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드 퍼슨(Third Person)이란 영화는 올해 만난 가장 어려운 영화였어요. 아니 어렵다기 보다는 한 번으론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해야할까요? 처음 보면 뭔가 파편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게 어디와 연결이 되는지 잘 해석이 안 됩니다. 두 번을 보면 서서히 흩어져 있던 파편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되더군요. 이 영화는 세 그룹의 캐릭터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기 다른 장소에서 등장하는데요,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등장인물의 표현으로 세 그룹의 연관 점을 찾고 하나로 모아가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어떤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나이 먹고 연애하는 리암 니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셨던데, 내용이 그렇게 단편적이고 호락호락한 영화가 아니었어요. 리암 니슨이 하고 있는 연애는 화면으로 보이는 것과는 완전 다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관람 후에 이해가 잘 안되시거나, 또는 애매모호한 생각들이 있었다면 제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근데, 사실 저도 제 글이 완전하다고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결말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질 수 있는 허점(?)을 감독이 만들어 두었는데, 아마 이런 논쟁을 염두에 두고 그런 것 같습니다. 자, 들어가 볼까요?
흩어져 있는 등장 인물들
서두에 말씀 드린 대로 '써드 퍼슨'에는 세 그룹의 인물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등장합니다. 처음은 미국인이지만 프랑스 파리의 어느 호텔에서 글을 쓰고 있는 작가 마이클(리암 니슨 분)과 그의 연인이자 뮤즈인 안나(올리비아 와일드 분)가 등장하고, 미국에는 마이클의 부인인 일레인(킴 베이싱어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과 일레인은 어떤 공통된 아픔을 같이 간직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마이클은 프랑스에서 연인 안나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스콧(에드리안 브로디 분)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누군가 훔쳐 온 옷 디자인을 다른 곳으로 팔아먹는 일을 합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매력적인 모니카(모란 아티아스 분)란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는 인신매매 꾼에 딸이 붙잡혀 있어 구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한 눈에 사랑에 빠진 스콧은 그녀의 딸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미국 뉴욕에 사는 줄리아(말라 쿠니스 분)는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남편 릭(제임스 프랑코 분)과 이혼하고 양육권마저 빼앗겼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아이를 다시 되찾기 위해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법정에 늦거나, 전화를 받지 못해 판사와의 면담에 늦어 아이를 만날 수 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 여기서부터 스포가 다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고 이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는 세 그룹의 등장인물은 서로 교차하며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도무지 이들의 연관관계를 찾을 수 없어 관객들은 계속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추적하게 되는데, 감독이 떨구는 작은 쿠키들을 조합해가며 큰 그림을 만드려고 해보지만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대체 이게 뭐지?"라는 생각과 순간 짜증이 훅~ 밀려 오지만, 런닝타임이 2시간 17분 정도 되고 두 번을 봤으니 영화를 본 시간만도 약 4시간 34분인데, 그래도 조금 알 것도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알송달송 합니다.
그런데 영화 포스터를 보시면 이 영화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들어 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은 종이와 함께 사라지고 있고 그 옆으론 "그 남자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라 적혀있군요.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두 마이클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마이클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들이 수영장에서 익사해서 죽는 사고를 당했는데, 이는 부인이 아들의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둔 핸드폰을 물속에 빠뜨리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도 되돌릴 수 없음을 그 무지막지한 죄책감을 그는 소설로서 자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스콧은 되돌릴 수 없는 마이클의 실수를 소설 속에서라도 만회해 줄, 자신이 투영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극 중에서 스콧은 아들이 30초간 눈을 전화 받는 사이 죽었다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그래서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인신매매에 묶여 있는 모니카의 딸을 구하려하는 인물로 표현됩니다. 스콧=마이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마이클과 안나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는데요, 안나는 마이클의 글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본인을 1인칭으로 쓰지 않고 '그'라고 썼잖아요..." 그렇습니다. 소설에서 '그'는 스콧이 아니라 마이클인 겁니다. 그리고 모니카는 애초에 아이가 없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자기 위안을 위해 만든 가상 인물이라 처음부터 없던 아이라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후회가 담겨 있습니다.
줄리아 역시 마이클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줄리아는 아들을 빼앗기고 괴로워하지만 시간에 늦고, 전화를 못 받아 아이를 되찾을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줄리아의 전남편 릭은 화가인데, 아들의 손에 파란색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려 보려는데, 아이는 페인트에 손을 담그는 걸 극도로 싫어하죠. 그리고 아버지의 그림에 손을 닦아 흔적을 남깁니다. 이처럼 마이클의 아들 '로비' 또한 자신의 작품에 파란색 물감처럼 계속 흔적을 남기는데요, 마이클의 부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에 걔 이름을 썼네. '로비'라고.."
안나는 마이클에게 쓰고 있는 글이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이에 마이클은 이렇게 말합니다. "원래는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을 통해서만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였지... 하지만 계속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해". 그렇게 '다른 무언가'로 글을 쓴 마이클은 출판사 제이크에게 글을 보여주지만 "아무 인물이나 만들어 삶에 대한 변명이나 늘어놓는다."라며 비난을 받습니다. 그리고 곧 안나는 손목시계를 물에 빠뜨리고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글로 써 다시 제이크에게 원고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제이크는 "엄청나다"라고 칭찬을 하게 됩니다. 이것의 의미는 아들을 물에 빠진 채로 두고 다른 여인과 전화통화를 했던 마이클 자신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영화는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복잡다단한 실마리를 치밀하게 넣어 두고 있습니다. 써드 퍼슨(Third Person)은 3인칭 시점을 뜻하는데, 영화 포스터에 "그 남자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라는 카피 문구를 보더라도 이 모든 이야기는 '그'남자의 글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영화를 보았을 땐 "이게 뭐지?"라던 내 생각은 두 번째 보고 나니 무척 새롭고 색다른 영화 한 편을 만난 느낌입니다. 퍼즐을 맞춰가며 오래도록 곱씹어 볼 수 있는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2시간 17분간 작품 속에서 저 또한 마이클과 함께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닌 느낌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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