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졌다 살아 난 1700년 백제 고찰 '용흥사' | 담양여행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우리나라 땅에서는 예로부터 전쟁을 수도없이 치루는 바람에 온전히 남아있는 문화재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은 왜란 때문에, 일제시대 의병 토벌 때문에, 한국전쟁 때문에 대부분 소실되었죠. 어느 사찰을 가든 전후 재건하지 않은 사찰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요. 오늘 저와 함께 가보실 용흥사도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탔고, 19세기에는 의병의 본거지라고 관군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또다시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어 최근에 들어 재건한 사찰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은 문화제 관리 차원에서 입장료를 부과하던데 없으니 뭔가 허전한 느낌마저 드네요. 대신 시주를 조금 하고 나와야겠습니다. 자, 들어가 볼까요?

 

몇 일 전 눈이 내려 다른 곳은 다 녹았는데 산자락 아래는 아직 녹지 않았네요. 사찰 규모가 작아 일주문에서 바라보니 저 뒤에 전각이 바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주문 현판에는 ‘용구산 용흥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보통 사찰 이름 앞에는 산 이름을 꼭 넣습니다. 같은 이름이 많아 구별하기 위해 적어 놓는 게 보통이죠. 용흥사는 똑 같은 이름으로 함경도에도 있고, 경북 상주에도 있고, 합천에도 있습니다.

 

 

 

 

 

 

제가 용흥사를 참 좋아하게 된 이유는 사찰을 끼고 흐르는 계곡이 너무너무 깨끗해서 입니다. 바위에는 여느 유명한 이끼계곡 못지않게 푸른 이끼가 까마득하게 껴 있고, 그 아래로는 완전히 투명한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습니다. 조금 가까이 가서 사진을 담고 싶지만, 밟으면 이끼가 죽을까 그냥 먼발치 풍경만 담아 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산사에서 혼자 걸어보는 것도 참 운치 있습니다. 앞의 사천왕문을 지나면 꿈처럼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걸까요.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전쟁 때 소실되어 터만 남은 곳도 보이고, 높은 돌계단 위로는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습니다. 공양소와 종무소 건물을 빼면 사찰 건물이라곤 대웅전과 요사채 두 동만 남아 있는 곳이라, 천천히 더디게 걸어 돌아봅니다.

 

 

 

 

 

 

겨울 산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린 적막감이 전 왠지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이곳엔 탑이 없어 부처 석상을 소원 수대로 돌며 빌고 또 빌어 봅니다. 부디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모두 소원을 이루시게들~

 

 

 

 

 

 

눈이 내려 얼었던 기와가 풀려 물이 찰랑찰랑 떨어지고 있습니다. 푸릇한 이끼까지 더하니 이제 곧 봄이 올 거라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좁은 굴 같은 통로를 지나니 대웅전이 보입니다. 이곳은 백제 때 용구사(龍龜寺)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수많은 전쟁으로 그 역사가 조선 후기까지는 정확히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조선 숙종 때 숙빈 최씨가 여기서 절을 하고 영조를 낳았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어요. 이 절의 이름은 왕을 일으켰다고 해서 용흥사(龍興寺)로 이때 바뀌었습니다.

 

 

 

 

 

 

 

최근에 중창되어서 그런지 대웅전의 문과 단청의 무늬가 참 선명하니 아름답네요. 한바퀴 빙 둘러보며 우와, 감탄이 나옵니다. 영조가 태어나고 이곳은 48동이 넘는 건물이 들어서 있는 호남 제일의 대가람이 되었습니다. 영조가 즉위하고는 장차 왕이 될 아들을 낳게 해주는 영험한 곳이라고 상궁이 머물 수 있는 건물까지 지으며 왕의 총애를 받았었는데, 구한말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면서 일제에게 다시 한번 48동의 건물이 모두 불타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최소한의 건물만 복원되었는데 다시 옛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벽면의 영산후불탱화도 인상깊고, 불상 왼편 구석에 있었던 동종도 기품이 넘칩니다. 저 동종은 1644년에 만들어졌는데 조형성이 뛰어나고 세련된 문양 표현 등 주조기술이 돋보이는 수작이라 현재 보물 제155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곳의 부흥과 이런저런 나이 소망을 담아 석가모니불과 좌우 보살님들에게 절을 꾸벅하고 시주도 조금하고 나옵니다.

 

 

 

 

 

 

누가 눈밭에 꽃을 흩어 놓았을까요? 혹여 어떤 의식 행위의 결과거나, 누군가 그리워 놔뒀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지나쳐야겠네요. 설마 꽃을 아무 의미없이 저곳에 버려 놓은 건 아니겠죠? ^^*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시 봐도 용흥사 계곡은 참 멋지네요. 이 계곡을 즐기고 싶다면 절간 아래 상록수산장이라는 캠핑장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말입니다. 텐트를 칠 수도 있고, 카라반을 가져와서 지낼 수도 있나 봅니다. 다음엔 이 멋들어진 이끼계곡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 드네요.

 

 

 

 

 

 

 

절간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월산저수지가 있어요. 주변에는 식당도 조금 있고 산책할 수 있는 곳도 조금 있던데, 사찰만 보고 훌쩍 떠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구경거리가 있어 좋네요. 지금은 날이 풀려 어름이 거의 녹았는데, 한 겨울에는 저수지가 꽁꽁 얼어 썰매를 타도 되겠는데요?

 

 

 

 

 

 

그렇게 차를 타고 절을 떠나는데 두 분의 동네 개님께서 도로를 점령하시고 통행세를 걷으려 하십니다.

 

 

 

 

 

 

근처 전원주택에서 키우는 강아지들 같은데, 사람을 잘 따르네요. 같이 놀자고 차에 올라타고 엄청 반갑게 맞아 줍니다. 올라 갈 때도 만났었는데, 혹시 내려올 때도 있으려나 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그 자리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네요. ^^*

 

 

 

 

 

 

먹던 비스킷을 하나 던져주니 낼름 받아먹습니다. 뒤에 통통한 강아지가 “나는?” 이라고 눈빛을 쏘네요. 차에서 내려 쓰담쓰담 해주며 골고루 비스킷을 하나씩 나눠 줬습니다.

 

 

 

 

 

 

빠이빠이 손흔들고 차를 움직이는데, 얘네들 계속 따라 오네요. 제가 동물을 좋아해서 가끔 길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만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제가 사는 집에서도 길고양이와 새들에게 먹이 주는 재미로 사는데, 앞으로도 나의 여행길에 자주자주 만났으면 좋겠네요.

 

용흥사는 화려한 유물이나 사찰의 전경은 없지만, 입장료 없이 조용히 사찰을 거닐다 오기엔 참 좋은 곳이었어요. 근처엔 캠핑장도 있고, 저수지도 있고, 계곡도 있어 여러가지로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단순히 볼거리만 찾으시는 분들은 마음에 드시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조용한 곳 좋아하는 저에겐 참 멋진 곳이었답니다.

 

+ 입장료, 주차료 : 무료

 

 

 

6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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