대왕이 묻혀있는 ‘영릉’이 가까이 있어 원찰로 삼을 정도로 한 때 잘 나가던 사찰이었죠. 아무튼 이 사찰의 창건시기는 신라시대의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곤 있는데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강가 평지에 지어진 사찰이라 일주문 뒤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공원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대부분의 사찰은 산속에 있어서 문 뒤로 보이는 풍경은 깎아지는 오르막길이죠. 참고로 일주문(一柱門)은 글자 그래도 풀이하면 기둥이 하나의 문이란 뜻인데요, 신성한 곳에 들어가기 전에 일심(一心)으로 진리를 향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태껏 보여드린 많은 사찰의 일주문 현판을 보면 항상 절 이름 앞에 산 이름까지 붙어 있는 걸 눈치채셨나요? 신륵사 앞에는 ‘봉미산’이라고 적혀 있네요. 이처럼 산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주소를 확실히 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어 보현사(普賢寺)나 관음사(觀音寺) 같은 절 이름은 여러 지방에서 사용하는 사찰명인데요, 절 이름 앞에 위치를 알려주는 산 이름을 넣어 구별하려는 의도입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엔 뜨거운 햇빛이 내리 쬐고 있습니다. 이제 제법 날이 뜨거워져서 한 낯에는 반팔에 모자를 써야겠어요.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를 만나니 꽃 길이 더 없이 반갑습니다. 룰루랄라 ~ 스탭을 튕기며 걸어가 보겠습니다.
앞에 사천왕문으로 보이는 곳을 통해 걸어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사찰을 둘러보는데 평지만 있어 힘들지 않으니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색다른 느낌이 듭니다. 푸른 잎이 돋아난 나무들이 반갑기도 하고 앞으로 날씨가 뜨거워질 걸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그렇네요.
문의 모양새로 봐서는 사천왕문 같은데, 현판이 없어 확실하진 않군요. 아마도 조각상 대신 문짝에 사천왕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보니 사천왕문이 맞는 것 같네요. 나쁜 사람이 이 문을 지나가면 그림이 툭 튀어나와 목을 칠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
한 차례 비가 지나간 후라 그런지 날씨가 더 없이 화창합니다. 앞에 보이는 강은 남한강인데요, 신륵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강가에 지어진 사찰입니다. 저도 전국에 사찰이란 사찰은 수도 없이 다녀봤지만 강가에 있는 절은 여기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여주를 관통하고 신륵사 앞을 지나는 남한강을 예로부터 '여강(驪江)'이라고 불렀는데요,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수란 뜻이에요. 즉, 절이 명장자리에 지어졌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3-4분 정도 잠깐 걸어오니 사찰 입구를 만나게 되네요. 입구 앞에는 세심정(洗心亭)이란 우물이 있네요. 마음을 씻는 곳이라니 저도 이곳에서 손을 씻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천년고찰답게 사찰 주변으로는 수령이 수백 년씩 된 나무들이 여기저기 자라 있는데요, 중앙에 보이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600년이나 된 나무에요. 높이가 22미터인데 가을에 이 은행나무에 노란 잎이 달리면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습니다. 은행나무는 암놈이 열매를 맺는데 저 나무는 수놈이라 열매가 열리지 않더군요. 덕분에 냄새는 안 납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른 사찰들은 산속에 있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접근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곳은 온통 평지인데다, 계단 또한 나무데크길을 옆으로 만들어 놔서 휠체어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게 되어 있더군요. 규모는 작은 절이지만 배려가 돋보입니다.
신륵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그 흔적은 남아있지 않아요. 정전인 극락보전 또한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는 바람에 자료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이 이 건물은 정조대왕 21년에 3년에 걸쳐 다시 만들어진 건물이에요. 아무튼, 5월에 석가탄신일이 다가 온다고 알록달록 연등이 극락보전 앞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네요. 저마다의 소원이 담겨 있을 텐데, 모두들 소원들 이루시게~
연등 때문에 탑의 윗부분이 사라졌네요. ㅎㅎㅎ 금당 앞에 3미터 정도로 아담하게 놓인 이 석탑은 현재 보물 제225호로 지정된 다층석탑(多層石塔)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흰 대리석재라는 점인데요, 탑 주변으로는 보통의 탑에서 잘 볼 수 없는 꽃무늬, 용무늬, 물결무늬 등이 새겨져 있어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을 줍니다.
전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순조롭게 되게 해달라고 살포시 빌어봅니다. 혹시 알아요? 소원을 덜컥 들어 주실지…
극락보전 왼쪽으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이 있는데, 지금 보수공사 중이라 관람할 수 없더군요. 안타깝지만 그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뭔가 다른 것이 나올 것만 같네요. 올라가 봅시다.
조사당 뒤편의 북쪽 언덕에는 글 처음에 말씀 드렸던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석종(보물 제228호)이 있습니다. 조용한 소나무 숲에 안치된 석종은 앞으로 석등(보물 제231호)을 뒤로는 석종비(보물 제229호)가 자리잡고 있는데 일명 ‘보물 3종세트’가 되겠습니다. 나옹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는데 우왕 2년에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서 경남 밀양 영원사로 가던 도중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곳에 안치되었습니다. 석종비에 이런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어 이 무덤에 대한 유래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내려와 강 옆으로 난 길로 가보겠습니다. 숲길 끝에 우람한 돌탑이 하나 서있네요.
이 탑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다층전탑(多層塼塔)인데요, 현재 보물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塼塔)인데요, 글자 그대로 벽돌塼로 만든 탑塔을 말합니다. 단순한 모양이지만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네요.
전탑 맞은편에는 비석을 모시고 있는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가 있는데요, 이 또한 보물 제230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 극락보전 왼쪽으로는 대장각이란 전각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건물을 조정한 기록을 담고 있는 비석이에요. 지금의 위치는 극락보전 오른쪽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아마 대장각이 없어진 후 이쪽으로 자리를 옮겼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남한강변으로 조금 내려오니 강을 바라보고 바위 위에 날아갈 듯이 앉아 있는 강월헌(江月軒)이란 전각이 하나 있습니다. 시원한 남한강을 앞에 두고 있으니 풍경이 아주 그만입니다. 겨울엔 강바닥이 얼어 붙는데요, 거기에 눈까지 내리면 풍경이 아주 예쁜 곳이에요. 그 옛날 묵객들이 그렇게 많이 다녀갔다는 이 정자의 이름은 나옹선사의 호인 ‘강월헌(江月軒)’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강월헌 바로 옆에는 고려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하나 있습니다. 열반한 나옹선사의 시신을 화장한 자리에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가실 제 최고의 명당자리에서 열반하시고, 또 묻히셨네요.
강을 바라보고 있는 정자가 참 운치 있죠? 나옹은 걸출한 시인이자 문학가이기도 했는데요, 갑자기 그의 선시의 싯구가 떠오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블라블라” 기억 나시죠?
절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잠시 땀을 닦고 있는데, 참새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제 옆에 턱~ 내려 앉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벌레를 많이 잡아 먹었는지 살이 오동통 오른 게 귀엽네요. 어떤 측면에서든 한국에서 유일하다는 명함이 있으면 꼭 가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죠. 대한민국에서 강변에 위치한 사찰은 이곳 한 곳뿐이니 여주여행에선 빼먹지 말고 꼭 들러보세요. 평지라 걷기에 힘들지도 않아 좋습니다.
+ 입장료 : 어른 2,200원, 청소년 1,700원, 어린이 1,000원.
7편 계속...
같이 다녔던 광주, 이천, 여주 여행코스 (연재중)
1. 세계최대 도자기축제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광주편 : 본색(本色)
2. 세계최대 도자기축제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이천편 : 이색(異色)
3. 세계최대 도자기축제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여주편 : 채색(彩色)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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