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와 함께한 안동 '치암고택'에서의 하루.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오늘은 <경주 독락당>에 이어 한옥에서의 하룻밤 두번째 이야기 <안동 치암고택>입니다. 이 고택은 조선 고종때 언양현감, 홍문관 교리를 지내신 치암 이만현(恥巖 李晩鉉, 1832-1911) 선생의 생가입니다. 그는 퇴계의 11대손이며 문과(文科)로 벼슬길에 올라 삼사(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관료를 역임하였으나, 은퇴 후 만년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비분강개하여 병을 얻어 안타깝게도 이듬해 세상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이만현 선생의 호 '치암(恥巖)'의 뜻은 '부끄러움의 바위'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 조선의 선비들이 나라를 망하게끔 내버려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크게 느껴 자신의 호를 치암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恥'가 부끄러워 견디지 못하는 것도 인간이고, '恥'를 당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인간입니다. 안동은 그 만큼 염치가 넘치는 선비가 많이 사는 고장이 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恥'가 있은 뒤 천한 아전계급 나부랭이들이 친일과 독재에 빌붙어 지조를 팔아 영달을 꽤하는 한국의 몹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쯧쯧쯧...

 

아무튼 이 고택은 당초 도산면 원촌리에 있었는데요, 안동댐 수몰로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안동시 안막동에 있으나 명칭는 '원촌동 치암고택'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제가 여기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사진이 내부부터 시작합니다. 자 염치가 넘치는 고택, 치암고택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찾아가는 길>

 

 

 

 

 

 

 

제가 묵었던 방은 사랑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호도재' 입니다. 도착하니 주인 어르신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네요. 밤이 늦었으니 빨리 씻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내일 새벽풍경이 기대되는데요? ^^*

 

 

 

 

 

 

호도재 방에는 작은 벽걸이TV도 있고, 방 옆으로 나있는 쪽문도 있네요. 이불은 뽀송뽀송 까칠까칠해 기분이 좋습니다. 벼개도 찌르륵 찌르륵 소리나는 거네요. 느낌이 꼭 신혼여행 다녀와서 부모님댁에서 처음 잔 날 같은 느낌인데요? ^^*

 

 

 

 

 

 

사랑채의 호도재는 2인실로 아주 작은 방이에요. 작다고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방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은 모두 있으니까요. 욕실에는 세면대, 세면용품, 수건, 헤어드라이기, 비데까지!! 그리고 좁지만 샤워도 할 수 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3개의 방은 행랑채(대문채)인데, 한방에는 노부부가 묵고 계시고, 제방 옆에는 외국인 부부가 묵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주인가구 포함해서 총 네 가족이 있군요. 밤이 깊고 몸은 천근만근 피곤한데 샤워하고 찬공기를 마시니 왠지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래도 잠을 조금은 자 둬야지 내일 또 걸어다닐 수 있으니 방문을 닫고 불을 껐습니다. 불을 껏는데 글쎄~!!!!

 

 

 

 

 

 

위 사진은 실수로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실제 눈으로 볼 때는 달빛이 세어들어오는 창호지에 반딧불이 어른거리는 장면인데, 허접한 카메라로 찍으니 문살이 비치는 달빛은 다 어디로 가고 반딧불이만 점처럼 찍혔네요. 어린시절 시골에서 반딧불이 쫒아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는데, 안동에서 다시 보니 반갑군요. 이 반딧불이 문앞에서 밤새도록 떠나질 않고 맴돌고 있었습니다. 덩달아 우리도 밤새 잠못들고 반딧불 구경하느라 눈이 초롱초롱했었죠. ^^*

 

아래 동영상은 반딧불이를 찍었는데요, 사진과 마찬가지로 달빛 비치는 문살은 온데간데 없고, 반딧불이만 아른거리네요. ㅠㅠ 컹컹컹~ 개 짓는 소리도 들리고 멋진 밤이였습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다음날 새벽...

 

평소에는 좀처럼 새벽에 잠에서 깨는 경우가 없는데 경주 독락당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새벽 일찍 눈이 떠집니다. 새벽에 우릴 깨우는 건, 새소리와 문살 사이로 비치는 엷은 빛 뿐입니다. 어젯밤에 딱 요런 장면에서 반딧불이가 보였는데 말이죠. 시커먼 사진은 참 안타깝습니다. ㅡㅡ;;

 

 

 

 

 

 

슬그머니 문을 여니 새벽 상쾌한 공기가 콧속으로 슥 들어옵니다.

이 맛에 고택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어젯밤 행랑채에 주무셨던 노부부도 깼나 봅니다. 다같이 모닝 녹차를 한잔 해 볼까요.^^*

제가 잔 호도재 앞에는 냉장고와 포트, 커피, 각종 차들이 준비되어 있네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여행이야기를 하며 시큰한 공기와 따끈한 차를 한잔 마십니다.

아직 씻지도 않아 머리는 모두다 더벅머리를 하고 있네요. ㅋㅋㅋ

 

 

 

 

 

지금은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입니다. 맑은 공기를 크게 스읍~하고 들어마십니다. 폐 깊숙한 곳까지 정말 상쾌한 아침입니다.

 

 

 

 

 

 

어제밤 컴컴해서 보지도 못했던 호도재의 모습이 이렇게 생겼군요. 청풍헌(淸風軒)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자그마한 누각모양의 사랑채는 참 앙증맞게 생겼습니다. 숙흥야매(夙興夜寐)라고 크게 써붙여놨군요. 이건 '아침에 일찍일어나고 밤에 늦게 잠든다'란 뜻이군요. 저도 밤에 늦게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으니 '숙흥야매'를 했군요. ㅎㅎㅎ

 

 

 

 

 

 

자 이제 고택의 구석구석을 둘러 볼까요?

 

 

 

 

 

 

하얀고무신을 신고 마당으로 걸어 나갑니다.

 

 

 

 

 

안동은 조선 선비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의 고장이기도합니다. 1910년 일제늑약으로 전국에서 56명의 인사들이 자결을 하셨는데, 이중 9명이 안동 출신입니다. 그들 중에 한 분이 바로 치암 이만현선생입니다. 지금 보실 집이 그분의 집입니다.

 

 

고무신을 신고 솟을대문 부터 보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대문 밖에는 별당채가 있는데 저기도 숙박이 가능합니다.

 

 

 

 

 

 

솟을대문 옆으로는 행랑채 3칸과 화장실 한칸이 붙어 있네요. 행랑채는 옛날에는 집안에서 심부름하는 하인들이 묵는 방과 창고, 마굿간 등이 있던 곳인데요, 요즘에는 신분의 격차가 없으니 이방에 묵은들 저방에 묵은들 어떻겠습니까.^^*

 

 

 

 

 

 

대문을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건물, 사랑채 전경입니다. 제가 묵은 곳은 가장 오른쪽 '호도재' 이고요, 가운데 응접실이 있고 왼쪽편에 사랑방 2칸이 있습니다. 건물의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안채 지붕보다 사랑채의 지붕이 더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사랑채의 왼쪽 지붕은 옆면이 사람 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오른쪽은 옆면이 여덟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습니다. 제가 묵은 호도재 방 앞으로 계자(난간)를 두른 좁은 마루가 독특하고 운치있네요. 

 

 

사랑채 문 위로 보이는 한자들의 뜻풀이를 한번 해 볼까요? 모두 명언들입니다. 글씨는 모두 퇴계선생의 글씨입니다. 치암고택 주인장 어르신께 직접 들은 말씀이니 믿어도 좋습니다. 한자에 약하신 분들을 위해 오른쪽 부터 왼쪽의 순서대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숙흥야매(夙興夜寐)'는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말하는 것으로 아침일찍 일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선비들이 지켜야 할 잠언을 말합니다.

'신독(愼獨)'은 '혼자 있을 때 잘하라.' 유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입니다.

'징분질욕(懲忿窒慾)'은 '성냄은 경계하고 욕심은 막는다'라는 뜻인데요, 스스로를 잘 다스리라는 말씀입니다.

'성경(誠敬)'은 '정성(精誠)을 다하여 공경(恭敬)한다'라는 뜻입니다.

 

어떻습니까? 매일 저 글을 보며 산다면 그 뜻을 흉내라도 내 볼 수 있을까요?

 

 

 

 

 

 

고택 주변은 산과 나무들로 둘러쌓여 있어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듭니다.

 

 

 

 

 

 

호도재와 사랑방 사이에는 현대식 거실 개념의 휴게공간이 있습니다. 차도 마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도할 수 있는 차실이군요. 위에 한자 뜻풀이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신독(愼獨)'이란 두 글자는 우리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혼자 있을 때 잘하라.'는 뜻은 어찌보면 가장 쉬우면서도 '안 볼때 잘 한다.'는 건 또한 한편으로는 가장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마당 한켠에는 투호놀이 기구가 있네요. 같이 숙박한 분들과 외국인 아저씨와 같이 던져봤습니다. ^^*

 

 

 

 

 

 

내기를 할껄 그랬습니다. ㅋㅋㅋ

 

 

 

 

 

 

마당 한켠에는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안에 잉어도 살고 있어요.

 

 

 

 

 

 

건물 뒷편에는 텃밭이 있군요. 텃밭으로 드나드는 문도 참 예쁘네요.

 

 

 

 

 

 

 

 

 

 

 

여기는 사랑채 왼쪽으로 있는 안채에요. 이곳에도 숙박가능한 방이 있습니다.

 

 

 

 

 

 

요란하게 꾸미지 않아도 사각형 모양으로 뚫린 하늘이 있고 앞집과 이야기하기 위해선 찾아가는 절차따윈 없어도 문 열고 '친구야' 를 부르면 되는 곳입니다.

 

 

 

 

 

 

이놈이 어젯밤에 반딧불 구경하는데 컹컹컹 짖던 그 강아지군요. 근데 넌 왜케 날씬하니? 날씬한 것들은 가라~! 뚱뚱한 것들의 시대가 오리니~!

 

안동여행 코스를 준비중이시라면 '치암고택에서의 하룻밤' 어떠십니까? 안동에 오시면 이런 고택이 아주 많습니다. 한옥에서의 하루가 가족들과 멋진 추억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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