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바이러스 보균자, 즉 에이즈환자에 대한 인식이 어떠십니까? 최근에 들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이 병이 바이러스로 기인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된 1980년대에는 악마의 불치병 또는 동성애자에게 신이 내린 저주 등으로 불리기도 했을 정도로 사람들의 극심한 기피대상 1호였습니다. 최근에 통계에 따르면 에이즈환자 또한 약물을 계속해서 투여 받으면 거의 인류 평균수명에 근접하게 살 수 있다고 하니 이제 불치병이라기 보다 당뇨병처럼 평생 관리 받아야 하는 병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난 3월에 개봉한 장 마크 발레 감독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에이즈 환자의 미FDA라는 제도권의 방해에도 생존을 향한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이 과정에서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주인공 론을 통해 깨부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 내려가 볼까요?
생존과 준법, 무엇이 우선인가?
1985년 미국 댈러스에 사는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마약과 여자, 그리고 로데오를 좋아하는 전기기술자인데 작업도중 감전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이날 그는 자신이 HIV에 감염된 에이즈환자임을 알게 되고 병원으로부터 30일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됩니다. 에이즈라는 병은 자신이 극도로 싫어하는 게이들이나 걸리는 병쯤으로 취급하던 론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부정하지만, 몸은 점점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죽음의 공포를 느낀 그는 치료약을 구하기 위해 나섭니다.
어느 날, FDA로부터 허가를 받은 유일한 치료제인 AZT란 약을 뒷거래로 구해서 먹어보지만 그의 병은 점점 악화되기만 합니다. 그는 살기 위해 도서관에서 에이즈에 관한 자료를 모두 찾아보고 약효가 있는 약물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미국 식약청의 허가가 난 약이 아니라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 약이 멕시코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당장 달려갑니다. 그리고 30일 밖에 살 수 없다던 그는 약을 복용하자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약을 미국으로 들여와 에이즈환자에게 팔려는 사업을 구상합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은 1987년 이렇게 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무엇이 올바른 일일까요? 난치병, 아니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호전시키기 위해 정부에서 허가하지 않은(약효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불법일까요? 아니면 자유일까요? 이 문제는 한국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문제인데요, 절박한 환자의 마음과 전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입장이 언제나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죠. 비록 그 약물이 효과가 탁월하다 할 지라도 임상실험이 완료되지 않았으면 약을 구하지 못 한 환자는 그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요? 아니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약을 먹고 살아야 할까요? 영화에서는 FDA와 제약회사가 짜고 효과가 거의 없거나 부작용이 심한 AZT라는 에이즈약을 허가해주는 과정과 멕시코에서 들여 온 불법 약을 한 달에 400달러라는 회비를 받고 파는 론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며 무엇이 정의일까 라고 되려 관객에게 묻습니다.
영화 속의 론은 동성애자와 에이즈환자를 경멸하고 그들에게 약을 팔아 돈만 벌려고 하는 추잡한 백인으로 등장하지만, 오히려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냉대와 비난에 화나고 놀라는 모습입니다만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 그가 변화하는 계기는 게이 레이언(자레드 레토)과 에이즈 치료제를 팔기 위해 동업을 하면서부터 입니다. 처음에는 레이언도 벌레보듯하며 무시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받아왔을 냉대와 아픔에 대해 이해하고 연민을 가지게 됩니다.
그가 동성애자들과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에이즈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는 순간, 그는 이제 돈을 벌기 위해 약을 팔지 않고 그들을 진심으로 도울 방법을 찾습니다. 1987년 당시 미국에는 HIV 보균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치료제를 구하기 위한 '바이어스 클럽'이 여덟 곳이 있었습니다. 그 중 댈러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론은 돈만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제약회사의 약인 AZT 이외의 약물을 불법화하고 있는 FDA를 상대로 '효과가 있는' 약을 환자들은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그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성장합니다.
연기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끝나고 게이 레이언 역할을 맡은 자레드 레토가 머릿속에서 한동안 떠나질 않았습니다. 최근 본 영화중에서는 메소드 연기의 가히 최고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챕터 27>이란 영화에서 몸무게 30kg을 찌우고 존 레넌을 살해한 뚱뚱한 범인으로 나오더니만, 이번 영화에서는 평소 몸무게에서 18kg을 빼고 게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실제 동성애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은 압도적이었고요, 이 영화를 살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놀라운 메소드 연기를 펼쳤습니다. 요즘 마녀사냥에 출연하는 영화평론가 허지웅씨는 "마치 내새끼 같이 자랑스럽다. 세상의 모든 상을 끌어모아 그에게 주고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100% 공감합니다. 자레드 레토는 얼마 전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기존의 영화들에서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던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이즈 환자의 연기를 위해 몸무게를 20kg 감량했다고 해서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백인 쓰레기 역할과 성찰을 통해 성장하는 한 남자를 매우 훌륭히 잘 소화해 냈습니다. 그도 역시 8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이 둘은 제7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나란히 수상했는데요, 두 남자의 수상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제가 볼 때도 그럴 만 했으니까요. 저평가 되어있던 매튜 맥커너히의 재발견과 자레드 레토의 발견은 이 영화 최고의 수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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