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영화의 걸작이라 불리는 '저수지의 개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주연이자 감독으로서의 데뷔작입니다. 이 영화는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주제로 이후 여러 영화들에 영감을 줬었죠. 저 또한 매우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의 흐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마돈나의 'Like a Virgin'과 미국 팁 문화에 대한 오프닝 잡담 대사들, 잔혹한 폭력 묘사와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 등 타란티노만의 스타일을 세상에 알린 1992년 작품입니다.
그런데 영화 제목이 왜 저 꼴을 하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제목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감독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맨해튼비치의 한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영화광이었습니다. 어느 날, 단골손님에게 〈Au Revoir Les Enfants(굿바이 칠드런)〉라는 영화를 추천했는데, 그 손님이 잘못 알아듣고 "저수지’(Reservoir) 영화 따윈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 것에서 'Reservoir'를 착안하고, 그리고 평소에 좋아했던 영화 〈어둠의 표적(Straw Dogs)〉의 'Dogs'를 합쳐 '저수지의 개들'이란 제목을 쓰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타란티노 감독의 이 말은 언론에 정중하게 발표하는 용도인 것 같습니다. 언뜻 별 의미 없는 단어 같지만 은어나 속어, 인터넷 유행어를 다루는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에서는 'Reservoir Dogs'가 속어로 '경찰의 끄나풀'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영화 속의 경찰 끄나풀을 뜻하는 것 같군요. 이건 믿거나 말거나... ^^*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8명의 떼 강도들은 보석상에서 보석을 훔치려 계획하고 강도행각을 실행하는 순간 경찰이 들이닥쳐 브라운(쿠엔틴 타란티노)은 죽고 블루(에드워드 번커)는 행방불명, 그리고 오렌지(팀 로스)는 배에 총을 맞고 화이트(하비 케이틀)의 도움으로 도망쳐 나옵니다. 도망쳐 나온 오렌지와 화이트는 은신장소에서 보석상에서 훔친 보석을 숨기고 돌아온 핑크(스티브 부세미)를 만나고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내부 스파이가 있다고 의심하게 됩니다.
잠시 후, 은신장소로 블론드(마이클 메드슨)가 인질로 경찰을 끌고 와서는 잔인하게 고문해서 스파이를 찾으려 하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합니다. 잠시 뒤, 숨겨둔 보석을 찾아 돌아 온 이번 강도행각의 주동자인 에디(크리스 펜)와 조(로렌스 티에니)가 창고에 도착합니다. 조는 총맞은 오렌지가 경찰의 끄나풀이라며 의심하지만 화이트는 그럴리 없다며 맞섭니다. 이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스포일러는 직접 확인하세요.)
이 영화에는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그만의 스타일이 모두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그의 스타일이라 함은 잔혹하고 강렬하게 묘사된 폭력, 주절주절 잡담으로 보이는 욕설과 비속어 대사들, 그리고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편집기법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야기 전개방식입니다. 보석상을 털기 전과 털고 난 직후의 상황을 보여주고, 곧바로 스토리는 언급하지 않았던 각각 인물들이 어떻게 강도 떼(?)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건의 진실은 어떻게 되는가를 교차편집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영화 오프닝에 7분을 넘게 할애한 주절거리는 강도들의 잡담인데요, 대화의 요는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을 두고 헤픈 여자가 그것(?)이 어마어마한 남자를 만나서 마치 처녀가 된 느낌의 고통을 겪어서 생기게 된 제목이라는 이야기와, 미국에서 팁 문화가 꼭 필요하냐에 대한 토론 등은 영화의 흐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대화에서 감독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먼저, 여덟 명의 강도 캐릭터들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고요, 그리고 이들의 대략적인 관계까지 잡담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등장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얼굴을 익히게 하는 효과도 있다 하겠습니다.
(여기부터 스포 조금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저수지의 개들>은 오마주인지 표절인지에 대한 논란이 하나 있습니다. 임영동 감독의 홍콩 누아르인 1988년 작품 <용호풍운>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비밀경찰인 주윤발이 보석상 강도단에 잡입했고, 이수현은 보석강도인데 주윤발과의 우정이 돈독합니다. 이는 오렌지와 화이트의 관계와 똑 같다고 할 수 있고요,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 에디와 조, 그리고 오렌지와 화이트가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은 <용호풍문>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이에 대해 타란티노 감독은 표절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똑같은 건 똑같은 거니까요.
아무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는 버릴 장면이 하나 없는 알찬 영화랍니다.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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