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고 떠나는 뚜벅이 대구여행 코스

대구는 인구 250만의 대도시이자 영남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옛 신라와 가야의 찬란한 문화를 이어받은 유서 깊은 고장으로, 많은 근현대사의 역사가 살아 있고 다양한 먹거리로 여행자를 유혹하지요. 대구는 큰 도시답게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어 기차 타고 떠나는 뚜벅이 여행도 좋은데, 걷고, 보고, 먹어도 살 안 찌는 신나는 뚜벅이 대구여행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서울역→대구역 무궁화호 요금 20,900원(새마을호 31,100원). 3시간 40분 소요된다.

1. 근대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근대문화골목 투어

대구광역시 중구에는 근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이 많아요. 짧은 여행 일정에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뚜벅이 여행에 알맞는 대구역에서 걸어 갈 수 있는 코스를 소개하자면, 화교소학교를 시작으로 진골목, 종로, 영남대로, 약령시, 구)제일교회를 지나 이상화/서상돈 고택에서 잠시 쉬었다가, 계상성당, 3.1만세운동길, 제일교회, 동산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을 돌아보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근대문화골목 탐방거리 1.64km. 2시간이 소요된다.

‘진골목’이란 경상도 말로 ‘긴 골목’이란 뜻이에요.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의 고샅길 같은 익숙한 좁은 골목에는 정다운 구멍가게도 있고, 일반 가정집에 차린 작은 병원도 보이고, 드라마 <사랑비>에서 첫사랑을 추억하던 미도다방도 만납니다. 진골목을 빠져 나오면 약재를 파는 약령시(藥令市)가 나오는데, 700미터 길이의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문득 길가에 홀로 빛나는 구)제일교회는 여전히 기품이 넘칩니다.

 

어릴 적 친구가 나를 부를 것만 같은 구불구불 좁은 진골목

독립운동가인 시인 이상화와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읽으며 이상화/서상돈 고택에서 잠시 다리를 쉬고, 큰길로 접어들면 작지만 예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와 쌍탑이 몹시 아름다운 계산성당이 나옵니다. 성당 앞 길을 건너면 90개 돌계단의 3.1만세운동길을 만나는데, 양쪽 벽에 걸린 대구 옛 모습 사진을 구경하며 오르면 청라언덕이 있어요. 이곳에는 1910년 전후에 지어진 선교사들의 예쁜 집 세 채가 잘 보존되어 있답니다.

 

좌-계산성당, 상-1.3만세운동길, 하-선교사의 집

2. 아름다운 드라마 세트장 같은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계명대학교는 영화나 드라마의 옛 학창시절 배경에 단골로 등장합니다. 영화 <동감>, 드라마 <사랑비>, <꽃보다남자> 등 촬영지로 유명한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있던 작품들이라 해외 여행자도 자주 찾는다죠. 교정의 모든 건물은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조지아 양식을 하고 있는데, 한국전쟁 이후 국가재건 과정에서 미국 선교사가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대구역이나 경상감영공원에서 202번 버스를 타면 대명캠퍼스 정문 앞에 세워줍니다.

 

계명대학교 건축물은 1950년대 미국의 대학교와 똑 같은 조지아풍 양식을 하고 있다.

계명대학교 교정은 마치 드라마 세트장 같기도 하고, 잘 가꾼 정원을 걷는 느낌입니다. 학교 전체가 아름다운 예술작품 같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여러 작품에 등장했던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영화 <동감>을 기억한다면 대학 본관을, 드라마 <사랑비>를 즐겨 보셨다면 쉐턱관, 아담스관, 윌슨관, 그리고 윤희(윤아 분)가 나풀거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책을 읽던 윌슨관 앞 나무벤치도 꼭 기억하는 걸로.

 

계명대학교 교정엔 사랑했던 작품의 등장인물이 문득 뛰어 나올 것만 같은 설렘이 있다.

3.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났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가수 김광석이 그립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는 암울했던 현실을 탈출시켜 준 해방구 같은 존재였지요. 故 김광석은 1993년 5월에 <다시 부르기>라는 음반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그가 살았던 방천시장 골목길에 그의 음악과 삶을 표현한 벽화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채워졌습니다. 이 길은 방천시장 문전성시 일환으로 조성되었는데, 그리 길지 않은 골목에는 예쁜 벽화와 음악으로 즐길 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김광석이 사뭇 그리워지는 벽화와 잔잔히 흐르는 음악은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골목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문득 가슴이 찡해지며 그가 그리워지더라고요. 일자로 뻗은 350미터의 골목 벽면을 따라 여러 조형물과 기타 울러 매고 노래하는, 포장마차에서 국수 말아주는, 바다를 보고 있는 김광석이 벽화로 그려졌는데, 수준 높은 벽화만으로도 걸어 볼 가치는 차고 넘칩니다. 매년 가을에는 故 김광석을 그리기 위해 방천시장과 동성로 일대에서 '김광석 노래 부르기 경연대회'도 열립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작지만 그리움은 크게 일렁이는 길이었다.

4. 우주최강 먹거리가 넘치는 '서문시장'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3대 시장이 있습니다. 평양의 평양장, 논산의 강경장, 그리고 대구의 서문시장. 서문시장은 하루에 모두 둘러보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규모로는 서울 남대문시장보다 더 큽니다. 특히, 여행자들에겐 다양한 먹거리로 더 유명한데, 시장 구석구석엔 전국의 모든 음식이 총망라되어 있고, 대구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특별한 먹거리도 많은 데다 가격 또한 저렴하니 금상첨화~

 

끝도 없이 늘어선 서문시장의 한 먹자골목

서문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의 음식은 마가린에 튀긴 부산의 그것과는 다르게 담백하면서도 달콤한 씨앗호떡, 대구에서 먹어야 제맛인 막창, 비빔밥, 칼국수, 돼지국밥까지 길거리 포장마차에는 없는 음식이 없습니다. 특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나뭇잎 만두와 납작만두, 양념어묵, 양푼 돼지갈비찜은 대구여행에서 안 먹어 봤다면 다시 떠나길 추천합니다.

 

서문시장 양념어묵. 매콤한 맛이 떡볶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5. 안 먹고 왔다면 다시 떠나야 할 대구 먹거리 네 가지

대구는 역시 고기가 맛난다. 연탄불에 자글자글 구워주는 연탄불고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고기 맛과는 조금 다른데, 달지 않고 파와 함께 은은한 매콤함이 퍼지는 맛이 일품입니다. 연탄불에 초벌구이 한 돼지고기에선 연탄불 향기도 참 좋아요. 그리고 대구 하면 막창 또한 필수코스. 한 입 크기로 잘라 초벌구이를 한 막창을 연탄불에 살살 돌려 굽고, 두툼한 깻잎에 새콤달콤 파절이를 깔고 달콤짭쪼름한 장에 막창을 찍어 올리면 입에 넣는 순간 녹아요.

 

좌-국일불갈비(대구 중구 태평로 172, 전화: 053-424-5820), 우-구공탄막창(대구 남구 대명로 303, 전화: 053-622-7071)

대구의 또다른 필수 먹거리에는 납작만두가 있지요. 이름 그대로 납작한 모양의 만두인데, 속에는 후추로 간을 한 당면과 야채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간장과 고춧가루를 솔솔 뿌리면 고급스럽진 않아도 중독성이 매우 강해요. 쫄면을 납작만두에 싸서 먹는 맛도 별미 중의 별미! 그리고 서문시장 찌그러진 양푼에 담아주는 돼지갈비찜도 꼭 먹어봐야 할 음식입니다. 매운 고추와 마늘로 양념한 돼지갈비를 양푼에다 익혀 주는데 숟가락 쉬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밥 두 공기는 아.마.도. 필수!

 

좌-미성당 본점 납작만두(대구 중구 남산로 75-1, 전화: 053-255-0742), 우-경희식당 돼지갈비찜(대구 중구 큰장로28길 25, 전화: 053-253-3152)

6. 뚜벅이 대구 여행을 마치며…

내가 찾은 대구는 생각한 것보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은 도시였습니다. 근대문화골목도 아름답고 계명대학교, 김광석 길 또한 근사했지만, 무엇보다 다양하고 맛있는 먹거리가 인상적이었어요. 남도에서는 물론이고 수도권에서도 3시간 안팎으로 가까워서 1박 2일은 물론이거니와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엉덩이 토닥토닥 칭찬 받고 싶다면 이번 주말 대구행 기차표를 예매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