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괜찮은 전쟁영화가 한 편이 나왔습니다. <퓨리, Fury>는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샤이아 라보프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데요, 개인적으로는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로 16년 만에 가장 현실감 넘치는 전장의 표현과 병사들의 심리묘사가 뛰어난 전쟁영화를 만난 것 같습니다. 치열한 전차부대 전투 장면과 잔인한 장면들로 (물론 모자이크 처리되어 15세 관람가이지만) 전세계의 남성 관객들이 쌍수를 들고 반길만한 영화인데요, 하지만 시종일관 공포스러운 나머지 영화가 끝나고 나가는 여성관객들은 런닝타임 134분간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북미에서도 여성관객이 적게 들어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대단한 물건이 한 편 개봉했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때는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 전차장으로 M4 셔먼탱크를 지휘하는 '워대디(브래드 피트 분)'는 아프리카부터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독일군 티거탱크와 싸우고 있습니다. 스포없는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뛰어난 탱크 전술능력으로 끝까지 살아남은 그에게 행정병 출신 신병 '노먼(로건 레먼 분)'이 충원되고, 바이블(샤이아 라보프 분)과 고르도(마이클 페나 분), 그리고 쿤 애스(존 번탈 분)과 함께 이들 다섯 명은 독일군과 맞닿은 최전방에서 적들의 진격을 막으라는 임무가 하달된 탱크부대에 배치됩니다. 하지만, 전선으로 가는 도중 적들과의 교전으로 다른 탱크들은 모두 전멸하고 이들이 타고 가는 '퓨리'란 이름의 셔먼탱크만 살아 남아 수 백 명의 독일군과 맞서야 합니다. 이들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요?
전쟁영화는 보통 두 가지 관점에서 관객들의 평가를 많이 받게 됩니다. 하나는 전투장면과 다른 하나는 병사들의 심리묘사입니다. 영화 퓨리는 화려한 전투장면도 장착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전투에 참가한 부대원들의 심리묘사에 더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흔히 영화로만 봐 왔던 전쟁이란 막연한 상황을 더 스릴있고 박진감 넘치길 바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무덤덤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목숨이 걸려있는 치열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다 죽이면 게임이 클리어 되는 재미있는 '오락' 정도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전쟁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 제가 가끔 말하곤 하는데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영화이지만 전쟁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독일군 병사를 그저 죽여야 하는 게임 속의 몬스터쯤으로 취급하지 않고, 적군의 병사든 아군의 병사든 모두 같은 크기의 고통을 받는 '인간'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에이어(David Ayer) 감독의 <퓨리>는 먼발치에서 남의 집 불구경하는 전쟁이 아닌, 실제 그 병사들 틈바구니로 들어간 영화입니다. 전쟁이란 괴물이 병사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 그 참상을 잘 말해주고 있어요.
세계평화를 이룩하겠다며 오지랖 떠는 영웅적인 '미국'병사가 아니라, 지옥보다 더한 지긋지긋한 전쟁터에서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게 더 나아 보이는 '인간'병사의 선택이 눈물겹습니다. 한 병사가 말합니다.
"우리가 죽인 독일군 병사는 천국으로 갈까요?"
전차장 워 대디는 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신병 노먼에게 전쟁이란 지옥을 가르치며 진정한 군인으로 변모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적군 또한 나와 같은 얄궂은 운명에 처해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유일한 덕목인 전쟁터에서 병사가 더 인간다워지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요?
"이상(理想)은 평화적지만, 역사는 폭력적이지"
시종일관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의 긴박한 운명은 런닝타임 내내 관객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전쟁의 현실을 무게감있고 한층 더 깊이를 더한 데이비드 에이어(David Ayer) 감독의 솜씨 좋은 연출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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