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가장 발달한 도시지만 국내 어디보다도 훨씬 오래된 건물과 문화유산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조선의 500년 수도였기 때문에 왕들이 머물던 궁궐과 이궁들, 그리고 사대부들이 모여살던 마을, 각종 조선의 관공서 등이 보존되고 있죠. 앞으로 차근차근 하나 하나씩 제가 모두 올려보도록 하고요, 오늘은 그 첫번째,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창덕궁'으로 놀러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 창덕궁은 1405년(태종5년)에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어졌어요. '이궁'이란 임금이 궁궐 밖에서 머무는 집을 말하는데요, 별궁, 행궁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죠. 이곳은 창경궁과 나란히 담벼락을 맞대고 붙어 있는데요,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궐'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늘 가 볼 창덕궁은 별궁이지만 조선의 궁궐 중에서는 임금이 가장 오래 거처했던 곳이랍니다. 들어가 볼께요.
돈화문(보물383호) 입구에서 예쁜 아이가 사진에 담고 있군요. 그럼 표를 끊고 창덕궁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3천원이고요, 만18세 이하 미성년자와 65세 이상 노인은 무료입니다. 돈화문은 1412년(태종)에 지어졌는데요, 임진왜란 때 죄다 불타고 1609년(광해군)때 다시 지어졌습니다.
마당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도 옷을 갈아입고 있군요. 알록달록 참 예쁜 정원입니다. 오늘은 안타깝게도 창덕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후원(비원)은 가질 못하겠습니다. 후원은 입장료가 추가로 5천원이 들어가는데요, 인터넷에서 미리 예약하고 시간에 맞춰서 안내자와 같이 다녀야 하고요, 한 번에 딱 100명만 입장 가능한 제약이 있습니다.
돈화문을 들어서면 1411년 축조 되었다는 금천교가 보입니다.
금천교를 건너면 처음 만나는 곳은 '호위청'입니다. 호위청은 인조반정 이후 집권한 서인들이 왕을 호위할 명목으로 창설한 부대인데요, 자신들의 군사적 세력기반을 유지할 목적도 다분히있었습니다. 호위청엔 대장 1명과 별장 3명, 그리고 군관 350명이 있었다고 하네요.
여기는 왕의 즉위식이나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들의 접견 등 국가의 중대행사가 열리는 궁궐의 대표적인 공간 '인정전' 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군요.
그 옛날 품계석 옆에는 신하들이 도열해 있었겠죠. 품계석은 인정전 앞마당에 두 줄로 늘어서 있는데요, 동쪽에는 문관, 서쪽에는 무관이 중앙을 향해 도열해 있었답니다.
이것은 각종 퀴즈프로에 가끔 나오는 '드므'랍니다.
'드므'는 큰 그릇인데 궁궐에 불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조선의 건축술은 현대의 기술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장인정신이 투철했던가요. 건물 기가막히지 않습니까? 벽돌 한장, 나무 한토막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살짝 치켜오른 처마 아래에 칠해져 있는 단청(丹靑)이 얼마나 이쁜지 한참을 쳐다봤습니다.
인정전 안의 청장도 아주 아릅답습니다. 맘 같아선 누워서 보고 싶군요.
조카를 데리고 다닌다고 오늘 동선이 마구 꼬이고 있어요. ㅋㅋㅋ 여긴 '희정당'이란 곳인데 원래는 왕의 침실이 딸린 편전이였는데, 훗날 어전회의실로 사용했습니다. 1917년 대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어 지금 있는 건물은 1920년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서 지은 것이랍니다.
'요휘문'이라....막혀 있었는데 아마도 창경궁이나 후원으로 가는 문이지 않을까요?
대조전 입구에 도착하니, 'ㄷ'자 모양의 독특한 마당과 행각이 나옵니다. 왼쪽은 왕의 침소 대조전이구요 오른쪽은 방금 보았던 희정당입니다. 'ㄷ'자를 빙 둘러서 계자(난간)를 둘러놨는데요, 흙을 밟지않고 침소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군요.
계자는 요래 생겼어요. 위에는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지붕을 덮어놨군요. 왕 될만하군요. ㅎㅎㅎ
대조전은 가운데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임금침실, 서쪽은 왕비의 침실입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조전에는 용마루가 없는데요, 원래 왕이자는 곳에는 용마루가 없습니다. 왕도 용이기 때문에 한 곳에 용이 두마리가 있을 수는 없다는 의미랍니다. 이곳 대조전도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1917년 대화재로 불에타서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다 지었습니다.
여춘문 기와 위로 단풍이 참 아름답네요.
여춘이라...곱디고운 봄의 문이란 뜻인가요? 멋지네요.
후원으로 나 있는 문들은 모두 막혀있군요. ㅋㅋㅋ
여기는 대조전 뒤편에 있는 '경훈각'입니다. 대도전과는 건물 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세조 7년(1461)에 전각 명칭을 바꿀 때 2층을 징광루, 1층을 광세전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그것으로 미뤄보아 원래는 2층 건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 또한 대화재로 소실되고 새로 지어졌습니다. 경훈각의 대청 벽에는 1920년에 제작한 <조일선관도>와 <삼선관파도>가 걸려 있답니다.
다시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왼쪽에 높은 담벼락이 보이네요. 저 담 넘어에는 창경궁입니다. 엄연히 다른 궁이긴 하지만 이렇게 담을 맞대고 있는데 들어갈 수 없다는게 좀 아쉽군요. 게다가 문까지 나 있는데 잠궈놓구요. ㅎㅎㅎ 창덕궁에는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문이 많이 있는데요, 창경궁 측과의 협의가 되지않아 아직 개방을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여기는 '낙선재' 입구에요. 낙선재는 석복헌, 수강재 건물과 하나의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낙선재라고 부릅니다. '일곽(一郭)'은 하나의 담장으로 둘러친 지역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마지막 황후인 윤황후(순정효황후)가 최근 1966년까지 사셨고요,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등이 1963년부터 1989년도 최근까지 거처하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일반에 공개되어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이 건물을 자세히 보세요. 혹시 궁궐내의 다른 건물들과 다른 점이 보이십니까? 찾으셨습니까? 맞아요! 낙선재의 건물들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습니다. 원래 이곳은 상중(喪中)에 있는 왕후들이 소복(素服) 차림으로 기거하던 곳이여서, 화려함의 상징인 단청을 칠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쪽문으로 사뿐사뿐 다녔을 옛 여인네들을 상상해 봅니다.
이곳이 아까 언급했었던 '석복헌'입니다. 헌종이 후손을 보기위해 맞아들였던 후궁 '경빈 김씨(慶嬪金氏)를 위해 마련해준 처소랍니다. 이곳이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1966년 돌아가실 때까지 거처했던 곳입니다.
잠겨진 문을 열먼 비밀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던 정자.
주위를 물리치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을 임금과 황후를 상상해 봅니다.
해가 지고 있군요. 집에 가야겟는데요. ㅋㅋㅋ
오늘은 지하철 타고 왔어요. 그나저나 집에는 언제가나...ㅋㅋㅋ
서울여행은 왠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복잡해서 그게 정신건강에 좋아요!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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