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입니다. 소설 속 허생원과 동이가 오가던 장돌뱅이 옛길은 최근 ‘효석문학 100리길’로 정비되어 다시 태어났습니다. 총 5개 구간 53.5km에 걸쳐 있는 이 길은 각각의 테마로 강, 들, 숲 등 옛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1코스 ‘문학의 길’을 걸어보겠습니다.
전체 구간을 잠시 설명 드리면, 1코스 7.8km는 ‘문학의 길’로 이효석 생가에서 장평리 여울목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2코스 13.3km는 ‘대화장터 가는 길’로 여울목에서 대화장터까지 3시간 가량 소요되고, 3코스 10.4km는 ‘강 따라 방림 가는 길’로 대화장터에서 방림삼거리까지 2시간 30분가량 소요되고, 4코스 10.2km는 ‘옛길 따라 평창강 가는 길’로 2시간 30분, 5코스는 5-1과 5-2로 나뉘는데 각각 7.5km와 4.3km로 2시간, 1시간 가량 걸어가는 코스입니다.
1코스 문학의 길은 흥정계곡을 따라 난 오솔길을 걷는 길이라 잠시 쉴 때는 강 옆 큰 너럭바위에 앉아 사진도 찍고 발도 담그며 쉴 수 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평창군에서는 기우제까지 지냈다고 하던데, 아직 흥정계곡에는 물이 마르지 않고 유량이 제법 되네요. 비가 좀 와준다면 더 맑고 많은 물이 흐르겠죠?
강물은 큰 바위를 만나 갈라지고 또 모이고 흐르는데, 그렇게 생긴 웅덩이 같은 곳은 유속이 느려서 마치 자연이 만든 풀장 같은 느낌이네요. 수심이 제법 깊어 보이는데 여름에 튜브 하나 띄우고 동동 떠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모자 쓰고 지팡이 들고 있는 저 이정표가 나오면 효석문학 100리길이란 뜻입니다. 차를 가져와서 전체를 완주할 순 없지만 숲길을 따라 조금 걸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지나기 힘든 길은 나무데크로 편리하게 만들어 놨지만, 대부분의 길은 모두 흙 길이기 때문에 자연을 제대로 즐기면서 걸을 수 있어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가끔 보이던데, 비교적 순탄한 코스라 자전거로 쉽게 돌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왼쪽으론 강이 흐르고 그 옆으로 난 조그만 오솔길을 걷는 기분은 정말 상쾌합니다. 더운 날이었지만 숲에서 흘러 내리는 선선한 바람과 온통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어요. 다음 번엔 자전거를 타고 완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흥정계곡의 바위들은 꽤 독특한 모양들이 많아 뭔가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비범한 바위들은 ‘팔석정(八石亭)’이라 부르는데, 이름 덕분에 사람들은 정자(亭子)로 많이들 오해하더라고요. 정자가 아니라 여덟 개의 바위를 가리킵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가운데 있는 바위 위로 자란 소나무가 인상적이네요.
물가로 내려와서 보니 최근에 비가 안 오긴 안 왔나 봐요. 바위에 있는 물 흔적이 아래로 많이 내려갔네요. 물이 흔하디 흔했던 예전에 한국이 물 부족국가가 된다는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데, 요즘은 피부로 실감합니다.
얘네들은 물이 없어지고 있다는 걸 알긴 하는지, 친구들과 재미지게 발장구 치며 놀고 있네요. 물의 수위가 낮아져 웅덩이가 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개구리와 올챙이들이 한 가득 살고 있습니다. 조그만 다리를 쭉쭉 펴는 모습이 참 귀여워요.
상류 쪽으로는 바위는 안보이고 모래만 있던데, 어찌 된 일인지 하류 쪽은 큼직한 바위들로만 강바닥이 꽉 차 있군요. 길을 걸으며 여러 형태의 강을 한꺼번에 만나는 느낌이네요. 하늘도 좋고, 날은 조금 덥지만 습하지 않아 걷기는 딱 좋은 계절입니다.
오늘 혼자 걸어가는 전 절대 사용할 수 없는 포토존이네요. 같이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씩 사진 찍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면 좋겠군요.
나무데크 보다 이렇게 진짜 통나무로 틀을 만들고 흙을 부어 만든 길이 참 정답습니다. 많은 길을 걸어봤지만 이렇게 만든 길은 거의 못 본 것 같네요.
조금만 더 걸어 올라오니 이제 강바닥에 바위는 사라지고 온통 모래로 가득한 강을 만납니다. 강 건너편에 펜션이나 민박집이 종종 보이던데, 여름에 이곳에서 물장난 치고 놀기 좋겠네요. 강 옆으로 그늘도 많고요.
종종 하늘을 올려다 보면 새집을 나무에 매달아 놓았는데, 진짜 새들이 드나드는 새집도 있더군요. 기분 좋은 트래킹입니다.
1코스의 이름이 ‘문학의 길’인데, 길 중간 중간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구절이 적혀 있어요. 물레방앗간에서의 기이한 인연을 말하는 건 성서방네 처녀와 허생원이 인연을 맺었던 그 물레방앗간을 말하는 거겠죠? 그런데 이 물레방앗간은 봉평의 ‘풀내음’이란 식당 바로 입구에 있던데, 제가 그 식당을 찾아갔는데도 사진을 담지 않았다는… 그 식당은 다른 글에서 보여드리기로 하고…
코스 중간 중간엔 길을 잃지 말라고 시그널 리본을 달아 놔서 길 잃을 걱정은 없겠습니다. 설마 리본 따라가면 되는데도, 엄한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겠죠?
몇 키로 걷는다고 고생한 다리를 쉬게 해주려고, 흥정계곡 오토캠핑장을 찾았습니다. 1코스에서 강을 따라 허브나라농원 방면인 북쪽으로 5분 정도 올라오면 만날 수 있습니다. 차를 가지고 오셨다면 이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물에 발 담그고 쉬었다 가면 좋습니다.
날은 많이 더워졌지만 아직 캠핑을 즐기는 사람은 많이 없네요. 드넓은 오토캠핑장에 텐트가 딱 한 동 쳐져 있고 나머진 모두 비어 있군요.
신발을 벗고 물 속에 발을 담가 봅니다. 저쪽 나무 아래에서 아이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데, 뭘 잡았나 구경가 볼까요?
심각한 가뭄이라고 하던데, 아직 평창은 그나마 물이 제법 흐르고 있어 안심입니다. 여기가 강에서도 제법 상류인데, 물도 깨끗하고 수온도 물놀이 하기 딱 적당하네요.
이야~ 7-8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여섯 마리나 잡았어요! 뭘로 잡나 가만히 보니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통발로 잡더라고요. 요즘은 아이 물놀이 도구로 몰랑몰랑한 통발을 따로 파는 것 같네요. 꼭 먹지 않아도 물고기 잡고 아이들과 노는 것도 참 즐거울 거에요. 잡은 물고기는 죽지 않도록 잘 데리고 있다 풀어주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효석문학 100리길은 평창군의 6개 면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오감만족 가능한 길이고요, 이효석 문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에겐 더 없이 멋진 감성을 선사할겁니다. 길 중간 중간엔 QR코드가 있어 다양한 주변 관광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고 소설을 내레이션으로 들을 수도 있답니다.
평창여행기 2편 계속...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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