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이번 일본 여행 뽐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라와 교토 편을 읽고 여행코스 잡는데 참고를 했었는데, 오늘 가볼 가마쿠라 시대의 사찰 '지온인(知恩院, 지은원)' 또한 그렇습니다. 극대와 극소의 공존이 몹시 아릅답다고 극찬을 하시던데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마침 제가 묵고 있는 숙소 '재패닝 호텔'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부담 없이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근데 관람시간이 4시 30분까지인데, 현재시간 오후 3시 50분....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후딱 돌아야지~
지온인의 정확한 위치는 구글지도에서 확인하세요. 기온 게이샤 거리로 유명한 하나미코지가 가까이 있습니다.
지온인은 한국인 여행자는 잘 가지 않는 여행지에 속합니다. 교토에 볼거리가 너무 많아 그런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스런 곳이었어요. 오르는 길 또한 밤이면 불을 밝혀서 예뻐요.
가장 먼저 보이는 건축물은 삼문(三門). 계단 위에 있는 하얀 옷 입은 사람을 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높이 24 미터, 폭 50 미터에 기와만 7만 장이 들어간 세계에서 제일 큰 절간 삼문입니다.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삼문 좌우로는 굉장히 작은 건축물이 붙여 지었는데, 지온인 돌아다니다 보면 굉장히 큰 건물과 작은 건물이 같이 있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내부는 겨울에만 공개해서 이번엔 들어가보지 못했는데, 2층에는 석가여래상과 16나한상이 안치되어 있고, 천장은 용그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서 교토를 바라보면 기온 거리가 한눈에 샤르르 들어옵니다.
경내 지도를 보면 유 선생이 왜 극대와 극소가 공존하는 아름다움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삼문을 들어오면 정면으로 '남자의 비탈길'이란 뜻의 남판(男坂, 오토코 자카)이 보입니다. 수직 20미터에 높이 30센티미터의 돌계단 70여 개가 놓여 있어요. 여길 허벅지 땡겨가며 오르면 정상에 장중한 어영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극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에서 톰 크루즈가 계단을 뛰어 오르는 장면과 이준기와 미야자키 아오이가 주연한 <첫눈>에서 유카타를 입은 여주인공이 햇살을 받으며 내려오던 계단 또한 지온인의 남판이었습니다. 이글 보시는 분은 남판으로 꼭 오르시고요........
전 조금 완만한 '여자의 비탈길'이란 뜻의 여판(女坂, 온나 자카)로 올라갈래요. ㅎㅎㅎ 삼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 끝에 여판이 있는데 솔바람을 받으며 느긋하게 올라갈 수 있어요. 계단 끝이 왼쪽으로 꺾인 공간의 변화도 재밌습니다.
계단을 올라오면 국보 어영당이 보입니다. 이럴 줄 알았어. 여기도 몇 년 전부터 공사했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여전히, 앞으로도 쭈욱 공사 중일 거라고 하네요. 일본은 이런 공사 한번 시작하면 거의 10년씩 하거든요. 아무튼 어영당은 참배객을 한 번에 3천 명씩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큰 규모의 건물이에요. 정사각형에 직선으로 뻗은 선이 곡선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겐 별로라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굉장히 잘생겼네요. 어디 구석에 쪽문이 하나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가 있다고는 하던데 전 못 찾았어요. ㅠㅠ
어영당 안에는 조선 초기 불화 3점도 전시하고 있어요. 사실 그걸 보려고 간건데... 암튼 또한 독특한 점은 건물 안엔 부처를 모시지 않고 이 절의 주지승이었던 호넨(法然)의 어영(御影)을 모시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불교가 민간 신앙으로 깊이 파고드는데 큰 역할을 했던 스님인데, 수도승처럼 엄격한 규율을 따르지 않아도 염불만 외우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했다죠.
재밌는 건 본전인 어영당의 규모만이 아니라 지붕에 '여기가 중간인데 몰랐지?'라는 듯 알려주고 있는 두 개의 기왓장도 재밌네요.
아까 본전엔 호넨을 모시고 있다고 했는데, 불상은 다른 건축물에서 볼 수 있어요. 여기 아미다도(阿弥陀堂, 아미타당)에도 모시고 있어요.
볼 테면 기웃대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일까요....
잘 생기신 2.7미터의 아미타 여래 좌상이 평온한 얼굴로 앉아 계시네요.
여긴 호부츠덴(宝佛殿, 보불전). 2층 구조도 재밌는데 앞으로 길게 내민 처마도 독특하네요. 안에는 높이 4.8m의 아미타 여래 입상과 사천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경내가 연못도 있고 다리도 있고 일본의 사찰은 마치 정원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요.
다리 건너엔 납골당(納骨堂).
납골당 옆으로는 높은 탑이 하나 있는데,
이상하게도 지도에도 없고 안내 표지판도 없어요.
뭔가 비밀이 있는 탑 같기도 하고...
어영당 뒤편에 있는 경장(経蔵) 건물을 지나니 산으로 올라가는 끝없는 돌계단이 나옵니다. 왼쪽에 가만보니 호넨 고승의 동상이 작게 서있어요. 본전에 불상 대신 어영을 모실만큼 대단한 분인데 동상은 또 왜 이렇게 구석에 작게 해놨을까요. 유 선생이 말하던 일본의 극대와 극소의 대비되는 아름다움이 여길 두고 하는 말일까요...
여길 다 오르면 열반에 오르려나....
계단 끝에는 여러 개의 건물이 또 나옵니다. 정면은 호넨 고승의 유골을 봉안하는 묘당이고, 왼쪽 세지당(勢至堂)은 고승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염불 가르침을 전파하던 곳입니다. 들어가 볼 수는 없네요.
지온인에는 건축물 보다는 불화 구경하러 꼭 가보세요. 공사중이라 전 보질 못했지만, 한중일 세 나라의 뛰어난 그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날는 고려의 불화 관무량수경변상도, 미륵하생경변상도, 오백나한도, 그리고 조선 초기 불화는 구품 만다라」, 지장본원경변상도, 관음32응신도 등 여섯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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