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젠킨스 감독이 영화로 쓴 시(詩) '문라이트(Moonlight)'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영화 문라이트(Moonlight).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라라랜드'로 잘못 불러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던 작품이다. 당시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었으나 깜빡 잊어버리고 기억에서 사라졌었다. 그러고 2년이 지난 며칠 전, TV에서 방영하는 걸 우연히 보고 나가려던 참인데 난 소파에서 얼어붙었다. 문라이트는 터렐 앨빈 매크레이니의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는 미국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흑인 남성 샤이론의 삶을 소년, 사춘기, 성인,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퀴어'라 부르더라. 난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의 심리를 아주 조금 표현할 수 있는,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퀴어'라는 이름으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 한 단어로 장르를 구분 짓기엔 단순치가 않다. 마약에 찌든 엄마, 일생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친구들. 날 부르는 호칭도 '리틀', '블랙', '호모'. 뭐 하나 호의적인 게 없는 샤이론의 인생이다. 이 영화를 굳이 따지자면 한 흑인 남자 아이의 성장을 그린 성장영화다.


사람은 무의식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닮아간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줬던 마약상 후안과 그의 여자 친구 테레사.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유일한 게이 친구 캐빈. 샤이론은 세차게 바람 부는 막다른 절벽 끝에서 발가락 힘으로만 간신히 버티는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감정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손가락 하나로 툭 건드리면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를 불안정한 상태. 어른이 되어 후안처럼 마약상이 되고 애정 어린 키스를 해준 캐빈을 사랑하게 되는 건 어쩌면 샤이론의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변이 그렇게 되도록 떠밀었다. 니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영화의 마법 같은 순간은 15분 가까운 식당 장면이다. 1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캐빈을 만나러 샤이론은 애틀랜타에서 마이애미까지 차를 달린다. 차에 내려 쓱쓱 빗질로 단장하고 식당 문을 열어젖힌다. 문에 매달린 작은 종이 유난히 땡그랑거리며 설레는 샤이론의 마음을 대변한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진심이 통하는 걸까. '문라이트'는 언어로 관객을 설득하지 않는다. 샤이론과 캐빈을 오가는 뭉클하고 섬세한 카메라와 음악, 거기에 빈 공간은 여운으로 채워 인물의 감정을 마법처럼 설득한다. 여기에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관객의 마음을 붙들어 매는 서사의 대비 또한 영리하다. 샤이론에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늘 함께 생긴다. 마약 소굴에서 친구들에게 쫓기다 후안을 만났고, 후안과 바다에서 수영하며 행복한 순간을 만나면, 집에서 마약한 엄마와 낯선 아저씨가 기다린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만 마약에 쩔어 있고, 나를 사랑하는 후안은 좋은 사람이지만 마약장수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친절한 캐빈을 만났고, 캐빈의 잊을 수 없는 첫 키스 후 학교에선 다시 폭력이 기다린다. 날 때린 친구를 통쾌히 응징하면 감옥에 가고, 교도소에서 나와 마약상으로 성공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다 10년 만에 캐빈의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잠을 잤고, 평생을 그리워한 캐빈은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베리 젠킨스가 연출한 '문라이트'는 소박하고 조용하면서도 강렬히 아름답다. 언뜻 조셉 고든 레빗이 나왔던 '미스테리어스 스킨(Mysterious Skin)'이 생각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지켜보는 '트루먼쇼'같기도 하다. 흔한 할리우드 스타 한 명 출연하지 않은 저예산 인디영화지만, 속 깊은 서사와 절제된 대사, 아름다운 영상으로 말하는 기술은 가히 최고다. 한편의 감동적인 시(詩)를 읽고 호흡이 떨리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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