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이 이리 아름다워도 되나요. 주차장부터 경내까지 걸어올라 가는 길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았습니다. 경북 영주와 봉화사이에 놓인 봉황산 중턱에 위치한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의 명령을 받고 지은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 사찰입니다. 보통의 절은 '누가 언제 지은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로 두루뭉술하게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부석사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어요. 그러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겁니다.
천년의 세월을 넘어 창살, 문지방 하나에도 오랜 역사가 묻어있는 영주 부석사. 고개만 돌려도 온통 국보 투성이인 보물같은 절간은 오르는 길 마저도 아름답습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로 살짝 이마에 땀이 나려는 순간 천왕문 앞에 별 것 아니라는 듯 서있는 당간지주. 예도 알고보면 우리나라 보물 제255호입니다. 부석사가 세워지던 7세기 경에 함께 만들어졌다는데, 세월을 이기지 못한 철기둥 당간은 사라지고 지주만 남았네요.
제가 왜 '드라마틱'하다고 말씀드렸나면, 모든 공간은 이런 돌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눈앞에 펼쳐집니다. 가람의 구조가 오르기 전엔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다시 저 멀리 회전문이 보이고 새로운 공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절간이 산 중턱에 있는 데다 길을 직선으로 내어 약간 가팔라요.
팔다리의 처절한 협업으로 근근이 회전문을 올라서니, 드디어 문지방 너머로 범종루가 보이네요.
전 딱 이때가 제일 설렙니다. 어떤 공간이 나올까...
계단을 오르면 또 색다른 공간이 계속 연속해서 나오니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같습니다.
범종루 앞에는 통일신라의 양식을 한 두 개의 삼층석탑이 길 사이에 마주보고 서있습니다. 탑 속에는 익상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에서 나누어 가져온 사리를 보관하고 있어요.
범종루 아래의 계단을 오르면 이번엔 어떤 곳이 나올까...
마치 요새를 보는 것 같네요. 귀족이 살았던 근사한 성 같기도 하고요.
높은 계단 위 안양문 현판 위로 부석사란 글자가 눈에 띕니다. 부석(浮石)이란 '떠있는 돌'이란 뜻인데, 위로 올라가보면 왜 절간 이름이 이렇게 되었나 알 수 있으려나...
안양루 터널을 지나 올라오면 역사책에서 본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이 나타납니다. 무려 13세기의 건축물이에요. 한껏 치솟은 팔작지붕 처마와 칸칸히 서있는 배흘림 기둥이 몹시 우아합니다.
그리고 무량수전 앞에 무심하게 서있는 팔각 석등 또한 국보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빼어난 조각 솜씨로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라고들 하죠. 담장이 탑신에 가까이 있어 자세히 볼 수 있는데, 벽면의 보살상과 상대석의 연꽃이 기품이 넘칩니다.
규모가 조금 큰 한옥은 기둥을 아래위 두께가 다른 나무를 많이 씁니다. 같은 굵기로 재단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쓰는 게 더 튼튼하고, 가운데가 얇아 보이는 착시 현상을 교정하기 위함인데요. 목조 구조 기술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죠. 보통 배흘림기둥이라고 합니다. 그 기둥 끝에 지붕을 떠받히는 나무 짜임새(栱包, 공포)가 강직한 느낌이네요.
국사책에서 많이 봤었죠. 배흘림기둥, 주심포양식... 한문이라 어려워 보이지만 아래위 두께 다른 나무 기둥 가운데(柱心, 주심) 지붕을 떠받히는 나무 짜임새(栱包, 공포)를 올린 한옥을 말하는 거예요. 배가 뚱둥하고 아래위가 조금 얇은 나무 기둥을 쓴 선조들의 예술감각도 굉장히 뛰어납니다. 일자로 반듯한 기둥을 쓰면 지붕의 곡선과 인간의 착시현상 때문에 가운데가 얇은 나무로 착각하게 되는데, 그런 착시현상까지 보정하기 위해 배흘림 기둥을 썼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무량수전 안에는 고려초에 진흙으로 빚은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계십니다. 우리나라에서 진흙으로 빚은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는데요. 일반 사찰과는 달리 불당 가운데가 아닌 서쪽 불단에 모셔져 있습니다.
무량수전, 밖으로 길게 그리고 한껏 하늘로 치솟은 처마가 아름답습니다. 13세기에 지어졌으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겁니다.
봉황산도 산세가 참 좋네요.
무량수전 오른쪽 언덕 위에는 우직하게 생긴 부석사 삼측석탑이 있습니다. 얘도 보물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본디 탑은 법당 정면에 짓는 게 보통인데 독특하게 동쪽 언덕에 세웠네요.
석탑을 따라 산을 조금만 오르면...
또한 유명한 조사당이 나옵니다. 얘 또한 14세기 고려시대에 지어진 고건축물인데 현재 국보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무량수전과 똑같이 배흘림기둥 중심 위에만 공포를 올린 주심포양식이에요. 건물 자체가 작기 때문에 무량수전보다 간결한 느낌입니다. 가운데 출입문 중앙 칸 양옆으로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을 낸 것도 독특하네요.
그런데 국보 건축물 앞에 흉측한 구조물은 뭔가 싶었는데...
건물 바로 앞에 나무가 하나 자라고 있어요. 들리는 소문에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는 선비화라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조사당 내부도 꼭 들어가 봐야 합니다. 내부에는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고, 벽을 빙 둘러 고려시대 때 그려진 매후 희귀한 벽화가 한가득 있어요. 무덤에 그린 그림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채색 그림입니다. 벽화 또한 국보 제46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아... 제가 우리 한옥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삼성각 자태 좀 보세요.
그리고 눈여겨 봐야할 건 무량수전 옆에 있는 굉장히 큰 바위예요. 이 바위는 가운데 여러 사람이 들어가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공중에 떠있는 바위라고 해서 부석(浮石)이라고 불러요. 절간 이름이 부석사가 된 이유는 이 바위 옆에 지었다고 해서 붙었습니다.
바위 옆을 자세히 보면 '부석(浮石)'이란 글자가 지금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귀여운 작명 센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요. 한자라고 뭔가 특별한 이유가 늘 있진 않아요. 우리가 잘 아는 이황과 이이의 호가 퇴계, 율곡이잖아요? 여기엔 뭔가 철학 같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냥 그들이 살던 동네 이름입니다. 옛날에는 양반가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걸 예의없다 생각하여 쉽게 부르기 위해 호를 저렇게 지었어요.
아무튼, 영주여행 가셨다면 진정한 보물창고 부석사를 꼭 돌아보세요~
✔ 찾아가는 길
✔ 댓글이 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