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 도보여행에서 만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문화유산 10가지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올해로 대한민국은 광복 70주년을 맞습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의 근대문화유산은 전국에 산재해있어 찾아보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은 서울 정동길에 있는 근대유산을 걸어서 둘러볼까 하는데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바로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의 '정동'은 근대문화유산 1번지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정동(貞洞)'이란 이름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도성 안에 생기면서 붙여진 지명입니다. 그러나 이방원이 정권을 잡으면서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겨지면서 지금은 그 이름만 간직하고 있는 곳이죠. 훗날 1883년 미국공사관을 처음으로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각국의 공관이 차례로 들어오면서 정동은 외교가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서양의 교육기관과 종교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가 됩니다.

 

또한 근대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 세력들의 다툼 속에서 자주 독립국가의 위치를 고수하기 힘들어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관파천'의 현장이자, 조선왕조가 근대국가로 변모하고자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근대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정동을 서울 한 복판에서 '근대문화유산 1번지'라고 불리면서 특색있는 여행지로 손 꼽히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는 곳들이 참 많은데요, 오늘 저와함께 우리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간 잘 몰랐던 근대 문화예술 공간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서울주교좌성당 - 서양인에 의해 설계된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착공해서 4년만인 1926년에 완공된 근대건축물입니다. 애초 성당을 설계했던 '아더 딕슨'이란 영국인 건축가는 '장십자가'형태로 지으려 했는데, 건축 당시 일제강점기라 십자가의 형태로는 허가가 나질 않아 양쪽 날개를 떼어낸 채 일자형으로 축소된 모습으로 지어졌습니다. 그후 1993년에 들어서 원설계도를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다시 미완의 세월을 깨고 재공사를 해서 완공된지 70년만인 1996년에 지금의 완성된 십자가 모양의 성당으로 재완공이 되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반대편도 똑같은 모양이라 하늘에서 보면 완전한 십자가 모양입니다.

 

 

 

 

 

 

성당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서양인에 의해 설계된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 한국의 전통건축기법이 섞여 있는 독특한 건물입니다. 지붕은 대들보와 서까래를 올리고 그 위로 기와를 올린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요. 외벽은 화강석과 붉은 벽돌로 치장되어 있는데, 건물의 구조가 십자가 모양이라 뭔가 활발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열 두개의 기둥으로 열 두 사도를 상징하는 돌기둥이 있고, 상당 깊은 곳의 제단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자이크상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보았던 여느 성당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느낌이 들겁니다.

 

저 멀리서 밝은 빛을 내뿜고 계신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2. 덕수궁(경운궁) -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석조건물 '석조전'

 

 

조선이 몰락하고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그리고 일제에 의해 강제 점령된 근대역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은 덕수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덕수궁 안에 지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석조건물인 '석조전'인데요, 1900년에 착공되어 10년 만인 1910년에 완공된 르네상스식 건축물입니다. 공사비는 130만원이 투입되었는데, 당시 국가의 1년 예산이 2천만원이 채 안되던 시절인 걸 감안하면 꽤 큰 국책사업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준공시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한제국이 끝나던 상황이라 궁궐로는 사용되지 못하였고,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덕수궁을 하늘에서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이곳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의 13층인데요, 일반인 누구나 올라가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청건물이라 입장료는 무료고 시원한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오는 곳이에요. 커피한 잔 마시면서 덕수궁 전체를 구경하는 것도 좋습니다. 위 사진이 덕수궁 전체는 아니지만 아무튼 덕수궁이 원래 이렇게 작진 않았어요. 이 주변의 땅들도 대부분 덕수궁 담벼락 안에 있었는데, 1919년 고종이 승하한 뒤, 일제가 상가부지로 분할 매각한 까닭에 지금의 쪼그라든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3. 서울시립미술관(구. 대법원청사)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재판소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 자리는 1886년에 조성된 육영공원이었습니다. 189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재판소인 평리원으로 사용되었고,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경성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등 법원단지가 되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후, 대법원 청사로 사용하다가,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새단장 되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건물의 전면부는 당시 그대로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만 리모델링 된 건물입니다.

 

 

 

 

 

 

이 길을 연인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도 안되는 낭설이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구세군중앙회관으로 가보겠습니다. 헤어진 건 이 길을 걸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 이유를 당신만 모르고 우리는 다 알 것 같은데요?

 

 

 

 

 

4. 구세군중앙회관(구세군 역사박물관) - 우리나라 최초의 구세군사관학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5분여를 걸으면 언덕 아래로 구세군중앙회관이 보입니다. 구세군은 1908년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호가드'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는데, 캐나다와 미국 등지에서 모금한 헌금으로 1928년에 구세군사관학교 건물을 건축했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한때 일제에 의해 구세군 활동이 전면 금지되기도 했었는데 아직까지 그 명맥을 잘 이어오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소금같은 존재라 할 수 있겠네요.

 

 

 

 

 

 

구세군중앙회관 건물 왼쪽편 작은 입구로 들어가면 구세군역사박물관이 있어요. 이곳에는 구세군과 관련된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그들이 사용했던 악기들과 도구들, 사진들, 그리고 각종 기록자료들까지 모두 전시하고 있습니다. 불우한 우리의 이웃을 돕는 이들의 생활도 잘 알수 있는 뜻 깊은 곳이 될거에요.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그리고 구세군 자선남비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28년 12월이었습니다. 이들이 빼앗긴 들에 봄을 주려 했나 봅니다.

 

 

 

 

 

5. 정동교회(정동 제일교회) -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예배당이며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곳.

 

 

당시 돈없고 힘없던 조선이란 나라에 서양 선교사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민들과 직결된 사업들을 많이 벌였는데, 정동교회 또한 그렇습니다. 이 교회는 배재학당을 설립했던 미국의 감리교 목사인 아펜젤러가 한옥 한 채를 구입해 예배를 봄으로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훗날 1897년 한국의 건축가 심의석이 시공을 맡아 건축을 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엔 항일 활동의 거점으로서 독립선언문이 비밀리에 등사되기도 했어요. 한국전쟁 때 완파되었다가 전후 다시 복구되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꽤 널찍한 내부공간이 있네요. 보통 예배보는 시간이 아니면 문을 잠궈두는데, 관리인에게 부탁해서 잠시 들어가 사진을 담았어요. 지금 보시는 사진 반대편인 제 등뒤로는 파이프오르간이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입니다.

 

 

 

 

 

6. 중명전(수옥헌) - 국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을사조약)이 체결된 곳.

 

 

1895년 조선은 친러정권인 민씨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이에 일본은 대원군을 이용한 친일정권을 세우기 위한 쿠테타를 획책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씨정권의 수장인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는데,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이듬해 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1년간 아관파천, 쉽게 말해 피난을 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고종은 사비를 털어 덕수궁(당시, 경운궁) 주변의 땅을 사들여 건물을 짓기 시작하는데, 그 건물이 지금 보시는 중명전입니다. 건축 당시의 이름은 '수옥헌'입니다. 이 주변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여러나라의 대사관이 둘러쌓인 곳이라 일본이 무력침략을 할 수 없는 곳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대한제국은 이곳에서 을사늑약(을사조약)을 맺고 국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위 6장으로 된 서류가 바로 을사늑약의 전문입니다. 이곳에서는 일제의 무력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그때의 증거들과 대한제국의 외교적인 노력들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역사공부 보다 이곳에서 잠시 둘러보고 읽어 보는 것만으로 애국심은 더 강해질 거라 저는 믿어요.

조약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드리면, (일제의 의도를 약간 의역한 것도 있습니다.)

 

전문. 일본은 대한제국이 부강해졌다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래의 내용을 약속한다.

제1조. 일본정부는 대한제국의 외교 사무를 감독하며, 대한제국의 이익을 보호한다.

제2조. 대한제국은 일본정부를 통하지 않고 타국과의 국제조약을 맺을 수 없다.

제3조. 대한제국의 황제는 일본정부가 지정한 통감에게 감시를 받아야하며, 통감는 언제든 황제를 만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일본이 필요한 한국의 어느 곳이든 일본 관리를 두어 본 협약이 완전히 실행되도록 모든 사무를 처리한다.

제4조. 일본과 대한제국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조약은 그 효력이 계속 된다.

제5조. 일본정부는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

 

 

 

 

 

7. 구 신아일보사 별관 - 우리나라 최초의 철근콘크리트조의 민간 건물

 

 

중명전을 나와 달달한 정동길을 조금 걸으면 길 옆에서 구.신아일보사 별관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은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고 외부에서 건물만 구경해야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혹시 2000년도 개봉한 이병헌과 故 이은주씨가 나오는 영화 '번지점프를하다' 기억하십니까? 그 영화에서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인우와 태희가 처음 만난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감성 폭발하는 그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이곳 또한 남다르게 느껴지실 겁니다. 아무튼 이곳은 1930년대에 지어진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입니다. 재질을 왜 말씀드리냐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민간 건물에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한 예가 이 건물이라 그렇습니다. 외부 벽돌은 중국 상해에서 가져온 벽돌로 치장을 했는데, 1975년에 4층으로 증축되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일제강점기 파란만장했던 대한제국의 역사와 함께 1980년대 신군부 언론기관통폐합 조치로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으로 흡수통폐합 될때까지, 대한민국의 언론수난 역사를 그대로 간진한 곳입니다.

 

 

 

 

 

8. 구.러시아 공사관 - 다른 나라 대사관으로 고종과 세자 순종이 피난 갔던 '아관파천'의 현장

 

 

조선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여성들은 종종 있었지만, 그 권력은 대부분 수렴청정이나 친정을 등에 업고 왕을 뒤에서 조종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명성황후는 고종의 국정운영을 가장 많이 돕는 파트너였으며, 외국의 세력들은 고종보다 그녀의 세력을 더 예의주시했던 권력의 핵심에 있던 인물이었죠. 그녀는 명문 사대부 친정의 도움으로 왕비에 오른 것도 아니며, 오히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친정세력을 그녀가 키웠습니다. 왕보다도 더 정권의 중심에 서있던 그녀는 러시아와 친분을 쌓으며 친러정권을 수립했는데, 이에 못마땅한 일본이 그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을미사변이죠. 중명전이 만들어진 배경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이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세자는 위 사진에서 보이는 구.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을 감행하게 됩니다. 1890년에 완공된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때 크게 파손되어 지금은 망루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9.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이화박물관)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

 

 

위 사진은 이화여고 정문 옆 길가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문인데, 애초 이화학당의 정문인 '사주문'이에요. 1923년에 만들어진 문인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풍에 의해 교란되었던 것을 허물고 다시 1999년에 복원해 놓은 문입니다. 문 앞에 설명하는 판이라도 하나 세워두었다면 지나는 사람들이 무슨 문인지 알텐데, 아무것도 없어 문 안쪽에 있는 건물과의 이질감에 대한 의문만 남긴채 덩그러니 서 있네요.

 

 

 

 

 

 

이화여고 정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독특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이화학당 심슨기념관입니다. 현재 박물관과 아이들이 공부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더군요. 이화학당은 1886년에 감리교 선교사인 스크랜턴이 정동에 있던 한옥 자택에 세운 학교를 말합니다. 이후 1899년에 메인 홀과 심슨 기념관, 프라이 홀을 더 지었는데, 한국전쟁에 소실되고 지금 보시는 심슨 기념관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화학당 출신 여성들은 '최초'라는 칭호를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 여성 최초 박사학위 취득자인 김활란 전 이화여대총장, 한국 최초 여의사 박에스터, 한국 최초 미국 유학생 하란사 등이 있고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도 이곳 출신입니다.

 

 

 

 

 

 

1,2층에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당시의 교실과 이화학당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정리해 두었더군요. 이 학교를 설립한 선교사 스크랜턴은 "이름도 가질 수 없는 조선의 여인들을 악습과 무지로부터 구하기 위해" 학교를 만들었지만, 개교한지 1년만에 여성 한 명이 찾아오면서 고종으로부터 '이화학당(梨花學堂)'이란 교명을 하사 받았습니다. 이는 사액서원과 마찬가지로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가받은 최초의 근대 여학교라는 걸 의미합니다.

 

 

 

 

 

10.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

 

 

배재중·고등학교와 배재대학교의 전신인 배재학당은 한국 근대 교욱이 시작된 곳입니다. 1885년 아까 위에서 말씀드렸던 정동교회를 만든 아펜젤러 목사는 같은 해 배재학당을 만들어 아이들을 교육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은 한옥 한 채를 사서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2년 후 1887년에 최초의 서양식 벽돌양옥으로 건물을 준공하게 됩니다. 위 사진은 1916년에 만들어진 배재학당 동관인데, 다른 건물들은 1984년 배재중고등학교가 서울 강동구로 이전하면서 이 건물만 남아 있는데, 현재 배재학당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오는 사람들은 '배재'하면 연애인과 운동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 쯤으로 알고 계신 분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소설가 나도향, 시인 김소월, 한글학자 주시경, 독립운동가 지청천 등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유서깊은 곳이랍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배재학당의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요, 재미있는 전시물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고종이 하사한 배재학당 현판 실물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김소월 시인의 시집 '진달래 꽃' 원본이 있는가 하면, 이 학교를 설립한 아펜젤러와 교사였던 노블 선생이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과 일기장 등이 재미있는 구성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마치며...

 

 

오늘 보신 모든 곳을 지도에 빨간색 하트 모양으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1호선과 2호선 시청역에 내려 걸어서 모두 둘러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요. 모두 꼼꼼히 읽으면서 돌아보려면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거의 하루가 소요되는 제법 긴 코스지만, 하루 시간을 내어 산책겸 꼭 모든 곳을 둘러보시길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대부분의 역사적인 건물들은 각자의 내력을 소개해주는 박물관이나 전시관, 미술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친근하게 근대문화유산을 여러분께 알려줄 겁니다.

 

※ 여행일자 : 2015년 7월 9일

※ 각 항목의 제목에 '최초'란 말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은 두 번 다시 일어나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최초'란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맵

언젠간날고말거야

언젠간날고말거야™의 여행블로그. 국내여행기, 해외여행기, 영화리뷰 등을 다룹니다.

    ✔ '국내여행/수도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