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터미네이터 1편이 개봉했을 때,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독보적인 존재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후 2편에서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액체로봇 T-1000(로버트 패트릭)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하며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건 단순히 볼거리에만 치중하지 않고 발전을 최고의 미덕인양 인간의 존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세계에 대한 경고이자 큰 교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1편과 2편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 의해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3편부터 감독이 교체되면서 끝이 안 보이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죠. 3편은 애초의 철학은 찾아보기 힘든 볼거리로만 채웠었고, 4편은 시리즈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바람에 흥행에 실패하게 됩니다.
4편이 나온 2009년 이후 6년 만에 '제니시스(Genisys)'란 타이틀로 5편이 등장했습니다. 기존 시리즈에서의 흥행과 참패의 원인을 나름 철저하게 분석해서 이번 편은 좀 색다른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1편과 2편의 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이야기 구성에 힘을 실었고, T-3000(제이슨 클락)이란 새로운 로봇의 등장으로 볼거리를 채워넣은 모습입니다. 거기에 옛 시리즈의 오마주도 종종 등장하고, 세월이 흘러 늙어버린 T-800 로봇의 등장으로 84년 1편을 보았던 중장년 세대의 향수도 자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제작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왜 흥행에서 큰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물론 한국에선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어 중박은 쳤지만, 북미에선 흥행에 참패를 하는 바람에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기존 시리즈의 설정을 과도하게 그대로 가져온 탓에 새로움이 부족한데 있습니다. 액체로봇인 T-1000(이병헌)은 생김새와 행동 등 영화 속의 설정이 2편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았고, 나노 재료로 만들어진 새로운 로봇 T-3000 또한 물질만 달라졌지 T-1000과 안일하다 싶을 정도로 유사합니다.
새로운 인물로 채웠음에도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는 2편의 여전사 느낌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인류의 미래를 구할 존 코너(제이슨 클락)의 파격적인 역할 변경은 과하다 싶을 정돕니다. 그렇다고 흥미로운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1, 2편에서 등장했던 젊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CG와 새롭게 등장하고, 제니시스에서 늙어버린 T-800과의 대결 장면은 흥미진진합니다. 또한 전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수많은 오마쥬들의 등장으로 이전 편들을 모두 본 관객들에겐 깨알 같은 재미와 진한 향수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2편에서 T-1000을 연기했던 로버트 패트릭은 이번 5편에서 카메오로 등장하는데, 병원에서 T-800과 T-3000이 육탄전을 벌이던 병원 장면에서 복도에 앉아 있던 남자가 바로 로버트 패트릭입니다.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리모컨 Rewind와 Play 버튼을 번갈아 수십 번 눌러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아무튼 볼거리는 풍부하지만 과거의 향수에만 몰두하는 구성은 조금 아쉽습니다. 아참,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쿠키 영상도 꼭 확인하세요. 6편을 예고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스카이넷은 아직 죽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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