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을 일본에 팔믄 이거 애국아이가!
마약도 일본으로 수출하면 '애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자유와 독재의 이념 대립이 극에 달했던 엄혹한 시절에 이두삼(송강호)은 본업인 금 세공업을 때려치우고 밀수업을 거쳐 마약 밀매 사업에 뛰어든다. 그리고 마약 제조 기술까지 습득하고, 권력과 연줄을 닿게 해 줄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를 만나면서 이두삼은 'Made in Korea'란 브랜드를 달고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한국과 일본의 마약 시장을 단숨에 장악해 버렸다.
세상이야 어찌 되든 나만 잘 살면 되던 야만의 시대. 밥 세끼 꼬박꼬박 먹고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때. <마약왕>은 마약 세계에서 왕이 되었다가 몰락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0년 실제 부산 민락동에서 있었던 마약왕 총격 사건을 모티브로 우민호 감독이 재가공한 작품인데, 영화 속에는 몰락하는 독재시대와 그 권력의 동아줄에 매달린 약쟁이들의 흥망성쇠를 조금 거칠게 담고 있다.
<내부자들> 이후 믿고 보는 감독으로 각인된 우민호 감독이 새 영화를 내놓았길래 첫날 득달같이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마약까지 수출해서 먹고살아야 하던 우중충한 시대의 부정부패한 관료들, 돈은 아무리 쳐먹어도 냄새가 안 난다는 추잡한 상류층의 민낯, 거기에 편승해 한탕 쳐서 신분 상승하려는 물질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꼬고 있다. 근데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서사 구조는 단조로운데다 매끄럽지 않으며, 감독은 극 중 인물들을 영리하게 사용하지도 않았다. '장르=송강호'로 보일 정도로 거의 원맨쇼에 가깝다.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야쿠자 조성강 역 '조우진'
이 나라는 내가 다 먹여 살렸다 아이가
하지만 송강호의 악역으로의 연기 변신은 놀랍다. 연기 맛있게 잘하는 배우인 건 애초에 알았다만, 가족 알뜰히 챙기는 가장에서 마약에 찌들어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총질해대는 그의 광기 어린 연기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허술한 서사구조를 결말까지 어떤 힘으로 끌고 갈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송강호는 우민호 감독의 마지막 미장센을 완성해줬다.
음악도 열 일 했다. 1970년대 가요, 팝,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이 나오는데, 콧노래가 저질스럽다며 유신정권 시절 금지곡이 된 김정미의 '바람'을 비롯해, 정훈희의 '안개', 직소의 '스카이하이', 슈베르트의 '마왕',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등 적재적소에서 부족한 서사를 살뜰히 메운다.
출연 배우도 화려하다. 송강호를 비롯해 조정석, 배두나, 김소진, 김대명, 이성민, 이희준, 조우진 등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명배우들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부족한 서사는 초반의 활력을 후반까지 매끄럽게 이어가지 못했고, 명배우들의 독특한 캐릭터는 짜임새 있게 활용되지 못했다. 심지어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던 주요 등장인물도 후반부에 어디로 갔는지 간다는 말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감독판을 보지 못해 편집 때문인지 시나리오 때문인 지 알 수는 없으나 '마약왕'을 부각하려고 다른 등장인물을 허투루 사용한 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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