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천재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 그는 단양에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어떻게 담을까 1년 동안 고민만 했다. 대체 단양에 어떤 명경이 있었길래 그의 마음을 1년이나 사로잡았을까?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1년 씩이나 화폭에 그림을 옮기지 못하고 쳐다만 본 이유는 뭘까?
1년 후, 단원은 단양 명경 세 곳을 진경산수화로 남겼다. 김홍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옥순봉, 추사 김정희가 하늘에서 내려온 그림 같다며 칭송한 사인암, 그리고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삼봉 정도전이 자신의 호로 쓸 만큼 아름다운 도담삼봉. 단원이 무엇 때문에 1년이나 고민했을까 나도 그게 궁금해서 충북 단양으로 향했다.
✔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단원화첩(보물 제782호)
삼성미술관 리움에는 단원의 그림책, 단원화첩을 소장하고 있다. 한지에 수묵 담채로 그린 세로 26.7cm, 가로 31.6cm의 책이다. 책은 김홍도가 1796년(정조 20년)에 그린 산수(山水)와 화조(花鳥) 그림 20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제1폭은 단원 특유의 실경산수화법(實景山水畵法)으로 옥순봉을 그려 넣었고, 제2폭은 우뚝 솟은 산봉우리만 도드라지게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로 사인암(舍人巖). 그리고 제3폭은 도담삼봉(島潭三峰)이다. 그는 단양에서 그린 그림 세 점을 맨 앞줄에 넣었다.
✔ 제1폭 옥순봉(玉筍峰)
김홍도필 병진년화첩 / 옥순봉도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210여년 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옥순봉도. 단원은 당시 단양팔경을 유람하면서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를 세 점 남겼다. 실경(實景)은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뜻이지만, 그의 그림은 섬세한 필선과 과감한 생략으로 사실적이면서도 관념적인 옥순봉을 남겼다.
최대한 그림과 흡사한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근처 옥순대교에서 바라보는 게 가장 좋다. 아쉽게도 옥순봉을 단원의 그림과 같은 화각에서 보려면 유람선을 타야만 한다.
배 타는 걸 싫어하는 난 옥순봉을 두 발로 걸어 올랐다. 그가 바라본 옥순봉이 명경이라면 그곳에 올라 거꾸로 단원의 자리를 바라보는 풍경 또한 몹시 아름답다.
✔ 제2폭 사인암(舍人巖)
김홍도필 병진년화첩 / 사인암도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사인암은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암벽과 선명한 격자무늬가 시선을 압도한다. 언제부터 그곳에 자리 잡았는지 정상 바위틈에서 자란 노송이 정적인 사인암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故 오주석 선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란 책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
푸른 산 붓질 없어도 천년 넘은 옛 그림이여. 맑은 물 맨 줄 없어도 만 년 우는 거문고.
푸른 산은 그대로 그림이 되고, 끊임없이 흐르는 맑은 물은 저 홀로 거문고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아무리 화사한 그림을 그려도 조물주가 만든 자연에 맞서 아름다움을 다투는 일은 부질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그림은 한낱 자연의 모방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화가였던 단원은 옥순봉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똑같이 그릴 수 없다는 절망감에 1년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사인암 앞에는 1796년의 단원처럼 화폭에 그림을 담는 화가가 여전히 많다. 절벽의 끝 몇 그루의 노송과 화폭 오른쪽 아래로 물이 흐르는 남조천을 슬쩍 그려 넣은 것까지 똑같다.
단양팔경 중 하나인 사인암 / 명승 제47호
✔ 제3폭 도담삼봉(島潭三峰)
김홍도필 병진년화첩 / 도담삼봉도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도담삼봉은 휘돌아 가는 남한강 가운데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가 독특하고 아름다워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는다.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과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등 많은 시인묵객이 도담삼봉을 배경으로 시와 그림을 남겼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이곳의 아름다움에 탄복해 자신의 호를 삼봉(三峰)으로 자호할 만큼 이곳을 사랑했다.
가운데 늠름한 남편봉(장군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둘 다 남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 우리 조상들의 유머와 재치가 엿보인다.
장군봉 자락에는 정도전이 지은 삼도정이란 육각정자가 올라있다. 훗날 퇴계 이황 선생은 삼도정에서 주옥같은 시 한수를 남겼다.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노을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푸른 절벽에 기대 놓고 잘 적에 별빛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의 발자취를 따라간 그림 여행
단양의 아름다운 풍경을 어찌 담아낼까 1년을 고민한 단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담아내어도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한데, 검은 붓으로 하얀 종이에 그려낼 그의 고민은 어떠했을까. 조물주가 만들어 낸 자연을 똑같이 담아내려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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