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는 공포영화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들어서 공포영화 개봉이 전세계적으로 많이 줄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본 공포영화가 길예모로 델 토로가 제작한 <마마>와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이 있는데요, 이 두 편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영화가 없을 정도니까요. 공포영화 하면 딱 떠오르는 <링>, <식스센스>, <쏘우>같은 영화들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렸을 정도니 그 동안 마땅히 관객을 사로잡은 공포영화가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작사 입장에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요, 심지어 100만 관객만 들어도 초대박이 났다며 언론에서 난리부르스를 치기까지 하죠. 오늘 이야기할 영화 <컨저링>은 국내에서 170만명이 들어와서 당시 대박났다며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했었습니다. 이제 공포라는 장르는 매니아들만의 전유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건 걸까요? 이 영화는 됨됨이가 어떻게 되는지 내려가 보겠습니다.
100%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컨저링>은 엑소시즘을 주제로 한 오컬트영화(Occult movie)입니다. 오컬트영화란 공포의 한 장르인데 공포의 매개체로 초현실적인 그 무언가가 등장하는 영화를 말합니다. 유령이나, 귀신이나 뭐 이런 것들을 말입니다. 보통의 이런 영화들은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던 중 우연한 계기로 귀신이 몸에 들어오거나 귀신이 깃든 집으로 이사를 가서 거기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상들을 보여주며, 결국 신부나 퇴마사로 인해 악마를 물리치고 가족을 지키는 이야기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이 영화 또한 이런 구태한 클리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하지만 <컨저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무서운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말도 못하게 공포스럽습니다.
영화 <쏘우>와 <인시디어스> 등으로 우리의 두개골에 각인된 말레이시아 출신의 제임스 완 감독은 관객들이 공포를 어느 시점에서 느끼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래요. 1971년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로저 페론(론 리빙스턴)은 와이프와 다섯 명의 아이를 데리고 숲속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 집에서 숨겨진 지하실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과거 그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집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가족 이외에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편, 로레인(베라 파미가)은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의 남편 에드(페트릭 윌슨)는 귀신을 쫒는 엑소시스트 인데, 페론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섭니다. 외딴 집에 존재하는 귀신들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영화가 세간에 무섭다고 소문이 나긴 했지만, (피가 낭자하는 스플래터 고어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이 영화에는 피 흘리거나 무서운 모습을 한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전에 없던 신선함에 있습니다. 초반부터 분위기 만으로 차곡 차곡 공포의 씨앗을 뿌린 다음, 그 공포가 자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더 큰 공포를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영리한 연출을 하고 있어요. 뜬금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갑자기 뭔가가 튀어 나온다거나, 막무가내 큰소리로 관객을 놀래키지 않고, 분위기만으로 공포를 자아내고 있지만 더 없이 공포스럽습니다. 그리고 오컬트 영화의 약점인 스토리의 구성도 제법 탄탄하기 때문에 매니아층이 아닌 대중들에게도 사랑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이 실화라니 이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이 있을까요?
더 재밌는 것은 피 튀기는 하드고어 스플래셔 영화로 이름을 날린 제임스 완 감독이 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오컬트 영화로 성공했다는 거죠. 그는 공포라는 장르에서는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른 감독인 것 같습니다. 기발하고, 새롭고, 억지스럽게 무서움을 강요하지 않는 방법으로 놀래키는 <컨저링>이란 영화는 최근 10년 이내 나온 영화 중에서는 단연 공포스럽고 잘 만들어진 영화라 생각합니다.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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