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브로큰(Unbroken)'이 오히려 일본을 미화하고 있는 이유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할리우드 A급 배우들이 감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중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는 작품성이 꽤 우수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언브로큰, Unbroken>은 졸리의 작품인데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 그냥 '실화'라고 첫 장면에 못을 박고 시작합니다. 일본의 만행에 관한 이야기지만 각색하거나 살을 덧붙지 않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진짜 사실만을 이야기했단 거죠. 일본 극우세력들은 사실이 왜곡된 점이 많다며 반발했지만, 제가 볼 땐 오히려 미화되었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왜냐고요? 일본의 만행은 이 영화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잔혹했으니까요. 영화에 나오는 내용들만으로 '잔혹'이란 표현을 쓰기엔 넘치는 낭비란 생각이 들 정도로...

1998년 나가노올림픽의 성화 봉송 주자로 뛴 '루이 잠페리니(잭 오코넬 분)'를 기억하십니까? 당시 그의 나이 81세였습니다. 어린 시절, 이탈리아인인 그는 미국 이민사회에서 인종차별과 왕따를 당하며 힘들게 자라났는데, 달리기에 소질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9세였던 그는 당당히 미국대표를 거머쥐고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는데요, 그의 최종목표는 다음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에 참가해서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공군으로 입대하는데요, 어느 날 작전 수행 중에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하고 맙니다. 수평선 밖에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그는 47일간의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끝에 일본군에 의해 구조, 아니 생포됩니다.

 

하지만, 살았다는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더 끔찍한 고통이 시작됩니다. 졸지에 포로가 된 그는 온갖 강제노동과 폭력에 시달리는데요, 바다에서 상어들과 사투하며 보낸 47일보다 더 힘든 하루하루가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더 좋으련만 삶에 대한 본능적인 굶주림에 그것 또한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기까지 지옥 같은 포로수용소에서 850일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풀려난 루이는 결국 81세의 나이로 꿈에 그리던 일본에서 개최된 나가노올림픽에 선수가 아닌 성화봉송 주자로 뛰게 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말살한 일제의 만행을 온 몸으로 견뎌 낸 그이기 때문에 그 순간은 더 빛났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루이가 포로수용소로 끌려 가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무덤덤하게 느껴집니다. 수용소장 와타나베(미야비 분)는 포로들을 감정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대하는데요, 고문과 구타는 일상 생활이고 무거운 나무를 머리 위로 들게 한 뒤, 떨어뜨리면 사살하겠다는 악랄한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본이란 나라는 이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나라입니다. 루이가 겪었던 일은 안타깝고 끔찍한 일이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을 이정도로 부드럽게(?) 표현하는 건 오히려 그들을 미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의 폭력 강도와 졸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걸로 봐서는 우리와 그녀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의 온도 차이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는 이유는 언브로큰의 원작인 루이의 전기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로라 힐렌브랜드입니다. 아마존닷컴에서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전기'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한국인 성노예(위안부란 말조차 그들을 미화하는 것 같아서 이런 표현을 쓰겠습니다.)가 있었다는 증언도 있고요, 일본군 장교가 미군 포로들에게 "우리 군대에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데리고 온 여자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원작에는 사이판 옆 티니안 섬에 한국인 5천명을 끌고 와 노역시켰다는 증언도 있고요, 미군이 공격해오자 한국인들이 미군의 편에 드는 것을 두려워한 일본군이 이들을 전원 살해했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건 한국인들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영화에는 이러한 실제 사건들은 빠져있고, 얇은 막대기 따위로 포로를 때리는 와타나베와 그 작대기로 얻어 맞고 있는 루이만을 클로우즈업 하고 있는데, 졸리가 보여주려 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의 용서 같은 '인본주의'일진 모르겠으나, 그들에게 돌아가신 한국 민간인인 53만명을 부모로 둔 우리는, 지금도 뉘우치지 않는 그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란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자 일본의 전범용의자인 '기시 노부스케'를 풀어줍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데요, 중국인과 한국인 수십만 명을 강제노역에 동원하고, 난징대학살 등 학살도 서슴지 않았던 던 그는 1957년 일본 총리가 됩니다. 기시 노부스케를 자신의 정치적 롤모델이라고 떠드는 일본 현정권 수장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영화를 개봉하는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겠지만 차라리 건드리질 말든지, 이러한 알맹이들은 쏙 빼고 개봉하니 일본도 한국도 반발하고 있는거죠. 그녀가 추구했던 영화의 포커스는 '인본주의'임을 생각하면 한편 수긍이 안가는 건 아닙니다만, 한국인으로서 이 영화는 칭찬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 영화의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영화보다는 차라리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으로 쓴 '책'으로 보시길 추천합니다. 한국에도 번역서로 출간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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