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말라카 여행 #10-야만시대의 아름다움 '산티아고 요새 & 세인트 폴 교회'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야만(野蠻)이란 문화가 뒤떨어진 후진(後進) 문명의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침략하고 점령하고 또 원주민을 노역시켰던 그 침략자들을 '야만'라 부르고 싶다. 그 시절은 정확히 야만시대였다. 16세기 말레이시아는 포르투갈에 점령되어 있었는데, 또 여기를 차지하겠다고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무력으로 이 나라를 짓밟았다. 오늘 가볼 산티아고 요새는 포르투갈 통치 시기에 원주민을 강제 동원해 지어졌고, 세인트 폴 교회 또한 요새 안에 지어졌다.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의 침략으로 요새와 교회는 거의 무너지고 지금은 성문과 교회 벽만 남아 있는데, 치열했던 역사는 다 사라지고 이제 아름다움만 남았다.


네덜란드 광장에서 산티아고 요새로 가는 길에 만난 Sacred Heart Canossian Convent. 한글로 성심 수녀원이라고 불러야 하나? 1905년에 지어진 건축물인데 말라카 곳곳엔 18세기와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 상당히 많다.







수녀원을 조금 지나니 또 다른 독특한 건축물이 보인다. 독립기념관(Proclamation Of Independence Memorial)이다. 1912년 영국인이 '말라카 클럽'으로 상류층의 사교를 위해 지은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말레이 독립과 관련된 사진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일반에 공개되어 있으니 관심 있다면 들어가 보자.







독립기념관 옆으로 보이는 오래된 성문이 산타아고 요새(Porta de Santiago)다. 에이 파모사(A Famosa)라고도 불리는데 1511년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점령하면서 원주민을 강제 동원해 지었다.






지도에 정확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바로 뒤편으로 세인트 폴 교회가 있고 이 주변으론 여러 박물관이 있으니 하루 산책삼아 코스를 짜보는 것도 좋다.







영국과의 전쟁으로 요새는 거의 파괴되고 현재는 네덜란드 점령 시절인 1670년에 복원한 성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성문 위에 새겨진 VOC(Verenigde Oostindische Compagnie)문양과 로고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로고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로고




여러 나라가 언급되어 역사가 헤깔리니 여기서 정리를 하면,


말라카는 15세기에 아시아 여러 국가와 왕성한 무역을 하는 무역 왕국이었는데, 1511년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하고 향료 무역의 거점인 동시에 아시아에 가톨릭을 전파하는 선교 기지가 된다. 아시아 최초의 유럽 식민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 그 후 1641년에 네덜란드가 다시 빼앗아 점령하고, 또 1824년부터는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성문 안으로는 더위를 피한 사람들이 북적이고 악사의 노랫소리도 듣기 좋다.







산티아고 요새 성문 뒤로는 1521년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지어진 세인트 폴 교회(St. Paul's Church)가 있다. 약간의 오르막이긴 하나 그리 힘들진 않다. 언덕배기와 교회 내부엔 묘가 여럿 있는데, 네덜란드의 지배 기간에는 이곳을 귀족들의 무덤으로 사용해서 그렇다.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교회 앞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동상이 인상 깊다. 한때는 이곳에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유해가 안치되기도 했는데, 현재는 아이러니 하게도 힌두교를 국교로 하는 인도의 봄 지저스 교회(Bom Jesus Church)에 미라 상태로 안치되어 있다.






전쟁의 상흔이 흉측하지만 이렇게라도 남아 있는 말라카가 나는 부럽다. 지난 역사를, 설령 그것이 부끄럽더라도 있는 그대로 후손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한때 광화문 뒤에 있던 흉물스런 조선총독부 또한 그대로 남겨서 후손에게 그들의 야만을 알리고, 만행을 보존해 세계로 알렸어야 하지 않을까. 부끄럽다고 흙을 덮고 아스팔트를 깔고 빌딩을 세워 올린다고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그곳에 조선총독부가 있었다는 건 우리의 역사니까. 아무튼...







영국과 네덜란드의 공격으로 교회를 지키던 신부님과 수녀님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그치만 지금은 그냥 세월이 만든 아름다움만 남았다.







여느 뮤직비디오나 광고에서 볼 법한 교회 옆 문.







현재 세인트 폴 교회는 덩그러니 벽만 힘겹게 버티고 있다.












교회 제일 안쪽엔 무덤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가 잠들었던 곳인데, 이런 곳엔 안내 표지판이라도 하나 적어두면 좋을 걸, 아무것도 안내가 없다.







그가 누웠던 자리 여전히 빛난다.







교회 담벼락을 채운 비석은 아마도 이곳을 거쳐간 성직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아닐까...












전쟁의 상처는 아직 남아 있지만 교회 언덕에서 바라본 말라카 시내는 한없이 평화롭다.







올라왔던 곳 반대편 언덕길을 따라 내려오니 아이스크림 파는 곳이 있다. 여러 종류의 맛이 있던데 가격은 2링깃(500원).


여태 경어체를 쓰다 오늘 처음으로 평어체를 한번 써봤는데, 글이 잘 읽히나 몰라요. 영화리뷰에는 간혹 썼었는데 여행에는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네요. 혹시 이 문장까지 읽으신 독자분은 평어체(반말? 혼잣말?)는 느낌이 어떤지 의견 있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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