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가을을 느끼는 '낭만숲길' 여섯 곳 | 가을여행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계절의 변화가 참 빠릅니다. 무더위가 오는 것 같더니만 장마가 오고, 또 곧바로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는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침입니다. 이제 9월이면 곧 단풍이 질 계절인데요, 한국의 산과 들은 가을의 정취를 즐기기 좋은 낭만숲길이 참 많습니다. 제가 전국의 모든 단풍길을 걸어보진 못했지만, 그간 다녀온 길 중에서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멋진 곳을 여섯 곳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기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계곡도 있으니 입맛에 맞는 곳으로 골라 걸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여행 중에 아래 언급한 곳이 있다면 꼭 코스에 넣어보시고요. 자, 내려가 볼까요?

 

 

 

1. 모정탑길 (강원도 강릉시 소재)

 

 

첫 번째로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모정탑길입니다. 제목에서 뭔가 아픔이 느껴지시나요? 이곳은 한 어머니가 가족들의 안녕을 빌며 26년간 3,000개가 넘는 돌로 탑을 쌓은 길인데요,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적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애타는 소원을 담는 이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척 아름다워서 어머니의 아픔과 묘하게 교차되는 곳이에요.

 

 

 

 

 

 

모정(母情)탑 길에 얽힌 실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차순옥 할머니는 23살에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와서 슬하에 4남매를 두었는데, 아들 둘은 죽고 남편마저 정신병에 걸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았답니다. 차 할머니가 40세가 되던 해에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계곡에 돌탑을 쌓으면 우환이 사라질 거란 말씀을 듣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노추산 자락에 있는 이곳에다 1986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26년동안 3,000개가 넘는 돌로 탑을 쌓아서 이 길을 모정탑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탑을 다 쌓은 2011년 그해에 향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버리셨습니다.

 

 

 

 

 

 

할머니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도 아마 강 주변이라 돌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아름답지만 가슴 아리는 사연을 곱씹으며 걸으면 묘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어머니는 태풍이 불면 다시 쌓기를 여러번 반복 하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풍경의 아름다움에 더 감탄을 하겠지만 어미니의 소망은 차곡차곡 쌓여 무너지지 않는 탑이 되었습니다.

 

+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716번지 (노추산 힐링캠프에서 길이 시작됩니다.)

 

 

 

 

 

2. 비자림 (제주도 제주시 소재)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의 비자림에 들어서면 숲이 주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천 년이 넘은 이 숲은 수령이 500~800년인 비자나무가 2,800그루 이상이 자라고 있습니다. 푸른 비늘같이 하늘을 뒤덮은 거목들과 화산작용으로 생긴 붉은색 토양인 송이가 깔린 길은 한국에선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죠. 비자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 있는데, 전세계에서 보기드문 비자나무 밀집 숲인데, 걷기만 해도 심신의 피로가 싹 풀린다며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곳이기도 합니다.

 

 

 

 

 

 

비자림 탐방코스는 크게 두 갈레로 길이 갈라지는데 두 군데 모두 아름답긴 매 한가집니다. 크게 원을 그리며 한바퀴 돌아보는데는 약 1시간 20분 가량 소요되는데,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기 때문에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길 중간에는 827년을 산 최고령 비자나무도 있고 두 나무가 붙어 자라는 연리지도 있는데, 숲의 기운을 듬뿍 받아 신비한 느낌이 듭니다. 간혹 길 옆에선 딱따구리가 집을 짓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나무를 쪼는 딱딱딱딱 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 입장료 : 성인(24세 이상) 1,500원, 청소년 및 어린이(24세 미만) 800원

+ 입장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3. 사려니숲길 (제주도 서귀포시 소재)

 

 

제주 사려니숲길은 최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쁜 트래킹 코스입니다. 그런데 제주여행에서 대부분 바이크나 차량을 렌트하기 때문에 이곳을 완주한 사람은 잘 없을 거에요. 세워둔 차로 다시 돌아가야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코스의 마지막에는 '붉은오름'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은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바닥은 온통 붉은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 빨간색 길이 구불구불 열려 있고, 좌우로는 빼곡이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줄지어 있습니다. 코스의 마지막이다 보니 사람도 거의 없어 신비감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죠. 특히 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은 세상의 색깔이 진해져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하게 될 겁니다.

 

 

 

 

 

 

길 옆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은 그 끝을 알 수 없어 저 멀리는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은 신비감 마저 드네요. 제가 찾은 날은 좀 전 사진에 본 사람 두 명 말곤 아무도 만나지 못해 한적한 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최적의 트래킹 코스가 될 겁니다.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 길을 걷다 보면, 들리는 소리라곤 내 발자국 소리와 새소리 밖에 없습니다. 양쪽으로 빼곡이 채워진 나무들로 인해 내 숨소리마저 크게 느껴집니다. 영화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받는 배우처럼 우아하게 이 길을 걸어보세요. 전에 경험하지 못한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될 겁니다.

 

 

 

 

 

4. 소금강 (강원도 오대산국립공원 소재)

 

 

소금강은 작은 금강산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계곡과 산세가 아름다운 곳이란 말이겠죠. 오대산은 산행을 즐기는 사람에겐 사철 반가운 곳이지만 특히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인기있는 곳입니다. 계곡입구인 무릉계곡에서 진고개까지 약 13km 정도의 등산로가 이어져 있는데, 입구에서 약 2km 정도 들어가는 코스를 초심자에겐 추천드립니다.

 

 

 

 

 

초심자에게 추천드린 2km 구간은 위 사진의 식당암까지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식당암(食堂岩)은 글자 그대로 밥 먹는 바위란 뜻인데,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에서 밥을 먹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트래킹코스 들어서기 전에 메밀전병이나 메밀배추전을 파는 가게들이 종종 있는데, 사들고 와서 이곳에서 먹으면 꿀맛일겁니다.

 

 

 

 

 

 

식당암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구룡폭포를 만나고 그 이후로는 난이도가 대폭 상승하는 코스를 만나는데, 길이 제법 험하고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게 이어지니 초심자는 여기까지 가실 것을 추천합니다. 그렇다고 2km라고 우습게 보시면 안되는 게, 왕복에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코스기 때문에 그리 쉬운 길은 아니란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살살 걸어서 단풍구경만 짠~ 하고 오실 분들에게 소금강계곡 식당암 코스, 진심으로 추천드립니다.

 

 

 

 

 

5. 태안 둘레길(해변길) (충남 태안군 소재)

 

 

제주에는 198km에 이르는 올레길이 있습니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다면 태안엔 둘레길이 있어요. 해변을 따라 총 연장 120km에 이르는 해변길은 학암포에서 시작해서 안면도 영목항까지 바랏길1, 바랏길2, 유람길, 솔모랫길, 노을길, 샛별바람길 등 6개의 구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태안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한데, 해변길을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해변을 따라 난 길이라 해송들 사이로 난 길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다른 숲 속 길과는 좀 다른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6개의 코스 중에서 제 5코스인 노을길은 해변가를 따라 12km 정도 길이 이어져 있는데, 해송 숲도 있고 모래사장 데크길도 있고, 해변을 따라 난 길이 참 아름다운 코스입니다. 삼봉해변을 따라 걷다보면 기지포해변, 두여해변, 밧개해변, 방포항, 꽂지해변으로 이어지는데,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걷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차를 가지고 오셨더라도 해안둘레길 순환버스가 주기적으로 왕복을 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걸어도 되겠습니다.

 

 

 

 

 

6. 화양계곡 (충북 괴산군 소재)

 

 

한국에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가 얼마나 많은데, 같은 곳을 여러 번 여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시는 충북 괴산의 화양계곡은 제가 최근 몇 년 사이 계절마다 다녔던 것 같네요. 속리산 북쪽에 자리잡은 이 계곡은 효종 임금을 잃고 슬픈 마음에 이곳에서 은거하며 살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흠모하여 계곡에 있는 아홉 곳의 아름다운 바위에 이름을 붙여 '화양구곡'이라고도 불리는 곳입니다. 특히 이곳의 산책로는 가을이 되면 낙엽송으로 터널을 이루어 정말 아름다워지는 곳이죠.

 

 

 

 

 

 

구곡 중에서도 두 번째로 만나는 운영담이 저는 가장 아름다웠는데요, 강변에 기괴한 바위가 무리를 이루어 서 있고, 맑은 날에는 구름이 물에 비친다고 해서 운영담이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구곡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는 9km의 산책로를 걸어가야 하는데, 왕복 3시간 가량 소요가 됩니다. 너무 길어 못 걷겠다는 분들은 금사담까지 걸어가시면 왕복 1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데, 이것만 보시더라도 9곡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화양계곡은 떨어진 낙엽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걸어보는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 눈으로 본 그대로를 사진으로 전달해드릴 수 없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꽃이 만발한 봄, 초록이 우거지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여름,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가을, 나무들이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겨울 풍경도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괴산여행 떠나신다면 이곳은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맘에 드실 거에요.

 

 

 

 

 

마치며...

 

매년 가을은 조용히 왔다가 어느새 눈이 내리며 금새 사라지는 계절입니다. 올해 가을은 사랑하는 사람과 꼭 멋진 낭만숲길을 걸어 보세요. 제가 소개해드린 여섯 곳은 힘든 코스가 없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어볼 수 있는 곳이에요. 친구나 가족을 데리고 가신다면 궁뎅이 톡톡 칭찬 받으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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