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영화는 무지한 상태로 봐야 한다. 난 <익스토션, Extortion>이 이런 영화인 줄 애초에 몰랐었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 누군가에게 소중한 뭔가를 빼앗겠다는 추측은 했는데, 이정도로 섬뜩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더욱이 쪼~끔 알려진 대니 글로버를 제외하곤 유명한 배우 하나 없이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다니... 아니, 조금 더 써서 소말리아에서 납치당한 선장의 이야기를 다룬 <캡틴 필립스>에서 해적 '무세' 역할을 했던 '바크하드 압디'도 보면 기억이 날 듯...
<익스토션>의 줄거리는 매우 단출하다. 의사인 캐빈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캐리비언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다. 한가로운 리조트 해변에 정박한 보트를 $200달러에 빌려 가족과 망망대해를 질주하다 무인도를 발견하고 정박한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즐거운 한낮을 보내고 돌아가려는데 보트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물도, 식량도 없는 무인도에 조난당하고 만다. 지나가는 배에 손을 흔들어 보고, 소리를 질러 보아도 망망대해에선 소용이 없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 정신을 잃었는데, 다행히 지나던 어부가 발견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러나 고마움도 잠시, 어부는 아내와 아이를 내버려두고 캐빈만 구출한다. 그리고 말한다.
가족들이 있는 섬 위치는 나만 알아. 네 가족을 살리고 싶다면 현금 백만 달러를 송금해.
이럴 줄 알았으면 여행 출발 전, 옆집 할아버지가 잔디깎이 모터 고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을 때 배우고 올 걸 그랬다. 그러나 후회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캐빈은 그들이 원하는 데로 가진 돈을 모두 송금했지만, 경찰의 추적이 두려운 어부는 캐빈을 배에 가두고 수장시키려 한다. 가까스로 살아난 캐빈은 이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만, 경찰은 오히려 캐빈이 의도적으로 가족을 살해하고 섬에 버리고 왔다고 의심한다. 문제는 물도 식량도 없이 버티고 있는 가족을 하루 안에 찾아야 한다는 것과, 더 큰 문제는 캐리비언의 천 개의 무인도 중에 어디에 가족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 캐빈은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스포 생략)
영화 <익스토션>은 조난, 범죄, 액션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었다. 단순한 구조지만 이야기는 처음부터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데, 영화 바닥에 최근에 뛰어든 감독이라 그런지 내 예측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서사 구조 또한 신선하다. 선악의 구분도 모호하고 선한 목적을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있는 건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이 영화가 나아게 던져준 가장 큰 교훈은 '집밖과 모르는 사람은 위험해' 그리고 '싼 게 비지떡'.
<익스토션>은 극장엔 걸린 적 없고 VOD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필모 또한 거의 없는 초보 감독 필 볼켄의 흡입력 있는 연출력과 밀도 높은 긴장감은 인상적이다.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될 거라고 언론에 나오던데 한국판 익스토션은 어떤 모습일 지 기대된다. 유명 배우 하나 없는 영화라 흥행엔 실패했지만, 이름 있는 배우가 출연한다면 박스오피스 상위 등극은 문제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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