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젠지에서 출발해 철학의 길을 따라 1.8km 걸어오면 그 끝에서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를 만납니다. 은각사는 무로마치시대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별장으로 지은 동산전(東山殿)을 이후 사찰로 바꾼 곳입니다. 요시마사의 할아버지는 근처에 금각사(金閣寺)를 먼저 지었는데, 그것을 본따 만든 겁니다. 금각사는 진짜 금박을 바른 킨카쿠(金閣, 금각)가 연못 위에 호젓이 앉았는데, 한간에 은각사의 은각(銀閣, 관음전) 또한 은박을 입혔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은을 입힌 흔적은 없고 개인적으로는 '금각사에 비해 작은 사찰'같은 할아버지보다 아래에 있음을 의미하는 '예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은각사 입구. 개인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사찰 정원도 좋아하지만, 일본의 사찰 정원도 몹시 아름다워 기대되네요.
위치는 구글지도에서 확인하세요. 철학의 길 북쪽 끝에서 멀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산문을 지나 만나는 은각사 입구 동백나무 울타리. 정말 멋지네요. 약간의 긴장감도 생기고... 이리저리 꺾인 길을 돌아가면 세속을 벗어나 성역으로 들어갑니다.
입구에서부터 한국의 정원과 일본의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자연을 그대로 활용해 건물을 올리고 길을 닦고 나무를 보존합니다. 반면에 일본은 완전히 인공적으로 정원을 꾸밉니다. 나무는 새로 심고 모두 사람이 깎아 정돈하고, 연못을 파고 물을 채웁니다. 간혹 뽑아버리기 아까운 멋진 나무를 만나면, 그것만 그대로 보존하는 그런 식입니다.
입장료는 어른(고등학생 이상) 500엔, 어린이(중학생 이하) 300엔이 있습니다. 입장권을 가만보니 부적이에요. 그런데 조금 놀란 점은 간단한 한자를 주변에 한국인들이 아무도 모른 다는 것. OECD 국가 중에 '실질적 문맹'이 38%로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던데, 한국어의 70%를 차지하는 중요한 한자 교육을 등한시한 정부 정책은 아쉽습니다. 우리는 '오리무중'이란 말을 '모르겠다'는 뜻으로 자주 쓰지만, 한자를 모르면 언어를 정확하고 품위있게 쓸 수가 없어요. '오리(五里)가 온통 안개에 쌓여(霧中) 방향이나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실질적 문맹이란 건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의미전달이 안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요. 예로 '은각사의 관음전은 최고의 건축물이다.'라고 말한다면, 여기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 되었다는 '최고(最古)', 가장 높다는 '최고(最高)', 또는 마지막으로 고한다는 '최고(催告)'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한자 단어를 대대적으로 한글화하는 작업을 시작하던지, 아니면 간단한 생활 한자는 꼭 배우도록 국가에서 지원해야한다는 말씀이지요.
저도 한자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위 부적은 開運招福(개운초복, 운이 열리고 복을 불러온다), 家內安全(가내안전, 집안이 편안하길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여행 이야기하다가 이상한 데로 샜네요.
은각사의 볼 거리 중 긴샤단(銀沙灘, 은사탄)이 있습니다. 하얀 은모래를 파도처럼 무늬를 넣었는데, 일본 정원의 백미라고 할 수 있죠.
은사탄 중에 가장 독특한 건 고게츠다이(向月台, 향월대)가 있어요. 모래를 쌓아 후지산을 형상화한 거라는데, 모래로 이렇게 모양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이 건축물이 은각사의 본전인 관음전(觀音殿), 일명 은각(銀閣)입니다.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요. 2층 꽃모양 창틀과 판자를 쪼개 올린 너와지붕, 그리고 주변을 두른 계자난간이 참 아름답습니다.
잘생긴 소나무 근처에는...
잘 가꾼 은사탄이 촤르르~ 펼쳐집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라 이채롭네요.
비단 거울 못이란 뜻의 금경지에도 잘생긴 소나무와 돌다리가 아기자기 아름답네요.
여긴 세월천(洗月泉). '달을 씻는 샘'이라는 뜻인데, 물에 달빛이 일렁이는 모습이 달을 씻는 모습이라 그렇게 붙여졌습니다. 그 모습이 보고 싶지만 밤엔 개방을 안해서 확인할 방법은 없네요. ㅎㅎㅎ
세월천 주변 이끼 좀 보세요. 은각사는 히가시야마(東山)의 낮은 봉우리에 자리잡아 마치 산을 정원으로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경지 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도구도(東求堂, 동구당) 불당입니다. 은각과 함께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요.
노송나무 껍질을 깎아 올린 지붕이 의젓해 보입니다.
세월천 옆으로는 언덕으로 오를 수 있는 산책로가 하나 있어요. 가는 길 온통 아름드리 나무와 이끼정원이라 굉장히 이쁜 곳이니 꼭 올라가 보세요.
언덕을 오르면 은각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교토 시내가 아련히 내려 보입니다.
교토는 물이 굉장히 맑고 풍부하기로 유명해요. 그래서 술도 맛있고 산과 정원에는 이끼가 언제나 가득하네요. 이뻐, 이뻐!
입장료 500엔 아끼려고 안 오려했건만, 안 왔으면 어쩔 뻔...
일본 여행 중에 하고많은 사찰과 정원을 다녀봤는데, 은각사는 또 다른 경험이었어요. 동산 봉우리 아래 호젓이 앉아있어, 자연이 정원이고 또 정원이 자연인 듯,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입장료 500엔 아까지 말고 꼭 구경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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