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프고 우아한 거짓말! 영화 '베스트 오퍼'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영화의 제목 '베스트 오퍼(The Best Offer)'는 경매에서 최고의 가격을 제시한 사람을 뜻합니다. 제목처럼 이 영화는 경매에 관련된 사람들의 속고 속이는 흥미진진한 사건들 속에서 우리들의 인생을 한 번쯤 반추해볼 수 있는 잘 만든 스릴러영화라 하겠습니다. 영리한 관객들이라면 중반 이후 무언가 의심의 눈초리로 보셨을 법도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는 '반전'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도는 거짓말 같은 인생에 대한 반추이기 때문입니다. 모작된 그림처럼 우리네 인생 또한 가면을 쓴 '모작'일 수 있다는 동질감이 관전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 주의! -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시 분)은 예술품 감정과 경매에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예술품 경매회사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평생 은둔자로서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인과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 초상화 외에는 장갑을 벗고 만지지 않을 정도로 결벽증도 심합니다. 심지어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도 장갑을 끼고 먹고 와인 잔 또한 버질 올드먼의 이니셜 V.O가 새겨진 전용 잔만을 사용할 정돕니다. 63살이 되기까지 평생 여자를 사귀어 본 적 없는 그는 자신의 집 비밀창고 벽면을 가득 채운 라파엘, 티치아노, 벨라스케스 등이 그린 정지된 프레임 속 여인들의 초상화를 감상하고 만지는 게 유일한 낙이자 이성과의 접촉입니다. 올드먼이 이렇게 초상화를 많이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감정을 거짓으로 했기 때문인데, 마음에 드는 여인 초상화가 경매에 나오면 진품일지라도 모작이라 감정하여 8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작품을 고작 9만 파운드에 낙찰을 받는 등의 수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를 잃고 혼자 저택에 사는 클레어(실비아 획스 분)란 여인이 부모님의 유품을 모두 감정하고 경매에 올려달란 부탁을 받습니다. 27살인 그녀는 대인기피증에 광장공포증까지 있어 12년 동안 집밖을 나온 적이 없다고 하는데, 올드먼은 그녀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며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철두철미하고 괴팍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인생이 조금씩 혼란스럽고 뒤틀리고 빈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클레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인생의 마지막을 그녀와 사랑하며 보내려고 마음 먹은 버질은 그녀에게 자신이 평생 아끼고 간직해 온 비밀창고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은퇴 경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초상화들이 모두 사라진 텅 빈 창고를 발견합니다. 올드먼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신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알아줘요."라던 클레어의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프라하의 "Night and Day"레스토랑에서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립니다.

버질 올드먼 주변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마음을 빼앗은 클레어, 보캉송 로봇을 복원하는 기술자이자 친구인 로버트(짐 스터게스 분), 그리고 버질에게 화가로서 인정받진 못했지만 그의 경매 사기를 도와주는 '빌리(도널드 서덜랜드 분)'. 모두 올드먼에겐 둘 도 없는 친구이자 연인이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관객은 63살에 찾아온 그의 기막힌 사랑이 제발 기만이 아니길 바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지만, 정작 예술품의 진품과 모조품을 판별하는 감정가(鑑定家)인 그는 예술품 수집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수도 없이 속여왔지만, 타인의 모조(模造) 감정(感情)은 감정(鑑定)하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感情)에 속고 맙니다.

 

'베스트 오퍼'는 우리에게 <시네마천국>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감독의 영화입니다. 역시 거장다운 영화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품위 있고 우아한 장면들, 그리고 프라하의 Night and Day 레스토랑에서 클레어를 기다리는 올드먼 위로 째깍대는 시계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현악기 음률은 기막히게 아름답습니다. 진심으로 추천하는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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