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나라고 정의하는가? 영화 '더 문(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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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Moon)>. 오래전에 본 영화지만 최근 <방구석1열>에서 언급되어 다시 한 번 보게 된 영화. 역시 영화는 볼 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는 매력이 있다. 처음 봤을 땐 초저예산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잘도 표현했다고 감탄했고, 이번엔 인공지능 로봇의 목소리로 출연한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가 좋다는 것과 도대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뭘까?'라는 물음에 봉착했다. 혼자서 요리조리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다. 미래의 지구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달 표면에 있는 헬륨3라는 물질로 전 세계 에너지의 70%를 충당하고 있다. 샘 벨은 달에서 헬륨3 채취와 지구로 보내는 일을 하는 우주인이다. 계약기간은 딱 3년. 통신위성의 고장으로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되었고, 인공지능 컴퓨터 거티와 대화하며 근근히 견뎌내고 있는 열악한 근로환경의 비정규 계약직. 계약기간 3년 중에 마지막 2주를 남겨둔 어느 날, 샘은 이유 없이 건강이 악화되고 환영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헬륨3를 채취하러 기지 바깥으로 나간 샘은 사고로 좌초되었지만, 카메라는 다시 기지 안에 있는 샘을 비춘다. 뭐지? 구조된 건가? 라는 생각도 잠시. 새로 태어난(?) 샘이 사고 현장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고 난' 샘을 구해온다. 이 둘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단지 하나는 계약기간이 끝나가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3년 계약이 시작됐다는 것만 다를 뿐. 내가 또 다른 나와 만난 것. 이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달 기지 캡슐에 쟁여둔(?) 복제인간이었다. 수명 3년은 곧 근무기간과 일치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나를 나라고, 내가 아무개 맞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뭘까? '기억'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나만의 기억을 독창적으로 가지고 있고, 나 아니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혼자만의 기억. 이걸로 나를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두 명의 샘도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아내와 둘만 알고 있는, 자신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기억마저도... 그렇다면 기억만으로는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안 된다는 의미가 되고...


그렇다면 '외모'로는 나를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쌍둥이라도 완전히 똑같진 않으니. 그런데 의학의 발달로 뇌를 이식할 수 있을 때가 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뇌를 너에게 이식하면 나는 나인가 너인가? 다른 이의 신체를 이식받은 자는 또 어떻게 되지? 반대로 사고로 기억을 완전히 잃어 누구도 알아볼 수 없다면 나는 여전히 나인가? 주변은 나라고 말하겠지만,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누군지 모르니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을 '나'라고 말하지 않을까? 두 명의 샘 또한 DNA까지 똑같으니 외모나 기억만으로는 '나'를 정의하기에 부족하고...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자. 철학자 셸리 케이건의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란 책이 있다. 거기선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의 무엇이 죽어야 내가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까 말했던 것과 똑같은 벽에 부딪힌다. 몸이 죽고 기억이 다른 몸으로 들어가거나, 기억이 죽었지만 몸은 살아 있는 경우가 되니까. 그럼 이것도 정답은 아니란 말이고...

그렇다면 나만이 하는 독특한 행동이나 가치관은 어떨까? 나의 말투, 향기, 취미,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대한 많은 가치관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DNA와 취향을 가진 여러 샘들(?)은 모두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취미까지 샘1부터 샘6까지 대를 이어 해오고 있다. 외모, 기억, 가치관과 행동이 같다고 해서 샘1이 샘2를 보고 '니가 나야'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를 나라고 말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인가 보다.


우리가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윤리적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난 생각한다. 나를 나라고 말하기 위해서. 수명 3년짜리 샘이 지구에 두고 왔다고 믿는 아내와 딸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샘은 이미 샘이 아니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오열할 때는 딱하기 그지없다. 기억은 지구에 있지만 몸은 달에서 태어났는데 갈 때가 어딨다고...


이토록 잔인하고 슬픈 SF영화는 전에 본 적 없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수작임에도 틀림없다. 던칸 존스 감독은 <소스코드>에서도 그랬듯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참 잘 만든다. 그런데 인기가 없어 어쩌누...


Ps.

1. 영화에 '사랑'이란 한글이 종종 등장하는 이유는 던칸 존스 감독이 박찬욱 감독의 열렬한 팬이라 그럼.

2. 던칸 존스는 가수 겸 영화 배우인 데이비드 보위(David Robert Hayward Jones)의 아들임.

3. 우주에서 화려한 액션 활극을 기대했다면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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