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상 깊은 영화 한편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007년 개봉했던 「맨프럼어스, The Man from Earth」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는 좁은 오두막 한 곳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소파와 집 앞. 대부분은 소파에 앉아 여덟 명이 이야기만 나누는 장면으로 런닝타임 1시간 27분을 채운 독특한 영화입니다. 특수 분장도, CG도, 액션도, 화려한 카메라의 움직임도 없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의 장르는 당당히 SF에 분류되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대학교에서 고고학 교수로 일했던 '존 올드맨(데이비드 리 스미스 분)'은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사를 가려고 합니다. 앞날이 탄탄한 학과장 자리도 마다하고 갑자기 살던 곳을 떠나려는 존을 배웅하려 일곱 명의 친구들이 오두막을 찾습니다. 의사, 고고학자, 신학자, 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황급히 떠나려는 이유를 캐 묻자 존은 자신이 크로마뇽인이 살던 1만4천 년 전부터 살아 왔고,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전에 이사를 가는 거라고 황당한 이야기를 합니다.
시답잖은 농담으로 여기던 친구들은 게임처럼 그의 과거를 캐 묻기 시작하는데, 존 올드맨의 이야기는 빈틈없이 논리 정연합니다. 친구들 모두 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이라 자신들의 박학다식한 지식으로 빈틈을 찾으려 질문을 던지지만, 존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학위를 다 가지고 있으니 허술한 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 엉뚱한 이야기는 음모론으로 치닫고, 그간 인류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존재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듣게 됩니다.
포털사이트 평을 보면 이 영화가 종교를 모독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를 종종 봅니다. 영화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예술입니다. 저도 신이란 존재를 믿고 살지만 영화 어디를 뜯어봐도 신성을 모독한 대사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대상을 미화하고 포장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죠. 어쩌면 종교의 탄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굉장히 단순했을 수도 있고, 신의 말씀과 뜻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은 원래는 생각보다 소박하고 명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신은 그저 어려운 사람을 사랑으로 도우라고 짧게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이 수천 년을 거치면서 성경책의 100페이지에 달하는 어떤 부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 거죠.
영화 <맨프럼어스>에서 볼 거라곤 시나리오 하나밖에 없습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대사 하나를 놓치기 싫어 끝까지 참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SF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특수효과나 CG처리 하나 없이, 당당히 SF 장르로 대변될 수 있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70년대 TV시리즈 <스타트렉>과 <환상특급>으로 알려진 작가 '제롬 빅스비'의 재기발랄한 시나리오 덕분에 대화로만 이루어진 이 영화는 SF장르 특유의 호기심과 몰입감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관심있어 했다고 하던데, 그가 메가폰을 잡았다면 존 올드맨의 1만4천 년간의 여정을 화려한 CG를 통해 어떻게 보여줬을까도 꽤나 궁금합니다.
부처의 가르침에 감명 받아 중동으로 전파하려다 자신이 졸지에 예수가 되어버렸다는 존 올드맨의 이야기는 불교가 서방으로 전파되면서 기독교가 탄생했다는 오랜 학자들의 논쟁에 다시금 불을 붙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아주 독특하고 신선한 영화임엔 틀림없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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