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고 차갑게 그려낸 혼돈의 시대. 영화 '밀정'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최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암살>부터 시작해서 올해는 <동주>, <귀향>, <덕혜옹주> 등이 개봉했었죠. 모두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을 거두기까지 했습니다. 올 추석 시즌에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이 개봉했는데요.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가 나오는데 안 볼 수가 있나요? 어제 당장 달려가 봤습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독립한지 7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끈질기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위안부 문제, 친일파 청산 등 우리가 매듭지어야할 과거 역사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보입니다. 영화 <밀정>은 우리가 늘 이분법 적으로 생각했던 친일과 항일의 경계 정확히 중간에 선 남자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한때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변절하고 일본 경찰이 된 이정출(송강호 분)의 야이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정출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일본 경찰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반 소시민들은 독립을 간절히 염원하긴 했지만, 동아시아를 죄다 점령했던 세계 초강대국인 일본으로부터 변변한 무기조차 제대로 없는 대한제국이 독립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이정출은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단장인 정채산(이병헌 분)을 잡기 위해 의열단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김우진(공유 분)에게 접근합니다. 둘은 서로의 정체를 알면서도 상대방을 이용하기 위해 가까워집니다. 영화 '밀정'은 의열단을 일망타진하려는 이정출의 친일과 항일 사이에서의 갈등과 고뇌를 덤덤한 화면으로 쫒아갑니다.





이 영화는 다른 일제강점기 시대의 영화와는 접근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암살>에서는 일제에 극렬하게 항거하는 독립투사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밀정은 항일과 친일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친일인 일본 경찰이지만 의열단의 밀정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독립투사지만 일본 경찰의 밀정일 수 있다는 뚜렷하지 않은 인물을 대상으로 비교적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뜨겁게 독립을 바라지만 현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회색분자들. 아마 이 시대의 대다수 소시민들은 그랬을 겁니다. 정출은 폭탄을 경성으로 가져오려는 의열단을 적극 돕지만, 한편으론 고문실에서 의열단의 중책 김우진의 위치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버티는 연계순(한지민 분)에게 어쩔 수 없이 지독한 고문을 가하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김지운 감독은 무얼 말하려는 걸까요? 우리가 이분법적 생각의 틀 속에 갇혀 버린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의식이 갇혀 있음으로 그것이 역사의 이해 또한 가로막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 감독은 영웅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누가 동지이고 적인지 알 수 없던 혼돈의 시절을 대단히 건조하고 차갑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과도하게 치중한 나머지, 주인공들 간의 관계에 촘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이야기의 개연성도 다소 떨어지는 면도 있어 독립운동이 현대의 시각에서 갖는 의미도 조금 모호해졌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분명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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